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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환경영향평가가 수년째 논란을 낳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전국 각지에 발전소나 소각장·매립지·산업단지 등의 설립이 추진될 때마다 꼭 들려오는 단어가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그것이다.

환경영향평가란 도시·도로·산지개발과 산업단지·관광단지 등을 조성하기에 앞서 이러한 사업이 해당 지역의 주변 자연환경과 생활·사회 환경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자 측에서 실시하고 있어 과거부터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크게 △전략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 △소규모환경영향평가 3가지로 나뉜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사업 진행과 관련해 행정단계에서 계획이 적정한지, 입지가 타당한지를 검토하는 절차이며, 환경영향평가는 개발단계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평가하여 환경영향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다. 소규모환경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와 같이 개발단계에서 난개발이 우려되는 지역에서 환경보전방안을 마련하는 절차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영향평가는 모두 사업자 측이 직접 하거나, 사업자가 환경영향평가를 대행하는 업체에 의뢰를 해 진행한다. 즉, 개발로 인해 주변 거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자연훼손 정도, 장기적인 영향 등에 대한 평가를 모두 사업자 측에서 측정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이를 환경부나 각 지방자치단체로 제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한 모순이 존재한다. 사업자 측은 개발을 성사시키려는 목적이 큰 만큼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업과 관련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선 상세히 기술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게 환경학과 교수 및 환경단체의 중론이다.

◇ 가리왕산, 개발불가지역… 개발 가능토록 특별법 제정 후 환경영향평가 통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스키 종목 알파인(활강) 경기장 조성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알파인 경기장은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에 조성됐다. 이곳은 왕사스래, 주목, 분비나무, 개벚지나무, 사시나무, 땃두릅나무, 만년석송, 만병초 등의 수목들과 금강초롱, 금강제비꽃, 산작약, 노랑무늬붓꽃 등 희귀식물의 자생지다. 또한 가리왕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풍혈지대로,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땅속에서 불어오는 독특한 지층구조가 형성돼 있다.

다양한 이유로 가리왕산은 과거부터 산림법상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엄격히 금지됐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환경영향평가에도 반영됐다. 그럼에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명목 하에 특별법을 제정, 개발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알파인 경기장 개발 시 환경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개발하고, 올림픽 이후 복구가 충실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시 환경부는 이러한 조건을 담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토대로 ‘조건부 승인’을 해줬다. 그러나 가리왕산 복구는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가리왕산 알파인 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올해까지 단 한 차례도 스키장 또는 다른 용도로 이용하지 않았다. 올림픽만을 위해 천혜의 자연경관을 훼손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뉴오션타운 조감도 /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도에서도 송악산 일대를 개발하는 것과 관련해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졸속으로 작성해 개발허가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뉴오션타운 조감도. / 제주환경운동연합

◇ 제주도·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환경영향평가 두고 설왕설래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이뤄지는 개발과 관련해 환경영향평가가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 서귀포와 충북 청주에서 환경영향평가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다.

제주도는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과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전문기관의 핵심적 검토 의견을 누락하고 중요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은 중국자본인 신해원 유한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 19만1,950㎡ 부지에 총 사업비 3,700억원을 투자해 461실 규모의 호텔 2개와 캠핑시설,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송악산 일대를 입지로 하고 있어 천혜의 경관이 파괴될 수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제주4·3, 한국전쟁 등 한국 근대사의 역사경관과 자원들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 제주환경운동연합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환경영향평가 심의에서 네 차례나 재심의 결정이 내려지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월 다섯 번째 심의에서 결국 조건부 동의로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측은 이 사업이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과하자 제주도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서(본안)를 입수는데, 연합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전문기관에서는 (송악산은) 매우 수려한 자연경관은 공공의 자산이며, 개인이 독점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므로 자연경관을 현저하게 침해하는 개발계획은 적정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출된 평가서를 토대로 검토한 결과 동 사업의 시행 시에는 동 지역의 자연경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바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의 자연경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동 지역에서의 대규모 개발은 지양하여 사업을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서(검토보완서)에 이러한 전문기관의 핵심적인 검토의견은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 연합 측의 설명이다.

연합은 “제주도 역시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이 누락·은폐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회 회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연합 측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검토의견을 증거로 제시하며 사업자가 △오수처리계획 △해양환경에 대한 영향조사 △자연경관 보전·자연생태환경 등과 관련한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해외, 공공발주 후 환경영향평가 실시… 환경부 “문제점 인지, 공탁제 논의”    

청주에서는 금강유역환경청이 청주시 오창읍 후기리에 폐기물 소각장 건립과 관련해 ‘조건부 동의’를 하면서 청주시청 및 지역구 국회의원, 주민 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소각장 건립에는 △소각시설 용량, 기존 ‘일 282톤’에서 ‘일 165톤’으로 감축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배출허용기준의 40∼70% 이하로 운영 등이 조건으로 붙었다. 

그러나 소각장이 들어설 예정지인 후기리 주민들은 이를 믿지 못하고 있다. 앞서 북이면에 설치된 소각장에서 허가 용량 이상을 처리하고 불투명한 과정을 거쳐 증축한 사례로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자 측이 시행하는 것이다 보니 영향평가 측정전문 업체들도 외주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 사업자 입맛에 맞게 설계를 하는 사례가 많다”며 “해외에서는 공공에서 발주 후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사업주는 영향평가와 관련한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나 유럽에서 시행하는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이 특정 지역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인지부터 검토를 시작하고 불가능한 사업이라면 사업 진행에 제동을 건다”며 “그러나 우리나라 환경영향평가는 이미 사업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해외의 방식을 우리나라도 도입하자는 이야기는 10여년도 전부터 계속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환경부 측은 현행 환경영향평가 방식과 관련해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 측 관계자는 “사업자가 해당 사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판단해 환경영향평가를 사업자에게 맡기고 있다. 그런데 사업자가 직접 시행함으로써 환경에 부정적인 측면이 일부 축소되거나 고의적 누락·은폐가 가끔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사업을 시행하고 문제점이 발생하면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탁제 관련해 논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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