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고수하는 기재부·입장 바꾼 통합당과의 협상 거쳐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4·15 총선이 끝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막기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에 대한 논쟁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한시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공약까지 내걸었으나,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몇가지 난관이 남아있다.

우선 기획재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설득해야 하며, 지도부가 대부분 낙선해 공백이 생긴 미래통합당을 달래서 협상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게다가 통합당은 기존 주장과 달리 70%만 지급하자고 주장해 민주당으로서는 어려운 과제를 떠맡은 셈이다.

◇ 홍남기 부총리 '요지부동'

국회는 이날 오후 2시에 본회의를 열어 정세균 총리로부터 7조6,000억원 규모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청취했다. 정부는 소득 하위 70% 4인가구당 100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추경안을 편성했다.

정 총리는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삶은 지금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며 “국민들이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국회가 추경안을 조속히 처리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지급 대상에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것에 대해 “지원대상 간 형평성과 한정된 재원 등을 고려해 일부 고소득층을 지급 대상에서 불가피하게 제외했다”며 “국민 여러분의 양해와 협조를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재난지원금 지급범위에 대해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전날 회의를 열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종료했다. 민주당은 100% 지급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소득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원래 100% 지급안을 주장했고, 이 의견이 당정청을 거쳐서 국회가 먼저 합의하자고 정리된 것”이라며 “여야 합의안을 가지고 정부와 논의하는 절차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강기정 정무수석도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 들어가기 전 취재진과 만나 “정부 입장은 지금 수정안을 낼 수는 없는 것이라 70%를 토대로 국회에 보냈다. 국회에서 논의를 해봐야 하는 사안”이라며 “국회의 시간이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그때 정부가 입장을 낼 수 있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즉 청와대는 원안인 70% 지급을 국회에 보냈지만, 예산을 심의·의결할 권한을 가진 국회에서 지급 범위를 조정한다면 재고해볼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전히 70%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손발을 맞춰야 할 기재부부터 설득 혹은 견제를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해찬 대표는 지난 11일 비공개회의에서 홍 부총리가 추경 규모 확대에 소극적이라며 해임 건의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부총리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기준 소득 하위 70%는 지원 필요성, 효과성, 형평성, 제약성 등을 종합 검토해 결정된 사안인 만큼 국회에서 기준이 유지되도록 최대한 설득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역설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와 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간격을 넓게 두고 배치된 의자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와 미래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간격을 넓게 두고 배치된 의자에 앉아 대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홍 부총리가 여당과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재정건전성 때문이다. 만약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정부는 기존보다 추경안을 3~4조 정도 증액해야 한다. 향후 어떤 경제 위기가 다가올지 알 수 없으니 국채 발행 여력을 축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채 발행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가장 먼저 재난지원금 의제를 꺼내들었던 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기재부는 지금도 재정건전성을 얘기하고 있다. 기재부의 입장도 이해는 한다”면서도 “기재부는 계속 ‘재정건전성 우려’만 이야기한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와도 정부 곳간만 지키겠다는 얘기는 아닐 것으로 믿는다”고 일침했다.

◇ 통합당, 지도부 공백에 입장 변경 

만약 민주당이 기재부라는 산을 넘어도 또 하나의 산이 남아있다. 통합당이라는 산이다. ‘지도부 공백’과 ‘입장 변경’이라는 험준한 고개를 두 차례 넘어야 한다. 

앞서 여야는 이번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입을 모아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를 먼저 언급한 것은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다. 황 전 대표는 지난 5일 선거유세 중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즉각 지급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래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꾸준히 주장했다.

지난 6일에는 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김우석 상근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황 전 대표의 입장을 반복하며 “건강보험료 하위 70%라는 기준은 경계선 언저리의 국민들을 혼란케 했고, 국민들은 어떤 근거로 선정된 기준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통합당에서 이같이 주장하자 민주당도 이에 화답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7일 현안점검회의에서 “야당만 동의하면 민주당도 모든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서 총선 이튿날인 16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추경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통합당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황 전 대표가 총선 직후 사퇴를 선언하고, 지도부의 상당수가 낙선하면서 혼선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인 장제원 통합당 의원은 지난 19일 “민주당은 100% (지급) 운운하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며 “정부가 제시한 하위 70% 안으로 빨리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예결위장인 김재원 통합당 정책위의장도 20일 “상당한 소비 여력이 있는 소득 상위 30%까지 주는 것은 검증된 효과도 없고 경제 활력을 살리는 데 큰 기여도 하지 못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통합당은 현재 ‘당무마비’에 가까운 상황이다. 대표,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최고위원의 상당수가 4·15 총선에서 생환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당내 수습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총선 이튿날인 지난 16일 통합당 원내지도부에 연락을 취했으나 응답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게다가 통합당은 여당이 기재부와 합의를 하고 오는 것이 먼저라는 분위기다. 당정이 협의가 안 된 상황에서 여야 협의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여파로 인해 20일로 예상됐던 여야 원내대표 간 만남도 불발됐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당 고위전략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쪽(심재철 통합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에서 전화가 왔는데 지도부 문제를 정리하는데 집중해야 해서 오늘은 시간이 안 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다음 회동의 구체적인 일자와 시간은 정하지 못했다. 

회동이 열린다고 해도 통합당이 70% 지급으로 입장을 바꾼 상황이라 설득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당정청은 오는 5월을 재난지원금 지급 목표로 삼았는데, 이같은 상황에서는 데드라인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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