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이민지 기자 ‘강력반 여성 형사’와 ‘대한제국 최연소 여성 총리’는 그저 시대상을 맞추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 일까. 2020년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SBS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여캐릭터 사용법에 적지 않은 아쉬움이 이어지고 있다.
4월 17일 첫 방송된 SBS 새 금토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이하 ‘더 킹’)은 차원의 문을 닫으려는 이과(理科)형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 분)과 누군가의 삶, 사랑을 지키려는 문과(文科)형 대한민국 형사 정태을(김고은 분)이 두 세계를 넘나드는 공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집필한 히트 메이커 김은숙 작가의 신작이다. 2020년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얻고 있다.
특히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 ‘시크릿 가든’ 등 로맨스와 판타지 요소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흥행 전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킹’에 쏠리는 기대감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컸다.
시청자들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더 킹’은 갖은 논란들로 몸살을 앓으며 앞선 김은숙 작가 작품들에 비해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엔 백마 탄 왕자와 일반인 여성의 러브라인이란 진부한 설정, 1인 2역이 주는 혼동감 등 여러 이유들이 꼽히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는 건 ‘더 킹’의 시대착오적 여성 캐릭터 사용법이다.
대한제국 최연소 여성 총리가 한다는 대사가 고작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라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시작부터 적지 않은 혼란에 빠졌다. 구서령(정은채 분)은 대한제국 역대 최초 여성 총리로 설명돼, 걸크러시 넘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케 만들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구서령 캐릭터는, 노브라에 대한 선입견을 깨려 노력하는 현실에 견줄 때 오히려 시대착오적인 대사들을 쏟아내며 시청자들에게 적지 않은 아쉬움을 자아낸다.
2회까지 구서령은 황제 이곤에게 집착하고 질투하는 등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주력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성공을 위해 남성을 사용하는 구서령은 남녀평등을 외치는 현시대에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하나같이 밥통들이야. 난 총리되면 근사한 남자들만 보고 살 줄 알았지”와 같은 대사들은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왜곡된 선입견마저 우려하게 만든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했지만,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로 사랑받았던 ‘쿠도 히나’(김민정 분/ ‘미스터션샤인’). ‘제2의 쿠도 히나’ 탄생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겐 여간 씁쓸한 구서령이 아닐 수 없다.
메인 여주인공 정태을(김고은 분)의 활약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반 형사로 소개된 정태을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범인을 잡기 위해 돌려차기하는 장면 뿐이다. 백마 ‘맥시무스’를 타고 대한민국으로 평행세계를 이동한 이곤이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에서 “이곳은 황제가 아니라 여왕이 존재하는군. 꽤 사랑받는 모양이고”란 말에 형사 정태을은 “사랑하지 퀸연아. 전 국민이 다 사랑하지”라고 시덥잖게 받아치고 만다.
큰 의미없는 ‘티키타카’의 연속, 정태을이 대한제국에서 넘어온 이곤의 오글거리는 대사를 빛내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만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강한 걱정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이에 ‘더 킹’은 이민호의, 이민호에 의한, 이민호를 위한 드라마라는 평가까지 얻고 있다. 작품 중심에 섰던 주체적인 최연소 프로야구단 운영팀장 이세영(박은빈 분)과 자수성가형 여성 변호사 정금자(김혜수 분)만 봐도 ‘백만 탄 왕자’만을 우대하는 ‘더 킹’이 시대착오적 시선을 지니고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다만 아직 2회 방영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한 줄기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강력반 여성형사’와 ‘최연소 여성 총리’가 그저 포장지에 그치지 않고 시대에 걸맞는 멋진 여성으로 탄생되길. ‘더 킹’이 그릴 추후 방송에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