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총선 서울 종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선인이 지난 16일 종로구 숭인동 인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제21대 총선 서울 종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당선인이 지난 16일 종로구 숭인동 인근에서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여권 내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4‧15총선 ‘종로 대첩’에서 승리하면서 대세론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 전 총리(58.4%)는 보수진영의 유력 주자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40.0%)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승기를 잡았다.

이 전 총리는 자신의 선거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압승에도 일조했다. 그는 총선 기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후보들 지원 유세를 펼치며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역대 최장수 총리 이미지와 높은 대선주자 지지율을 등에 업은 이 전 총리는 총선을 거치면서 대세론에 쐐기를 박은 모습이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8, 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응답률 5.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이 전 총리는 40.4%를 얻어 범여권 차기 대선주자 중 1위를 기록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20%대 후반을 기록했던 이 전 총리 지지율은 총선 이후 10%포인트 이상 치솟았다.

이 전 총리에 이어 2위는 이재명 경기지사(14.8%)가 차지했고 뒤이어 심상정 정의당 대표(2.7%), 박원순 서울시장(2.4%), 김부겸 민주당 의원(2.2%), 김두관 민주당 의원(1.2%), 김경수 경남지사(1.0%) 순이었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총선을 발판으로 더욱 탄력을 받은 이 전 총리의 대세론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2022년 3월 예정된 대선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친문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전 총리는 당내 인적 기반이 약하고 최대 계파인 친문이 그를 대선주자로 낙점할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이 같은 점에 대해 이 전 총리도 고민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19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팬덤이 형성돼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근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에 동참하지 않은 소수파 출신이란 한계가 여전히 남아 있다”며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고 당선됐을 때도 대변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최종 정리한 당사자도 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그 뒤로 당이 나눠졌을 때 합류하지 않았다. 그렇게 갈라진 채로 선거를 치렀는데 제가 남은 그 정당이 궤멸한 일이 있었고 그 다음 대선 이후로 합쳐졌다”며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제가 소수파가 돼 있었다”고 회고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리의 약점을 거론하며 그를 ‘친문의 꼭두각시’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달 9일 이 전 총리가 ‘비난은 잠시, 책임은 4년’이라고 언급하며 비례대표 연합정당 참여에 동조하는 입장을 보이자 “이 전 총리의 말이 재밌다. 욕 먹어도 고(go), 본인의 철학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며 “이분 윤리의식도 문제지만 친문한테 묻어가려고만 하는 걸 보니 애초에 대권주자 할 그릇이 못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마냥 총리 하다가 대통령 하러 정치판으로 내려왔으면 자기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없다. 그냥 무색무미무취. 그러니 이 중요한 상황에서 고작 양정철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것”이라며 “저만의 메시지를 던져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고, 그걸로 지지자를 스스로 확보해야지 그냥 남의 팬덤에 얹혀 갈 생각이나 하니”라고 쏘아붙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친문 진영이 이 전 총리를 페이스 메이커(다른 선수를 위해 속도를 조율하는 사람)로 활용하고 본선에는 다른 주자를 내세울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가족 비리 및 감찰 무마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경우 재판 결과에 따라 다시 친문 핵심 대선주자로 부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아직까지는 대선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향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떠밀리듯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시민 이사장은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 ‘알릴레오’ 마지막 방송에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통합당) 대표가 ‘이낙연 전 총리는 친노·친문이 아니어서 페이스 메이커고, 본선에 나갈 사람은 유시민 아니겠느냐’고 한 것에 대해 “(이 전 총리가) 친노무현·친문재인이 아니어서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는 말은 민주당의 당원과 지지자들을 개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이 전 총리가 대선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하고 청와대 입성에 성공하려면 대선주자로서 명확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당 내에서도 입지를 확실히 굳히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공식선거운동 기간 마지막 날인 지난 14일 동묘앞역 집중 유세에서 “민주당이 부족한 점도 많지만 안정 의석이 필요하다”며 “때로는 오만하다. 제가 그 버릇을 잡아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국민의 아픔과 세상의 물정을 잘 모르는 것 같은 언동도 한다”며 “그것도 제가 잡아 놓겠다. 국민 여러분을 모시고 국민 여러분과 함께 가는 책임 있는 정당이 되도록 제가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가 당 내 입지를 확실히 굳히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권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해찬 대표의 임기가 오는 8월 24일 종료됨에 따라 민주당은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하기 위한 전당대회를 오는 8월 개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권을 획득한 이후 대권 도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권과 대권 분리를 규정한 당헌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선에 나서려면 대선 1년 전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규정을 손보지 않는 한 6개월짜리 대표가 되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 전 총리 측은 아직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말을 아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를 당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총선이 끝나자마자 당권 도전을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의원들도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모두가 동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24일 <시사위크> 통화에서 “정치권에서는 친문 세력이 이 전 총리를 페이스 메이커로 활용하고 좀 더 젊고 참신한 주자를 내세울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전 총리는 당내 조직 기반이 약하다”며 “당 내 친문들, 386세대 등의 인정을 받고 자기 지지 세력으로 끌어들이는 과정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 대표직에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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