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 효령로에 한 건물 1층에 위치한 식당 ‘꼴더덕꼴더덕’ 앞에서 임대인과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 심정지로 사망한  고(故) 김성철 씨와 관련된 상생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망한 김씨의 노모(가운데)는 기자회견 중 원통함을 호소하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이른바 ‘궁중족발 사건’을 계기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지만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 문제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소상공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임대인과 건물 리모델링 공사 문제로 갈등을 빚던 중 임차상인이 심정지로 사망한 사건이 알려진 것이다. 

◇ 임대인 리모델링 강행에 항의하던 임차인 심정지로 사망 

유족들은 임대인의 합의 없는 일방적인 리모델링 추진에 항의하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데는 건물주 측의 행동 뿐 아니라, 법적 규정이 미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서초구 효령로에 한 건물 1층에 위치한 식당 ‘꼴더덕꼴더덕’ 앞에 마련된 고(故) 김성철 씨의 빈소에서 김씨의 어머니가 애통해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제발, 내 아들의 원통함 좀 풀어주소.”

지난 24일 오후 1시경, 서초구 효령로에 한 건물 1층에 위치한 식당 ‘꼴더덕꼴더덕’ 앞에 마련된 고(故) 김성철 씨의 빈소에선 80대 노모 A씨의 구슬픈 호소가 울려퍼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성철 씨의 유족과 꼴더덕꼴더덕 참사대책위원회의 말에 따르면 고 김성철 씨 가족은 2018년 1월 이 건물주와 3년짜리 임대차 계약을 맺고 그해 3월 건물 1층에 더덕 전문점(‘꼴더덕꼴더덕’)을 열었다. 건물주는 한 법인 업체였다. 

이들은 오픈한 지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청천벽력 같은 얘기가 듣게 됐다. 자신들을 ‘임대인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건설업체 사람들이 “조만간 건물 리모델링을 할지도 모른다”고 한 것이다. 계약 당시에는 전혀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때부터 김씨는 걱정과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건물 리모델링 검사를 하게 되면 영업을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김씨는 수시로 가슴 통증에 시달렸고 스트레스가 쌓여 병원에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건물주가 리모델링 계획이 잡혔다고 통보한 것이다. 심지어 건물주는 임차인에게 주방 일부를 철거하고, 계약 당시 지하에 놓기로 합의한 냉장고를 치워달라고 요구했다. 주방 자리에 엘리베이터를 놓겠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반발했다. 주방 자리를 내주면 영업에는 당연히 차질이 불가피했다. 

◇ 임대차 계약 남았지만 영업권 보호 안 돼  

김씨가 단호히 거절의 뜻을 밝히자 그해 12월 건물주 측은 합의안을 들고 왔다. 주방 일부를 철거하는 조건으로 보상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주방을 철거하는 것은 가게 면적이 좁아지는 것이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이 같은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건물주는 올해 2월 어떤 협의 없이 건물 외벽 공사를 시작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강행했다. 구청에서 허가를 받았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1층에서 영업을 하던 김씨의 식당은 공사 먼지와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제대로 영업이 될 리는 만무했다. 건물주 및 공사 관계자 측과의 충돌도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8일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이날 공사 인부들이 강제로 접은 가게 앞 어닝(차양막)을 보고 화가 난 김씨가 이에 항의하면서 어닝을 다시 펴는 과정에서 갑자기 심정지 쇼크가 와 쓰러진 것이다. 김씨는 구급차에 호송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다음날인 9일 오후 8시 37분에 세상을 떠났다. 

김성철 씨의 아내(왼쪽에서 두번째)가 24일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이미정 기자

갑작스럽게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임대인 측은 내용증명을 보내며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김씨의 아내인 이모 씨는 “임대인 측에선 ‘계약자가 사망했으니 계약이 해지됐다며 계약에 대한 상속 절차를 밟지 않으면 불법 점유가 돼 퇴거해야 한다’며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최소한의 미안함도 없이 이런 내용증명을 보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분노를 토로했다. 현재 해당 식당의 임대차 계약은 부인인 이씨가 이전 받은 상황이다. 

김씨 가족 식당의 임대차 계약 기간은 2021년 1월 24일까지다. 이들은 해당 계약 기간까지 임대 권리를 갖고 있지만 제대로 된 영업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심지어 갈등 끝에 고인이 사망에 이르렀지만 이씨는 “최소한의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공사 인허가를 내준 구청에서도 이번 사태엔 뒷짐을 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청은 인허가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재건축·대수선 공사 인허가 단계에서 세입자와의 합의 여부 확인은 법적 의무 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다. 

24일 기자회견에서 노동도시연대, 민생경제연구소, 빈곤사회연대, 옥바라지선교센터 등 시민단체와 민중당 서울시당, 서울녹색당, 정의당 서울시당 등 정당 관계자가 참석해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미정 기자

이에 이들은 결국 스스로 거리에 나섰다. 김씨의 원한을 풀고 제도를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14일부터 가게 앞에 항의 플래카드를 걸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식당 앞에서는 작은 빈소가 차려졌다. 시민단체에서도 안타까운 사연에 연대의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꼴더덕꼴더덕 참사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지난 24일 가게 앞에선 ‘꼴더덕꼴더덕 상생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가족과 함께 노동도시연대, 민생경제연구소, 빈곤사회연대, 옥바라지선교센터 등 시민단체와 민중당 서울시당, 서울녹색당, 정의당 서울시당 등 정당 관계자가 함께 참석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도 상생 촉구를 위해 함께 자리했다. 

꼴더덕꼴더덕 참사대책위원회 쌔미 활동가는 “해당 임대인은 제대된 협의 없이 일방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강행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어떤 사과도 없이 임차인 측이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나쁜 사람인 양 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건물 외벽엔 임대인 측 입장이 담긴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었다. 임차인들이 공사 시작에 맞춰 방해를 하면서 거액 취득 등의 부당한 목적을 갖고 불법 점거 시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유가족 측이 수억원을 요구했다는 내용도 적었다. 반면, 임차인 측은 “우리는 장사를 계속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며, “장사 중단에 따른 피해를 예상해 금액을 말한 적인 있지만 거액의 돈을 요구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 임대인, 협의없이 인테리어 강행해도 보호장치 없어… “임차인 보호 제도 필요해”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유가족들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정 기자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이번 사연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 소장은 “열심히 장사를 해서 식구들과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분이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며 “임차인들이 코로나19로 많이 힘든 상황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어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대인 측에 사과와 함께 대책 마련도 요구했다. 안 소장은 “유가족들의 호소를 귀담아 듣고 실질적인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검우 노동도시연대 대표는 제2의 사태를 막기 위해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 대표는 “안타까운 점은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건물에 대한 개보수를 진행할 때, 임차인들의 영업권을 보장할 제도가 제대로 없다는 점”이라며 “서초3동 인허가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자치구 건축 인허가와 심의는 건축법과 안전관리 법률 등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지며, 상가임차법 위반 여부를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지방자치 단체 조례 중엔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회와 지자체가 관련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상가 임대인의 건축 행위에 대해서 임대인과 협의가 이뤄졌는지 확인하고 미흡할 시, 단속 및 지도할 수 있는 법률과 지자체 조례가 하루 속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딸도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 섰다. 김씨의 딸은 “이렇게 아빠가 돌아가시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며 “이 모든 게 무리한 리모델링 공사 요구에서 시작된 것이고,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구청은 확인조차 안하고 공사 허가를 내줬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가장 원통하다. 제2의, 제3의 김성철이 다시 나오지 않게 않도록 임차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 갈등이 극단적인 폭행시비로 번졌던 ‘궁중족발 사태’가 발생한 후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대거 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임대인과 임차인들의 분쟁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법적 미비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소상공인들의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21대 국회가 개원을 앞두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없는지 살피기 위한 입법자들의 행동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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