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늘 ‘에너지’의 발전과 함께했다. 142만년 전 시작된 불의 시대를 지나 화석연료의 시대에 들어선 인류는 산업혁명을 이룩했고 원자력이라는 고효율 에너지원를 통해 지금의 현대문명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에너지원은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이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할 새로운 차세대 에너지원을 찾고 있다. 그 해답 중 하나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수소’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해 1월 수소사회로의 도약을 선포했다. 이후 많은 성과도 있었으나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점도 상당수 존재한다. 이에 <시사위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걸어온 수소경제의 길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는 그린 수소는 값비싼 생산비용 때문에 대다수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재생에너지에 특화된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을 이용해&nbsp; P2G시스템을 활용한 수전해 그린 수소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미지=픽사베이 / 그래픽=시사위크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로 주목받는 그린 수소는 값비싼 생산비용 때문에 대다수 국가에서는 아직까지 상용화 단계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다. 그런데 최근 재생에너지에 특화된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을 이용해 P2G시스템을 활용한 수전해 그린 수소 생산하려는 움직임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 이미지=픽사베이, 그래픽=시사위크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원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수소는 보통 ‘그레이 수소’와 ‘그린 수소’로 분류된다. 그레이 수소란 천연가스(CH₄)나 석탄에서 추출된 수소를 말한다. 수소를 화석연료로부터 추출할 시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기 때문에 미완성된 수소라는 의미로 ‘그레이(회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반면 그린 수소는 전기화학반응 이용한 수전해 기술로 물(H₂O)을 분해해 생산하는 수소를 말한다. 수전해 기술을 사용해 물을 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만 생산되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 이것이 그린 수소가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라고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수전해 기술을 이용한 수소 제조비용은 평균 2.42달러~5.02달러로 천연가스 개질(kg당 0.62~1.35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값비싼 전기요금이 주요 원인이다.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의 수소경제 선도 국가들은 아직까지 그린 수소 대신 그레이 수소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세계 각국의 수소업계에서 그린 수소를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 할 수 있는 시장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바로 ‘기회의 땅 아프리카’다. 이에 글로벌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수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채비에 서두르고 있다.

◇ ‘자연이 내린 축복의 땅 아프리카’… 태양광 활용한 수소 생산에 최적화

수소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아프리카의 ‘지리적 이점’이 그린 수소 생산비용 문제해결의 해답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그린 수소의 생산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P2G’시스템을 활용하기에 아프리카의 자연 환경은 최적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P2G시스템은 (Power to Gas)이란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 방식으로 생산된 전력 중 사용하고 남은 ‘잉여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해 저장하는 기술이다. 원래 남아서 방출돼야하는 잉여전력을 수소의 형태로 저장해 사용할 수 있어 전력낭비를 줄일 수 있고 동시에 수전해 수소 생산 시 들어가는 막대한 전기요금도 줄일 수 있어 수소경제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때 아프리카 적도 부근의 경우 일조량이 매우 풍부하고 일조차도 심하지 않아 P2G시스템에 필수적인 태양광 발전에 아주 유리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미 해외 태양광 기업들을 유치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의 경우 일조량이 매우 풍부하고 일조차도 심하지 않아 P2G시스템에 필수적인 태양광 발전에 아주 유리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이용해 수전해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픽사베이

지난 2019년 KOTRA 한지현 탄자니아 다레살람무역관은 ‘탄자니아 에너지산업을 이끌어 갈 태양광시장’ 문서를 통해 “탄자니아 전력공사(TANESCO)는 전력생산의 수력의존도를 낮추고자 풍력과 태양광에너지 등 수력을 대체할 재생에너지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탄자니아 정부 또한 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태양광에 최적화된 아프리카 적도 지역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구축하고, 이때 생산된 전력 중 남는 잉여전력을 활용해 수전해 수소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린 수소의 생산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으며 아프리카에서 대량 생산된 수소를 주요 수소 국가들이 수입함으로써 수소 공급량 부족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수소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수소융합얼라이언스 추진단(이하 H2KOREA)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의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자연환경은 그린 수소의 생산을 위한 P2G시스템을 가동하기에 매우 적합하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지형상으로 대규모 태양광 발전에 힘들어 P2G시스템을 이용한 수소 생산에 한계가 있었으나 아프리카로 수소산업이 진출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백지 상태의 아프리카 수소시장… ‘블루오션’ 진출 서두르는 유럽 국가

수소업계 관계자들은 아프리카의 수소산업이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없다는 점도 우리나라가 빠르게 진출해야할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소업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아프리카의 경우 재생에너지가 용이하다는 점을 빼놓고 보면 수소나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백지상태나 다름없다”며 “유럽 등 국가들이 선진 기술을 앞세워 수소산업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선, 송전탑 등의 일반 전력 인프라보다 가스 저장 시설과 운송 인프라만 있으면 이용하기 훨씬 수월한 수소는 아프리카에서 큰 메리트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수소자동차, 수소연료전지, 수소개질기 등에서 세계에서 최상위권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아프리카에 진출하게 된다면 시장 선점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특히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발전 시스템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하고 있다. 일조량이 많은 낮에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밤에는 남은 잉여전력으로 생산한 수소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공화국 과학혁신부 코스마스 치테메 수소에너지 국장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국제 수소연료전지 파트너십(IPHE) 수소경제포럼’에서 아프리카 내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IPHE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국제 수소연료전지 파트너십(IPHE) 수소경제포럼’에서 아프리카 내의 수소연료전지 발전의 가능성에 주목한 바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과학혁신부 코스마스 치테메 수소에너지 국장은 이날 발표를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태양광 시스템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를 해결하고자 한다”며 “특히 태양광 전기분해로 수소를 생산하는 P2G시스템을 활용해 학교 등의 기관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2030년까지 석탄 화력 발전의 비중을 크게 줄이고 수소연료전지 등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릴 것”이라며 “수소연료전지 인프라 확대를 위해 기업들과의 협업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 수소 시장 진출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유럽 국가들이다. 지난 2월 독일의 경제주간지 ‘슈피겔’ 보도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수소의 대량 생산을 위해 서아프리카 지역 국가들과 파트너십 체결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서부에 수소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생산된 수소를 운반할 가스관, 선박, 차량 등의 인프라도 구축해 독일로 대량의 수소를 공급한다는 목표다, 

‘아프리카 수소 파트너십(AHP)’은 지난 2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이틀 간 EU GCC 청정 에너지 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수소위원회 등과 함께 유럽 내 그린 수소를 생산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했다./ AHP

아울러 아프리카 내 수소산업을 추진하고 있는 ‘아프리카 수소 파트너십(AHP)’은 최근 EU GCC 청정 에너지 네트워크, 우크라이나 수소위원회 등과 함께 유럽 내 그린 수소를 생산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AHP가 발표한 ‘유럽(EU) 내 그린 수소 거래를 위한 보고서:2x40GW’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북아프리카와 우크라이나는 40GW 규모의 전해조(전기 분해를 행하도록 전극과 전해액을 넣은 수전해 수소 생산장치) 용량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에는 아프리카 내수용 수소 생산 능력은 약 7.5GW, 해외 수출을 위한 수소 생산 능력은 약 32.5GW규모로 설정했다.

AHP는 “해당 로드맵에 따라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전해기 용량을 실현하게 되면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개질을 통해 생산되는 그레이 수소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유럽에서는 연간 약 8,200만 톤의 CO₂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 ‘선진국’에만 신경 쓰는 우리나라… “아프리카 시장 진출 위한 노력도 필요”

그러나 유럽 등 글로벌 수소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들이 슬슬 아프리카라는 ‘블루오션’에 눈독 들이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논의단계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수소산업 관련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호주, 노르웨이 등의 선진국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미국, 노르웨이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수소산업 기반이 탄탄하고 수전해 분야, 액체수소 분야 등에서 우리나라를 크게 앞서는 ‘수소 선진국’이다. 

이 같은 글로벌 선진국과의 업무협약은 우리나라 수소경제사회 기반을 튼튼히 하고 선진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지만,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확보하기 위해선 아프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으로의 진출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수소산업시장 진출은 상당히 더딘 상태다. 그나마 지난 2월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이 아프리카 내 드론을 통한 물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투자자 및 사업자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인 정도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지난 2월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이 르완다에서 개최된 프리카 드론 포럼(ADF)에 참가해 수소드론 ‘DS30’을 선보이며 아프리카 내 드론을 통한 물류 인프라 구축을 위한 아프리카 각국 정부와 투자자 및 사업자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보이는 정도 밖에는 별다른 소식이 없다. 

수소업계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이 아프리카 투자에 아직까지 별다른 계획이 없는 것이 아프리카가 가진 ‘개발도상국 이미지’가 연관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개발도상국인 아프리카와 업무협약이나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것보다 ‘선진국’인 호주, 네덜란드 등과 손을 잡는 것이 국민들의 긍정적인 관심을 받기 좋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는 “대표적인 에너지 선진국들이 모여있는 유럽의 경우 새로운 에너지 시장의 ‘블루오션’인 아프리카 시장 선점에 시동을 걸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호주, 네덜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등과의 파트너십 체결이나 업무협약에만 힘쓰고 있어 관점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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