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4 02:57
[김재필 '에세이'] H에게-정치인이 새겨야 할 ‘곡신불사(谷神不死)’
[김재필 '에세이'] H에게-정치인이 새겨야 할 ‘곡신불사(谷神不死)’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0.04.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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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지? 봄이면 꽃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녔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집에서 봄을 보내고 있네. 설악산이나 만항재 같은 높은 곳은 5월도 이른 봄이니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나면 편한 마음으로 다녀와야겠네. 야생화 찾아다닐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는 정희성 시인의 시 <두문동>일세.

자세를 낮추시라/ 이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여기는 풀꽃들의 보금자리/ 그대 만약 이 신성한 숲에서/ 어린 처자처럼 숨어 있는/ 족두리풀의 수줍은 꽃술을 보려거든/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히시라

시인은 산과 들에서 자생하는 야생의 꽃들을 제대로 보려면 자세를 낮추고, “풀잎보다 더 낮게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말하네. 옳은 지적일세.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아직 바람이 차기 때문에 추위를 피해 땅에 바싹 붙어 피는 것들이 대부분이네. 노루귀, 얼레지, 현호색,

민들레, 제비꽃, 바람꽃, 광대나물, 긴병꽃풀, 양지꽃, 족두리풀 등 모두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는 볼 수 없는 꽃들이야. 그래서 야생화를 좋아하거나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어. 무릎을 꿇거나 땅 위에 납작 엎드려야만 꽃을 제대로 보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거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저절로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네. 꽃도 자기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큰절을 자주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다 보여준다는 걸 알게 되지.

이번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와중에 치러진 21대 총선 결과를 보면서 우리 모두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걸 새삼 뼈저리게 통감했네.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한 곡신불사(谷神不死)의 뜻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계곡의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가뭄에도 계곡은 마르지 않듯 가장 낮은 곳에 머물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야. 오늘은 자기를 낮은 곳에 두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결코 죽지 않는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우리나라 정당들에게 들려주고 싶네. 어느 정당이든 국민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교만해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이번 총선 결과가 보여줬거든.

먼저,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에서만 163명을 당선시켜 국회 과반 의석을 훌쩍 넘긴 더불어민주당은 16년 전 열린민주당의 실패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겸손해져야 하네. 집권여당으로서 국민들을 실망시켰던 일들에 대해 먼저 자기반성부터 하는 게 옳겠지. 꼼수 비례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켜버린 것에 대해서는 국민들과 소수 진보정당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하네. 국회가 열리면 바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정치의 장으로 나갈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도리이고. 이전보다 더 고개 숙이고 더 손을 내미는 겸손한 자세로 임하면 이번 꼼수 정치에 실망했던 국민들도 이해하고 지지해 줄 거라 믿네. 민심은 흐르는 물과 같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아. 민심이 언제나 그들 편은 아니라는 것, 이번처럼 국민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은 약체 야당을 만나는 행운이 또 있지 않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걸세.

이번에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더 크게 반성해야 하네. 이 칼럼에서도 몇 번 지적했지만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 지난 10년 동안에 8번의 비상대책위원회라니 어디 이게 정상적인 정당인가? 이번에 낙선한 당의 지도급 인물들이 왜 ‘국민 밉상’이 되었는지, 그들의 교만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제대로 반성하는 절차가 필요할 걸세. 지금 미래통합당에 남아있는 다선 의원들에게 필요한 게 루쉰이 말한 ‘중간물 의식’이 아닐지 몰라. 낡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나를 밟고 가라’는 담대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거야. 지금 보수야당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게 자기들 책임이기도 하거든. 낡은 세상의 때가 잔뜩 묻은 자들이 새롭게 태어나야 할 정당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도 교만이야. 자신들은 꽃을 위해 기꺼이 썩어 거름이 되는 들풀로 만족하는 게 노자의 곡신불사 정신에도 어울리는 겸손한 행동인 것 같네만…

20대 국회를 왜 동물국회라고 불렀는가? 만나서 싸움만 했기 때문일세. 여야 모두 교만해서 서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어디 소통 없이 정치가 가능한가? 그가 누구든 자신이 마치 신이나 된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은 믿어서는 안 되네.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도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 또 지금처럼 전문화가 심화된 세상에서 한 개인이 갖고 있는 지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겸손해야 하는 거야. 쉬지 않고 계속 공부도 해야 하고. “나이 든 사람은 왜 꽃을 사랑하는 걸까요? 인간의 불완전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스위스 출신의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의 말일세. 나이 들면서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살고 있네. 불완전성을 솔직히 인정하고 겸손해지는 것, 그게 참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더 아름답게 보여야 좋은 세상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