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간 암호화때문에 필터링 불가능… 사생활 침해 논란도
해외 사업자는 못잡고 국내 플랫폼에 역차별만 강화될 것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7일 일명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개정안들을 전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인터넷 업계는 해당 개정안들에 대해 사업자의 부담을 키우고,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7일 전체 회의를 열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과 ‘전기통신사업법’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통과시켰다.

일명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해당 개정안은 최근 메신저프로그램 ‘텔레그램’을 통한 성 착취 영상 공유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백혜련, 이원욱, 한정애 의원이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에 대해 인터넷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부담만 키우고 이용자 간 대화를 열람해 자칫 사생활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개정안을 두고 국회와 인터넷 업계 간의 진통이 예상된다.

◇ 디지털 성범죄물 ‘필터링’ 의무… 인터넷 업계 “기술적으로 불가능”

이번 개정안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네이버·카카오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들이 불법 성 착취물을 신속하게 삭제하지 않을 경우 과징금 또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처벌조항이다.

전기통신사업법 22조, 95조, 104조에 부가통신사업자의 경우 자신이 운영·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아동·청소년 관련 음란물이 올라올 시 삭제 및 접속 차단을 해야 하는 유통방지 조치 의무 조항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통에 대한 적극적인 차단과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필터링 기술’등 기술적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시 해당 사업자는 과징금을 부과 받는다. 여기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앞서 나열한 조치들을 위반할 시에는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늘 전체회의에 앞서 지난6일 제1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개회하고, n번방 방지법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뉴시스

문제는 해당 법안이 시행된다면 인터넷 사업자들은 인터넷 상에서 이용자들이 올리는 모든 대화, 사진, 영상물들을 실시간으로 검열해야 한다. 그러나 이때 필요한 필터링 기술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실제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대부분의 메신저 서비스는 이용자의 대화내용은 ‘종단간 암호화’되기 때문에 서비스 제공자가 대화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 필터링 기술 적용이 불가능하다. 종단간 암호화 기술이란 메시지를 처음 입력하는 단계부터 최종적으로 수신하는 모든 단계까지 메시지의 모든 내용을 암호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해커 등 범죄자들이 중간에서 대화 내용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이용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7일 성명서를 통해 “현재 국민이 애용하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인터넷 사업자들은 이미 자율적으로 서비스 내의 불법정보를 정화하고 있다”며 “인터넷 사업자에게 사업자가 판단하기 어려운 불법촬영물등에 대해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의무 및 기술적·관리적 조치의무를 부과하거나, 불법촬영물등 유통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제도의 신설은 관련 사업자에게 문제해결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국가의 과도한 개입은 혁신을 저해하고 천편일률적인 서비스로 퇴보하게 하며 이용자의 불만과 불편을 야기하는 등 상당한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강제수사권 또는 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부가통신사업자 전체가 온라인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이용자의 게시물, 대화내용 등에 불법촬영물이 있는지 여부를 분석하게 될 경우 통신의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전기통신사업법,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등 현존하는 규제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전했다.

IT전문가들과 법조계 관계자들은 지난달 28일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의 주제로 긴급개최한 토론회에서 n번방 방지법이 국내 기업의 발목만 잡을 뿐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진은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는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 IT전문가, 법조계도 실효성 의문 제기, “국내 사업자 발목만 잡을 수 있어”

아울러 IT전문가들과 법조계 관계자들은 n번방 방지법이 국내 사업자들을 옥죄는 ‘족쇄’가 될 뿐 정작 성 착취물 영상이 다수 유통되고 있는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의 해외 사업자들은 제재하기 어려워 법적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지난달 28일 “n번방 방지법, 재발방지 가능한가?”의 주제로 긴급개최한 토론회에서 최민식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교수는 해당 법안들에 대해 “이는 범죄여부를 인식하지 못한 채 단순히 유통을 매개한 것뿐인 인터넷 사업자들을 정범 취급하는 위험한 논리”라고 밝혔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도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가 강화되면 범죄자들은 해외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며 “국내 플랫폼에 역차별을 강화할 경우 이용자들이 해외 플랫폼으로 빠져나가는 썰물 효과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자들이 텔레그렘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 보도 이후 경찰이 주범을 검거하는 것을 보면 국가의 사전 대응 실패를 보여준다”며 “그 자체로 불법이 아닌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아닌, 감청허용, 잠입수사의 법제화, 증거능력 부여 등 수사기관이 디지털 범죄자를 더 잘 잡을 수 있도록 범죄억지력을 강화하는 법제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진근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논의되는 ISP에 대한 규제는 n번방의 책임을 범죄자가 아닌 ISP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여 문제의 핵심을 희석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며, “ISP를 범죄의 방조자로 보는 입법태도에서 벗어나 수사와 증거보전 그리고 범죄자 처벌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입법안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경 서울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n번방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반복되는 원인 분석이 선제돼야 한다”며 “그 원인은 지나치게 낮은 형벌로 인한 법의 위하력 상실과 국제공조 역량의 미흡에서 시작되는데,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인 ‘방심위의 선 삭제, 후 심의 절차 도입’‘OPS 책임강화 규정’ 등은 모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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