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을 통해 ‘전국민 고용보험제도’를 꺼내들었다. 청와대는 고용보험 제도 적용의 ‘단계적 확대’를 밝혔지만 논의 진행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특별연설에서 “인류의 역사는 위기를 겪을 때 복지를 확대하고 안전망을 강화해 왔다”면서 “지금의 코로나 위기는 여전히 취약한 우리의 고용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구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며 “아직도 가입해 있지 않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며 국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1995년 도입된 고용보험은 임금 근로자만 가입 대상이다. 제도가 정착 단계에 들어가면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가량은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이들은 일자리를 잃었을 때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제 위기의 여파가 몰려오면서 국내 고용 안전망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 “전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 놓겠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1일 오전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기초를 놓겠다’는 것은 당장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라며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의제를 공식화한 청와대도 단기간에 ‘전국민 고용보험’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홍보, 예산 확보, 당사자 간 의견수렴 및 합의, 운영계획 수립 등 조정할 것이 많은 중장기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현재 코로나 사태로 고용 사각지대가 드러난 지금이 고용보험 확대 추진의 적기라고 본 셈이다.

강 대변인은 “고용보험 가입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직종마다 단계별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특고직(특수고용직) 노동자 등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있는 상태라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지만 자영업자들에 대해선 아직도 조금 더 토론과 논의가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정부 방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 한정애 의원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예술인에게도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와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단, 예술인만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게 됐다. 특수고용노동자 포함 여부는 21대 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같은날 코로나19 고용노동 대책회의에 참석해 “고용보험 미가입 노동자분들의 가입을 근원적으로 촉진하고 적용 대상을 확대해나가기 위해서는 소득 파악체계 구축, 적용·징수체계 개편, 국세청·근로복지공단·건강보험공단 등 유관기관 간 정보 연계 등의 과제가 선결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고용보험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소득이 아닌 월 급여를 기준으로 산출하게 된다. 현재 노동자의 고용보험료는 노동자와 사용자 각각 0.8%씩 부담하고 있다. 

자영업자의 경우 ‘자영업자 고용보험제도’가 존재하지만 의무가 아니라 선택 가입이다. 게다가 사업자 몫 보험료까지 본인이 부담해야 해 가입을 꺼리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해 말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 인원은 2만2,529명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인원이 약 1,3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이에 정부는 급여를 자동으로 신고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프리랜서·자영업자의 고용보험 편입을 위해 급여가 아닌 소득 기준으로 징수하는 체계 마련에 들어간 것이다. 소득기준으로 고용보험료가 부과되면 사실상 건강보험료와 비슷한 부과체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원들이 세계노동절 130주년을 맞이해 지난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택배노동자 진짜 사장 규탄대회 택배차량 드라이브-인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열린 집회에서 전국택배연대노조는 교섭을 거부하는 CJ 대한통운과 우정사업본부를 규탄하며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전국민고용보험 도입을 주장했다. /뉴시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원들이 세계노동절 130주년을 맞이해 지난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택배노동자 진짜 사장 규탄대회 택배차량 드라이브-인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 재원조달 등 과제 산적

당정청이 자신있게 전국민 고용보험을 꺼내들었지만, 제도 안착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소득 중심으로 고용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사실상 건강보험과 비슷하게 직장가입자는 급여를 기준으로, 지역가입자는 이자·부동산임대·사업·근로 등 포괄적 소득을 기준으로 고용보험를 산출하게 된다. 가입의무화까지 이뤄질 경우 조세 성격이 강해진다.

현재 자영업자가 내야 하는 고용보험료는 일반 노동자보다 비싼 월 4만950원~7만6,050원이다. 월 급여액과 그에 따른 구직급여액을 임의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자영업자의 소득이 불규칙하며, 이들도 소득 노출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안대로 고용보험에 편입할 경우 포괄적 소득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보험료 납입에 대한 조세저항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또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보험 가입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일각에서는 고용보험 확대 초기 단계에서 사업자 몫 보험료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방법이 거론되기도 한다. 

입법조사처는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와 자영업자가 고용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한국도 점진적으로 노동자·소상공인의 고용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장기적으로 면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세부적인 로드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보험 가입을 선택이 아닌 의무로 강제할 수 있는지, 의무가입을 위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보험료 징수체계나 요율, 실업급여 액수 등에 대한 밑그림은 없이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의제만 띄워진 것이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 정책위는 지난 8일 “‘민주당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공식화’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 민주당은 전국민에 대한 고용안전망 확충 필요성에 공감하고 이를 위해 21대 국회에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고, 강민석 대변인도 지난 11일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당장 전면적으로 도입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기업과 야당은 대상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그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1일 환노위를 통과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에서 이들이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환노위 미래통합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특수고용노동자는 너무 범위가 커서 그 부분을 오늘 통과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고용자 지위에 있는 사람들 의견도 청취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원 마련 문제가 있다. 지난해 실업급여 등에 쓰인 예산은 약 14조원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2,800만명의 노동자 중 1,500만명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두 배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 

게다가 국회예산정책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한정애 의원안)이 통과될 경우 예술인에 대한 실업급여에 2021~2024년에 총 822억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현재 고용보험의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 고용보험기금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고용안정기금은 지난해 11조8,508억원의 수익을 냈지만, 실업급여 등 지출이 13조9,452억원을 넘어서며 2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또 임이자 미래통합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고용보험기금은 1,07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만일 고용보험 가입 대상 확대, 고용보험 보장액 확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실업급여 추가 지출 등이 겹친다면 적자폭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때문에 재원 마련을 이유로 여야가 충돌할 우려가 있다. 통합당은 아직 전국민 고용보험제도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대규모 국가 재원 투입이 예상되는 만큼 논의가 시작되면 반대 당론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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