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집에 갇혀 있는, 지겹고 긴 날을 보내려 TV를 켰더니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 안내가 나옵니다. 연속극, 예능보다 낫지 싶어 다운받아 봤는데,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르던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재미나게 봤습니다. 거기 나오는 코멘트 하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선수, 아니 운동선수로는 불세출(不世出)입니다. 스물한 살 때인 1984년 미국프로농구(NBA)에 시카고 불스 선수로 데뷔, 2003년 은퇴할 때까지 농구선수로서의 활약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에어 조던(Air Jordan)’이라는 별명이 그를 말해줍니다. 공중에 높이 점프해서 오래, 멀리 날아가 꽂아 넣는 덩크슛 능력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던지 그렇게 떠 있는 상태에서 뒤따라 떠오른 수비수를 피해 왼손에 있던 공을 오른손으로 옮겨 점수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기술을 ‘신기(神技)’라고 부른 농구인들이 많습니다.

그는 이런 능력과 기술로 시카고 불스에게 두 번이나 NBA 3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 (1991~1993, 1996~1998)을 안겨 줬고, 자신은 NBA 최우수 선수(MVP)를 5번 차지했으며 14번이나 NBA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한 시즌에 3000점 득점을 올린 NBA 선수 두 명 중 한 명이 조던이기도 합니다. NBA는 홈페이지에 “만장일치로, 마이클 조던은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980~1990년대에 NBA의 농구가 세계적 주목을 받게 해준 조던에게 감사를 이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모든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던은 홈런왕 베이브 루스 다음으로 인기가 높았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2014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서 그의 재산은 21억 달러였습니다. NBA 출신으로는 첫 번째 억만장자이며, 미국 흑인 중에서는 네 번째 부자입니다.

내가 본 조던 다큐멘터리는 조던이 위업을 이루는 과정을 본인과 주변 사람들 인터뷰로 보여줬는데, 1984년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이 첫날 공 다루는 걸 본 한 고참 선수는 그때 이렇게 탄식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조던과 연습을 하다가, 아 이제부터는 저 (어린) 놈이 내 멱살을 잡아끌고 다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신출내기에게 멱살 잡혀 끌려 다녀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득도 컸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이 코멘트가 눈에 들어와 박히는 바람에 조던 공부를 좀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찾아낸 조던 이야기를 더 옮기겠습니다.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3학년(전공은 문화인류학)을 마치고 황소(Bull)가 팀 상징인 불스의 선수가 됐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니 졸업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겁니다. 1982년 노스캐롤라이나가 전미대학농구대회 우승을 차지할 때 1학년이던 조던이 우승의 견인차이자 추진동력이었습니다. 이처럼 이미 유망주였지만, 송아지에 불과한 1년차 조던이 불스에서도 두각을 뾰족이 힘차게 내밀 거라고 짐작한 사람은 드물었던 모양입니다. “조던이 내 멱살을 잡아끌겠구나!”라고 탄식한 고참도 그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대학 때 잘 해봤자지, 프로의 세계는 다르단 말이야. 뜨거운 맛을 한번 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될 걸.”

그런데 웬걸, 한두 번 연습해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지요. 루키(Rookie) 조던이 팀을 이끌어갈 핵심이라는 걸 알아버린 거지요. 첫 번째 시즌에 조던은 그 전 3년간 팀 승률이 평균 35%로, 약체 중의 약체였던 시카고 불스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킵니다. 시카고에 경사가 났습니다. 야구의 시카고 화이트삭스, 미식축구의 시카고 베어스만 아끼던 시카고 시민들은 이제 조던이 날아다니는 시카고 불스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은 그때 변호사였는데, 조던이 뛰는 경기를 직접 보고 싶었지만 입장권이 비싸 TV로만 봤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팀의 고참은 조던을 인정해, 그가 멱살을 잡아끄는 대로 끌려 다녀 자신도 빛을 보고 오래도록 계속된 팀의 영광에도 기여했지만 다른 팀 고참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조던은 데뷔 첫해에 NBA 올스타에 뽑혔는데, 1년차짜리가 자기네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들과 맞먹게 된 게 불편했던 올스타 동료들은 조던에게는 패스를 안 하고 자기들끼리만 놀았다는군요. 아무리 에어 조던인들 공이 안 오는데 용뺄 재주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조던은 실력을 펼쳐볼 새 없이 끝난 올스타 게임의 씁쓸한 기억은 금세 털어버리고 정규 시즌에서는 다시 펄펄 날기 시작, 그 해의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올스타전에서 그를 깔보는데 앞장섰던 고참 선수를 몇 년 뒤 NBA 결승에서 만났을 땐 실력으로 묵사발을 만들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조던 고참의 탄식을 듣는 순간, 지금 내 멱살을 잡은 무리들에게 분노가 치솟았습니다. ‘깜’도 안 되는 것들이 나를 자기네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가려합니다. 대부분 부도덕하고 파렴치합니다. 뻔뻔하고 탐욕스럽습니다. 어두운 것들이 세상을 밝히겠노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들을 매일 뉴스에서 봐야 하는 것, 실력 있고 헌신적인 젊은 조던 같은 인물 대신 이런 자들이 지금 내 멱살을 잡고 있는 게 숨이 막힙니다. 오, 신이시여! 나에게 조던처럼 높이 뜨는 능력과 덩크슛 능력을 주셔서 저들의 뻔뻔한 얼굴과 거짓을 쏟아내는 입술에 내리꽂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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