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4 07:53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중병 걸린 미국 ‘혼용무도’
[김재필 '에세이'] H에게- 중병 걸린 미국 ‘혼용무도’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0.06.0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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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는 ‘당신은 어느 쪽인가?’라는 시에서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만 있다고 말하네. 그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이 죄인과 성자, 부자와 가난한 자, 겸손한 사람과 거만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등으로 양분되는 것은 아닐세. “내가 말하는 두 부류 사람이란/ 짐을 들어주는 자와 짐을 지우는 사람이다.// 어디를 가든 알게 된다./ 사람들은 늘 이 둘로 나뉜다는 걸.// 정말 이상한 일은 짐을 드는 사람이 한 명이면/ 짐을 지우는 사람은 스무 명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에게 당신의 짐을 지우고/ 걱정을 끼치며 사는 사람인가?”

요즘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을 보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뿐만 아니라 두 종류의 나라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 짐을 들어주는 나라와 짐을 지우는 나라. 이른바 G2 중 하나인 미국이 ‘힘겹게 가는 이의 짐을 들어주는’ 나라가 아니라 남에게 짐을 지우고 걱정을 끼치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안타깝고 불안하네. 좋든 싫든 미국은 아직까지 우리가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이니까.

지난 5월 24일 미국의 최고 권위지인 뉴욕타임스(NYT)는 일요일판 1면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숨진 1,000명의 이름과 짧은 부고로 가득 채웠네. 코로나19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고 있는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었지. 기사나 사진, 그래픽 하나 없이 이름과 짧은 부고로만 가득 채운 1면… 가슴 아픈 일이야.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미국의 코로나19 피해는 심각하네. 5월 28일에 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거든. 2월6일 캘리포니아 주에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뒤 112일 만이야. 이는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의 30%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지. 첫 사망자가 나온 후 매일 900명 정도가 숨진 셈이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미군이 11만 6,000명이고, 한국전쟁에서 죽은 미군이 약 5만 4,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에 숨지고 있는지 알 수 있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에서는 지난 5월 26일 비무장 흑인의 목을 8분 46초 동안 짓눌러 숨지게 한 경찰의 과잉행동을 규탄하는 시위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플리스에서 시작하여 뉴욕, 워싱턴 DC, 로스엔젤레스(LA) 등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네. 인종차별에 항의해서 시작한 시위가 몇몇 지역에서는 방화와 약탈 등 폭동으로 비화되는 양상일세. 심지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사람까지 있다고 하는군. 어쩌다가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지…

미국 상황을 보면서 2015년에 우리나라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였던 혼용무도(昏庸無道)를 다시 떠올렸네. 어리석고 무능한 임금이라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의 ‘혼용’과 나라의 예법과 도의가 무너진 상태인 ‘무도(無道)’가 합쳐진 사자성어인 혼용무도는 세상이 어지럽고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일세.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 안이하게 대처했던 박근혜 정권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매우 적절한 사자성어였지. 그런 분노들이 모여 이듬해에 촛불혁명이 일어났었고.

혼용무도는 지금 미국 상황에도 잘 어울리는 사자성어일세. 4년 전 부동산 재벌 도날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유명 경제학자인 폴 크루구먼은 트럼프를 ‘무식한 떠버리’하고 불렀지. 좀 과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의 말이 맞았네. 말 많고 남 탓만 하는 무식하고 탐욕만 많은 장사꾼을 대통령으로 뽑은 나라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요즘 미국이 잘 보여주고 있네. 트럼프는 노자가 『도덕경』제17장에서 말했던 최악의 지도자 유형일세.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는 지도자’이지. 이런 유형의 지도자는 거짓말과 남 탓을 잘 해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네. 더구나 지금처럼 침착하고 사려 깊은 리더십이 요구되는 위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그런데도 아직도 그의 지지율이 40%를 오르내리고 있다니… 코로나19가 이른바 최강대국 미국의 민낯을 다 드러내고 있네. 이미 중병을 앓고 있는 미국이 전 인류에게 큰 짐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