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기본적 사실관계 소명됐지만, 구속 필요성 및 상당성 소명은 부족”

불법 경영승계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법원이 9일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삼성그룹 경영 지배권 강화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최지성 삼성 전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후 9일 오전 2시에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어 “이 사건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 4일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주가 시세 조종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검찰 수사 심의 절차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부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반발했다.  

법원은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 진행으로 증거를 인멸할 여지가 없다는 이재용 부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검찰은 삼성 측을 상대로 약 100차례의 소환 조사와 50차례가 넘는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다.

구속영장 기각 직후 검찰은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다만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영장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게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후 지난 2018년 2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은 다시 수감될 위기를 벗어나게 됐다. 

‘총수 부재’라는 위기를 피하게 된 삼성은 한시름 놓았다는 분위기다. 한 삼성그룹 계열사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전반적인 경제 위기까지 닥친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다면 회사 전반에 큰 위기에 빠졌을 것”이라며 “추후 재판이 남아있어 아직은 걱정이 된다”고 전했다.

그동안 삼성 측은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인한 경영 위기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 변호인 측은 이번 구속영장 기각 결정이 나온 후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번 구속영장 기각으로 이재용 부회장 측이 요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절차도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란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검찰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결과를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시민과 각계 전문가들이 참가한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지난 2일 기소여부 및 신병처리 방향에 대해 검찰 외부의 판단을 듣고 싶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이재용 부회장 관련 사건을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위위원회에 넘길지 논의할 예정이다. 부의심의위원회는 검찰시민위원 중 무작위로 추첨된 15명으로 구성되며, 부의심의위원회가 소집을 결정하면 검찰총장은 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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