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가락시장 내 농산물 하역을 책임져 온 일부 노동자들이 부당한 작업 배제를 규탄하며 가두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가락시장 하역노동자 시민대책위원회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은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전국 최대 규모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이다. 1985년 6월 개장한 가락시장은 수도권 먹거리 유통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가락시장 내 농산물 하역을 책임져온 일부 노동자들이 생존권 위기에 내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들은 민주화 투쟁을 외쳤다는 이유로 작업 배제를 당하고 있다며 호소하고 있다. 

◇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락항운노조 출신 민주조합원이 하역 업무에서 작업 배제 된지 보름이 가까워지고 있다. 서울경기항운노동조합(서경항운노조)이 지난 2일부터 서경항운노조 조합원들로만 하역 업무를 진행하겠다고 밝히며, 사실상 가락항운노조 출신 민주조합원에 대한 작업 배제를 선언했다. 지난 11일 가락시장에서 만난 황병일 가락항운노조사수대책위원장은 “하루하루 생계가 급한데 전혀 하역 업무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어, 하루하루 힘겨운 생존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 11일 가락시장에서 만난 황병일 가락항운노조사수대책위원장은 “하역 업무를 배정 받지 못해 조합원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려 있다”고 호소했다. /이미정 기자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의 노조 민주화 투쟁 시점부터 살펴봐야 한다. 

가락시장 하역 노동자는 35년의 가락시장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온 농산물을 운송차에서 내려 경매장으로 옮기고 경매가 끝난 농산물을 중개도매상에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하역노동자의 고용 구조는 특수하다. 이들은 하역 노동조합에 가입해 일자리를 얻는 구조다. 노무공급권을 가진 하역노조는 도매법인으로부터 작업량을 요청받은 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에게 작업을 할당한다. 이에 하역노조는 사실상 사용자에 준하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가락시장 청과물 부문에선 서경항운노조와 가락항운노조, 서울청과노조 3개의 하역노조가 하역 업무에 있어 오랫동안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왔다. 그런데 지난해 가락항운노조 일부 조합원들이 ‘노조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일부 노조와 조합원의 갈등이 촉발됐다. 황병일 위원장은 “지난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락시장 하역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실태와 가락항운노조의 비민주성 및 비리의혹이 고발됐다”며 “이 글이 퍼지면서, 한 번 바꿔보자는 공감대가 조합원 사이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은 작업 배제가 일주일이 넘어선 가운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가락시장 하역노동자 시민대책위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에 대한 현장 작업 배제 사태가 일주일을 넘어섰다. 이에 맞서 가락항운노조 민주 조합원들이 생존 투쟁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가락시장 하역노동자 시민대책위

가락항운노조 일부 조합원들은 지난해 8월 20일 ‘가락항운노조 민주화를 위한 모임’(민주화 모임)을 결성하고, 위원장 직선제 쟁취를 목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가락항운노조는 위원장을 조합원들이 직접 선거로 뽑지 않았다. 이공신 전 위원장은 27년 동안 위원장직을 맡았다. 이후 선임된 오연준 전 위원장 체제 아래서도 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 가락항운노조 하역 노동자의 험난한 노조 민주화 투쟁

이에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은 지역 노동조합 유니온인 송파유니온의 도움을 받아 대의원 선출과정의 위법성, 과도한 위원장의 판공비·기밀비 문제, 전·현직 위원장의 친인척이 노조의 요직을 차지하는 문제 등을 고발하고 나섰다. 가락항운노조가 기존 시스템의 개정을 약속하면서 성공하는 듯 했던 이들의 민주화 투쟁은 올 2월 큰 위기를 맞았다. 가락항운노조 지도부가 지난 2월 11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가락항운노조 해산을 결정한 것이다. 시장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락항운노조는 이날 결정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후 사태는 복잡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우선 가락항운노조에 일을 맡기고 있던 청과 도매법인들은 업무 차질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웃노조인 서경항운노조로 하역 주체 변경을 시도했다. 이를 받아들인 서경항운노조는 기존에 가락항운노조가 맡고 있던 작업장에 대해 근로자공급사업권 허가를 신청했다. 이후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은 전방위적인 압박에 시달렸다고 황병일 가락항운노조사수대책위원장은 호소했다. 

황 위원장은 “가락항운노조에서 서경항운노조로 옷을 바꿔 입은 분회장 및 팀장들은 자릿세, 작업권을 무기로 조합원들에게 서경항운노조 가입을 압박했다”며 “작업배제 및 자릿세 박탈의 불안감을 느낀 많은 조합원들은 서경항운노조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의 투쟁은 힘겨운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이번 사태에 다수의 시민단체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가락시장 부정비리 척결과 하역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결성됐지만 사태는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했다.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 측과 서경항운노조 및 도매법인과의 갈등은 격화 양상을 보였다. 

지난 11일 가락시장 내에서 하역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정 기자  
사진은 지난 11일 가락시장 내 청과물 하역 작업장 구역에서 분주하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모습. /이미정 기자

그러던 이달 초부터 서경항운노조 동화청과 분회의 민주조합원에 대한 작업배제가 현실화됐다. 서경항운노조가 “6월 2일부터 서경노조 조합원들로만 하역 업무를 진행하겠다”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이에 따라 서경항운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약 100여명의 하역노동자들은 출근을 거부당했다고 황병일 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들의 빈자리는 수십 명의 용역직으로 대체된 것으로 알려진다. 

◇ 가락항운노조 기습 해체 후 4개월… 생존권 위기에 몰린 노동자들  

고용노동부도 그들의 편이 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일 서경항운노조에게 동화청과와 중앙청과 영역에서의 근로자공급사업권을 허가했다. 작업 배제가 현실화된 다음날 이뤄진 결정이었다. 황 위원장은 “고용노동부는 작업 배제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업권을 허가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작업배제가 일주일이 넘어서면서, 생활고로 투쟁을 포기하고 서경항운노조에 가입하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노조 가입마저 쉽지 않아졌다는 점이다. 황병일 위원장은 “서경항운노조는 현장복귀를 선언한 노동자들을 선별적으로 복귀시키는 방식으로 하역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노조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왔던 하역노동자들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분류돼 노조 가입을 거부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하역노동자들은 힘겨운 생존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황 위원장은 “우리가 현재 가장 바라는 것은 작업 현장 복귀”라며 “자릿세를 내고 조합원의 지위를 취득해 수십 년간 일해 왔다는 점에서 조합원들의 노동권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권리는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번 사태 해결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와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서고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가락시장 관리 책임이 있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다.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들은 공사가 사태 해결에 미온적이라며 불만을 표하고 있다. 

◇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고용노동부 역할론 부상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가락시장 하역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노동부 및 서울시가 긴급히 진상조사와 중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정 기자<br>​​​​​​​<br>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가락시장 하역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 노동부 및 서울시가 긴급히 진상조사와 중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미정 기자

시민운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이번 사태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가락시장을 여러 차례 찾아 하역노동자의 투쟁에 연대해왔다.

안소장은 “서울시민들께 과일과 채소 등을 신선하게 제공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하역노동자들이 관계 당국, 관련 법인, 문제 많은 기존노조에 의해 초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고, 노조할 권리가 결정적으로 침해받고 있음에도 어느 기관 하나 책임있게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노동인권단체, 시민사회가 나서고 있지만, 그 연대의 힘도 여전히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관심을 호소했다.

또 그는 “노동부 및 서울시가 긴급히 진상조사와 중재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측은 사태 해결에 아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까운 일”이라며 “그간 공사 차원에서 조정과 협의를 위해 노력을 해왔지만 워낙 갈등의 골이 깊어져 쉽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대한 사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가락항운노조 민주조합원은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계획이다. 16일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와 함께 가락항운노조 해산 결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본안소송도 최근 접수했다. 이와 관련된 대의원대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은 기각됐지만, 끝까지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하역 노동자는 가락시장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이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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