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의 작품 ‘월-E’에서 무인화 시스템이 장착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주선 내부의 사람들은 모든 일을 인공지능(AI)에 맡긴 채 일하지 않고 살아간다. 영화 속 묘사가 조금 과장될 순 있으나 최근 과학기술의 발달로 업무의 ‘무인화’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사진은 영화 '월-E' 스틸컷/ 픽사애니메이션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2008년 개봉한 장편 애니메이션 ‘월-E’는 우주선 안에서 생활하는 미래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다. 영화 속 인물들은 공중을 떠다니는 이동수단에 앉아 생활하는데, 움직이지 않아 뚱뚱해진 사람들은 의자 앞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거나 TV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 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반면  청소, 요리, 보안, 의료, 생산 등 모든 분야의 ‘일’은 우주선 내부의 로봇들이 수행한다. 

영화 속 묘사는 조금 과장됐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자동화가 이뤄진들 모든 사람들이 하루종일 움직이지 않고 생활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업무를 로봇들이 수행하고, 모니터 클릭만으로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는 모습들은 주목할 만하다. 이 장면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업무의 ‘무인화’ 시대가 점차 다가오면서 이는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실생활 적용된 ‘무인화 시스템’… 편리함과 경제성 모두 잡아

사실 우리 생활 속에서 ‘무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다. 2000년대 초 무인민원발급기, ATM기 등 공공기관용 무인 시스템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다양한 서비스 분야까지 무인화 시스템이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들어서 ‘키오스크’가 활발히 도입되면서다. 

키오스크는 주문, 결제 등을 직원의 도움없이 고객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무인화 거래 시스템이다. 지난 2010년 국내에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한 후 지금은 패스트푸드점, 식당, 영화관 등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특히 점심시간 업무가 급증하는 패스트푸드 매장, 음식점에서 직원들의 업무 분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음식의 주문과 결제는 키오스크가 담당하므로 매장 직원들은 요리 및 매장관리 등 다른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점주들은 추가 인력의 채용 필요성이 낮아져 인건비 절약 부문에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고객들도 직원과 대면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이 감소하고 주문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복잡한 주문을 할 경우에도 뒷사람이나 직원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는 평이 대다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무인화 시스템은 ‘키오스크(사진)’다. 2010년 국내에 조금씩 도입되기 시작한 키오스크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그 숫자가 대폭 증가했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뉴시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도 무인화 시스템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언택트(비대면)’ 문화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매장 직원과 고객 간 접촉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무인 점포’의 도입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AI기술을 적용한 로봇이 커피 등 음료를 판매하는 무인 카페와 무인 편의점 등 무인 점포의 인기가 크게 늘었다. 

통신 매장도 무인 점포로 운영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오는 10월 서울 홍대 근처에 얼굴인식, 음성상담, AI, 클라우드 기술 등을 도입한 무인 통신매장을 오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장에서는 키오스크로 통신 단말기를 구매할 수 있으며, 요금제도 선택가능하다. 무인 매장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을 대상으로는 온라인 화상 시스템을 통해 상담사와의 비대면 상담 서비스도 지원할 계획이다. 

SK텔레콤 측은 “무인 매장 도입이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이후 확산되는 언택트 문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계획을 검토 중에 있다”며 “ICT기술을 이용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대비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 무인화, 일자리 감소할까… 전문가 의견 엇갈려

이 같은 무인화 점포시대의 도래로 인해 사람들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은 지난 2018년 발간한 ‘직업의 미래 2018’ 보고서에서 “오는 2025년에는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비율은 전체 일자리의 약 52%에 해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서비스업 등 단순 노동과 관련된 일자리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휴식이 필요한 사람과는 달리 키오스크 등 무인화 시스템은 휴식이 필요가 없어 업무효율에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는 '무인화 시스템'의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엔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무인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 시사위크DB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로 우리 사회는 '무인화 시스템'의 도입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엔 거의 대부분의 직업이 무인화 시스템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잠실역 롯데월드몰에 위치한 로봇 무인카페 ‘비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AI로봇 로빈2E의 모습. / 시사위크DB

업무효율뿐만 아니라 비용 측면에서도 무인화 점포가 더 유리하다. 사람 직원의 경우 주 40시간을 근무한다는 가정 아래 최저임금 기준 약 174만원의 월급이 지불된다. 반면 키오스크의 경우 월 임대비용이 10~20만원에 불과하다. 직원 1명을 줄이면 10대의 키오스크를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 2018년 정부가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매장 내 무인화를 가속화하면서 일자리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018년 12월 소상공인연합회가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영향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사업장 1,204곳 중 17%가 최저임금 인상정책이 발표된 이후 매장 직원을 감축했다. 

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AI로 인한 무인화 시대가 도래하면 일자리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2018년 LG경제연구원 김건우 선임연구원은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서 향후 우리나라의 전체 일자리의 43%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으로 봤다.

김건우 연구원은 “판매직 비율이 높은 유통업계의 일자리 다수가 AI로 대체되는 고위험 직군에 속한다”며 “판매종사자 306만명 중 708%에 해당하는 238만명이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직군에 속하며, 이중 매장 판매종사자는 197만명에 해당 한다”고 전했다.

옥스퍼드 마틴스쿨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와 마이클 오스본 교수도 지난 2015년 공동 발표한 ‘고용의 미래: 우리의 직업은 컴퓨터화에 얼마나 민감한가’ 논문에서 미국 노동시장 일자리의 47%가 향후 10~20년 후에 AI에 의해 무인화될 수 있는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밝혔다.

반면 무인화와 AI의 도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전망에 대한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6년 발표한 ‘업무 자동화가 OECD 국가의 일자리에 미치는 위험’ 보고서에서 무인화 도입과 같은 업무 자동화가 일자리 감소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AI기술로 인한 무인화 시스템의 도입이 일자리 감소에 긍정적·부정적 측면 모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 역시 무인화 시대에 맞춰 자신의 개인역량을 증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전망이다./ Shutterstock

OECD는 “AI나 무인화 시스템이 직업 자체를 대체하기 보다는 직업을 구성하는 작업의 일부를 대체할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에도 약 9%에 해당하는 일자리만이 AI로 대체되는 고위험군에 해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MIT 노동경제학과 데이비드 오토 교수도 2015년에 발표한 논문 ‘왜 우리는 아직도 많은 직업이 있는가: 산업현장에서의 역사와 미래’에서 “개별적인 작업을 기술적으로 분리해 자동화·무인화를 할 수는 있으나 대면서비스를 더 선호하는 소비자들로 인해 완전히 무인화되는 일자리 수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최근 AI 등 첨단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것이 향후 일자리에 긍정적·부정적 측면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AI분야 전문가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AI를 탑재한 무인화시스템 도입의 가속화는 막을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연구, 공정 등에서 필요한 고차원적인 기술까지 무인화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단순 서비스직 역시 경력에 따라 체득되는 경험과 노하우가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AI가 쉽게 대체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인화 시대의 도래는 AI시스템 등을 관리하거나 운용할 수 있는 고차원적의 일자리를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된다“며 “노동자들 역시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개인의 업무역량을 늘리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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