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대표이사에서 전격 물러났다. /뉴시스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대표이사에서 전격 물러났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돌연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았다. 불과 2년여만에 3세 경영인에서 나락으로 추락한 모습이다.

◇ 잘 나가던 3세 후계자, ‘구속-징역 3년’으로 몰락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의 핵심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는 지난 23일 대표이사 변경을 공시했다. 기존 조현범·이수일 사장 각자대표 체제에서 조현범 사장이 물러나고 이수일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조현범 사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 3세다. 오너일가 2세 조양래 회장의 차남으로, 형 조현식 부회장과 함께 3세 경영의 한 축을 맡아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1998년 입사한 조현범 사장은 2011년 12월 39살의 젊은 나이에 사장으로 승진했고, 2018년 3월엔 대표이사에 등극했다. 지난해 3월엔 조양래 회장의 뒤를 이어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로써 경영승계를 마무리 지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3세 승계 완료까지 지분승계만 남겨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조현범 사장은 중대 위기를 마주했다. 2018년 7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 대한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했던 국세청은 중대 범죄혐의를 확인해 범칙조사로 전환했고, 지난해 초 검찰에 고발조치했다. 이후 수사과정에서 조현범 사장의 각종 비리 혐의를 포착한 검찰은 지난해 11월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 최초의 구속신세가 된 조현범 사장은 10여년에 걸쳐 납품을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재판 과정에서 혐의 일체를 인정하며 철저한 ‘반성 전략’을 펼쳤고, 지난 4월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재구속을 면했다.

이처럼 2018년 3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등극과 2019년 3월 지주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등기임원 등재로 3세 경영인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던 조현범 사장은 불과 2년여 만에 비리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으며 몰락하게 된 모습이다.

조현범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조현범 사장은 협력업체로부터 납품을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 항소심용 사임? 경영공백·승계차질 불가피

조현범 사장의 다소 급작스런 대표이사 사임은 업계는 물론 재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1심 재판과정에서 ‘반성 전략’을 앞세웠던 조현범 사장은 결심공판 최후변론을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비상경영 체제를 이끌고 우리 사회와 국가 경제에 미력이나마 기여할 기회를 달라”며 “과거를 거울삼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호소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1심 판결 이후 두 달여 만에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배경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먼저, 현실적인 문제다. 조현범 사장은 1심 집행유예 판결을 통해 최악의 재구속은 면했으나, 검찰 항소에 따른 2심 재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대표이사로서의 역할과 재판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본격적인 항소심 시작을 앞두고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현범 사장은 대표이사로서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으나, 지난해 11월 구속 이후 한동안 이사회에 참석하지 못한 바 있다. 아울러 ‘비리 및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대표이사’에 따른 회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

1심 재판과정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반성 전략’의 연장선상이란 시각도 있다. 구구절절 반성의 뜻을 밝힌 조현범 사장은 “형량을 낮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검찰의 지적에 “앞으로 제 행동을 보면 진정성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기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정도경영과 관련한 부분도 형량에 고려될 것 같다. 기업 내부 구조를 개선하고 대기업으로서 회복적 모습을 보여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또한 형 조현식 부회장은 1심 판결 및 각 계열사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이례적으로 주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통렬한 반성의 뜻을 전하는 한편, 정도경영 구축을 다짐했었다.

즉, 조현범 사장의 대표이사 사임은 반성 및 정도경영 의지를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통해 항소심에서 ‘반성 전략’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조현범 사장의 대표이사 사임에 따른 경영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수일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로는 무게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승계에도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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