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지난 6월 한 달은 북한의 도발 위협과 퇴행적 행보로 얼룩졌다.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힘겨운 여름맞이를 하던 우리 국민은 더욱 큰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코로나 방역에 전력투구해야 할 시점일 텐데도 우리의 공동방역 제안 등을 거부하면서 대남 대립각을 세우고 나왔다. 특히 우리 국민 세금 170억원이 투입된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백주에 폭파하고 이를 관영매체로 버젓이 방영하는 북한의 모습에 우리 국민의 대북 감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비핵화 등의 과제가 지난한 일임을 깨닫게 한 계기도 됐다.

북한은 대남 위협과 도발의 명분으로 대북전단을 내세웠다. 지난 6월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대남 포문을 연 것도 대북전단을 빌미로 해서다. 우리 탈북단체의 김정은 체제 비판 전단이 이른바 ‘최고 존엄’인 북한 최고지도자를 모독했다는 게 김여정의 주장이다.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를 방치한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묻겠다는 태도도 드러냈다.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한 김여정 담화의 한 대목이 이를 잘 드러낸다.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단계적으로 거칠어졌다. 가장 눈길을 끈 건 휴전선 이북 지역에 북한 주민들을 동원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비방하는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나선 점이다. 1,200만장을 준비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비난 전단에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뿌린 장면을 노동신문 등 관영 매체로 공개하기도 했다. 다소 유치한 선전·선동 방법이긴 하지만 북한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드러내기에는 충분했다.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단에 군 병력까지 다시 투입하겠다며 긴장 수위를 올리던 북한의 도발적 행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일단 제공이 걸렸다. 김정은이 자신이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노동당 중앙군사위를 열어 군부의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는 조처를 한 때문이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가 대남 긴장 조성 드라이브 차원에서 일정한 역할 분담을 했다거나, 안팎의 사정으로 더 이상 도발적 행보를 이어나가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하지만 대북전단 살포 계획의 중단은 매우 현실적인 계산에 따른 것일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 전단 살포로 맞대응한다는 게 북측의 입장에서 실리가 없다는 점에서다.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체제의 폭정과 자유로운 바깥세상의 실상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 적지 않은 북한 주민들이 대북전단이나 우리의 대북 방송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접하고 탈북한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북한의 대남전단은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어느 중견 정치인의 지적한 대로 우리 인터넷 공간이나 눈, 언론 등에는 이미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불만의 목소리가 차고 넘친다. 북한이 대남전단을 통해 선전·선동을 벌인다 해도 말 그대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북제재로 교과서 만들 종이도 없다고 토로하던 북한으로선 전단을 만들어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남북 간의 전단 전쟁이 시작된 건 6.25 전쟁 때다. 올해가 70주년이니 그 역사가 깊다. 6·25 당시엔 한국과 유엔군 측이 물량 면에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항권고가 주목적이었는데, ‘삐라’를 주우면 귀순 때 신분보장 역할을 하는 보증서가 됐다.

북한도 미군 위문 차 방한했던 여배우 메릴린 먼로의 사진을 담고 ’당신이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영문 전단으로 미군 병사를 유혹했다. 크리스마스 땐 칠면조 요리가 놓인 파티 사진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수법도 동원했는데, 전의를 상실할 아이템과 타이밍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심리전술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던 1950~60년대엔 대남공세가 거셌다. 평양의 빌딩과 가정집을 전단에 담아 ‘오라 북으로‘라며 월북 시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주겠다고 선전했다. 미인계도 펼쳤는데, 우리 유명 여배우의 수영복 차림 사진을 따다가 만든 컬러 전단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이 북한을 앞지르게 되면서 남측에서는 전단과 함께 소형 라디오와 라면·스타킹·콘돔 등도 날려 보냈다. 탈북자들은 ”전단과 함께 발견된 식품엔 ’남조선 괴뢰들이 독을 넣었다‘고 보위부가 선전했지만 믿지 않았다“고 전하고 있다.

요즘 우리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대북전단 대형 풍선에는 영화·가요가 담긴 USB와 함께 1달러짜리 지폐를 넣어 보낸다. 북한 주민들이 전단을 더 잘 접할 수 있게 하고, 실제 생활에도 보탬이 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탈북단체가 주도하는 대북전단 살포는 우리 정부 성향에 따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모습이다. 중도 보수 성향의 정부에서는 ’대북 정보유입‘이란 차원에서 탈북민이나 북한 민주화 추진 관련 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보당국을 중심으로 정부가 음으로 양으로 돕는 양상을 띤다. 하지만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우선시하는 문재인 정부나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를 불온시하고 규제하는 모습이다. 특히 북한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을 경우 단속에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이를 연락사무소 파괴나 군사행동 돌입 위협으로까지 이끌고 가자 문재인 정부는 탈북 단체의 전단 살포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저런 법률을 들어 대북전단의 살포를 원천 봉쇄하는 건 물론이고 단체 관계자의 동선을 추적해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단체의 자금줄 차단을 위해 조사를 벌인다는 계획도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대북전단이 가지는 보편적 효용이나 가치까지 부인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외부정보의 유입이 철저히 차단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외부세계의 실상을 알리는 건 동포인 그들로 인권적 가치를 누릴 수 있게 돕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미 북·중 접경지역 등의 경우 남한의 영화와 드라마·가요 등 한류 콘텐트와 물품이 유입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북한 주민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내륙 지역인 휴전선 인근의 경우 대북전단 외에 외부세계와 접할 정보유입 수단을 찾기 힘들다. 유일한 수단이다시피 한 대북전단을 중단하는 건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 관영 매체와 노동당 고위간부를 통해 조롱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민간단체의 대북전단을 막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이냐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9.19 합의의 기본 취지는 당국 차원의 상호비방 중단인데 정권 차원에서 대남비난을 일삼는 북한에는 한마디 말도 못하면서 우리 민간단체의 목소리를 옥죄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대북전단을 규제할 제대로 된 법도 없는 상황에서 무리한 법 적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압가스 관리법이나 하천관리(전단으로 수질 오염) 관련법으로 전단을 규제하는 건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실제 처벌된 경우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 법조인은 남북교류협력법을 대북전단 규제에 적용하는 건 법 제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과거 정부가 전단 살포를 물리적으로 막고 자제를 요청한 건 전단 풍선에 대한 북한의 고사총 사격 등 접경지역 주민들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 가해졌을 경우다. 법원이 이를 제약하는 조치에 손을 들어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조치라 할 북한의 위협에는 아무런 항의나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대북전단 막기에만 치중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북한에 당당하게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의 권고에도 힘이 실리고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탈북민이나 민간단체에만 법적, 물리적 제약을 가하는 정부의 조치는 대북정책의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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