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는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책임정치는 무섭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례에서 보듯 여론은 한 순간에 돌아선다. 그래서 지금의 다수당도 언제든지 몰락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치도 변화를 맞고 있다. 보수세력 중심에서 민주세력 중심으로 판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위크>에서는 최근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정치판을 예상해 봤다. <편집자 주>

미래통합당은 지난 4·15 총선에서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하며 전국 단위 선거에서 무려 4연패(2016 총선·2017 대선·2018 지방선거)를 기록했다. 눈 앞에 가시밭길만 있을 것 같은 통합당은 최대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사진은 미래통합당 김종인(오른쪽)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전국 지방의회 의원 연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미래통합당은 지난 4·15 총선에서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하며 전국 단위 선거에서 무려 4연패(2016 총선·2017 대선·2018 지방선거)를 기록했다. 눈 앞에 가시밭길만 있을 것 같은 통합당은 최대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사진은 미래통합당 김종인(오른쪽)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전국 지방의회 의원 연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보수의 고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국정치사에서 보수정당의 길을 걷고 있는 미래통합당은 지난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대패하며 전국 단위 선거에서 무려 4연패(2016 총선·2017 대선·2018 지방선거)를 기록했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영입하면서 쇄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지만, 176석 절대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인해전술에 103석의 통합당은 무력하기만 하다.

통합당은 개원 협상에서 야당 몫으로 배분돼왔던 법제사법위원장을 여당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민주당에 상임위원장 전부를 내주는 벼랑 끝 전술까지 펼쳤다. 당장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통합당이 최대 위기를 반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 김종인 비대위, 통합당 ‘탈색’ 중

30일 김종인 비대위가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지 한 달이 됐다. 통합당은 지난달 말 일부 중진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도 김 위원장에게 비대위 지휘봉을 맡겼다. 김 위원장 영입을 위해 전당대회 일정을 못박은 당헌까지 개정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 의식에서다. 김종인호(號)의 수명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까지다.

그간 여야를 넘나들며 통합당(박근혜), 민주당(문재인) 집권에 기여했던 김 위원장은 보수정당에 다시 적을 두면서부터 통합당의 보수 색채를 덜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보수를 기치로 내건 통합당은 각종 선거에서 4연패를 했고, 더 이상 보수를 앞세우는 것만으로 반전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취임 초 “보수·자유우파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주문한 데 이어 “진보보다 앞선 진취적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다. 또 ‘돈 없고 배고픈 사람이 빵 사 먹을 수 있는 자유’를 거론하며 기본소득 의제를 정치권에 던지기도 했다.

파격적인 탈색 행보에 “외부인이 들어와 당 정체성을 흔든다”는 취지의 힐난이 간헐적으로 제기됐지만, 김 위원장은 “다소 불만스러운 일이 있어도 시비를 걸지 말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제379회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서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알리고 있다. /뉴시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제379회국회(임시회) 제6차 본회의에서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알리고 있다. /뉴시스

◇ “더 지켜봐야” vs “성과 없어”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위해 보수 색이 옅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보수 재건을 위해 김종인 비대위의 성공은 통합당 입장에서 필수불가결한 수순이다.

다만 현재까지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범보수진영의 평가는 극명히 엇갈리는 모습이다. 주로 김종인 비대위가 이제 예열을 마치는 과정에 있으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과, 가시적 성과가 미진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으로 나뉜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김종인 비대위에 대해 “한 달째니까 성과를 논하기는 어렵다”며 “이제 인선 진용이 꾸려지는 단계로, 그만큼 템포가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1년 정도 농사를 지으려다보니 모내기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이날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기본소득, 백종원 이슈로 통합당에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어느정도 성공했다고는 할 수 있다”면서도 “긍정, 부정 평가를 하려면 최소한 6개월은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난 22일 통합당 제21대 총선 백서 제작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위촉된 바 있다.

반면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김종인 비대위는 물론 보수의 앞날까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보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한 달이 짧은 시간은 아닌데 기본소득과 백종원 이야기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지 않나”라며 “토픽을 던지는 것 같긴 한데 기본소득은 의미나 결론도 없었고, 백종원도 본인이 부정하면서 흐지부지 끝났다. 통합당이 김 위원장에게 바란 것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혹평했다.

그는 “주호영 원내대표가 사퇴했을 때 통합당은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사퇴를 요구했어야 했다. 협상 파트너가 그만뒀는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하지 않더라”며 “싸울 줄 아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당분간 보수는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 여당 헛발에 기대야 할 처지

민주당은 지난 29일 본회의에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전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통합당은 상임위 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면서 박병석 국회의장의 상임위원 강제 배분에 대해서도 일괄 사임계를 제출했다. 나아가 박 의장의 상임위원 배분 행위가 직권 남용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시사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전 상임위원장을 차지한 만큼 향후 모든 정치적 책임을 민주당이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 원내대표는 당시 의원총회에서 “이제 국회는 민주당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우리는 야당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각을 달리 하면 보수진영이 여당 헛발에 기대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한 셈이다.

한 통합당 관계자는 “자기들 챙길 것 다 챙기고 (상임위) 몇 개 줄 테니까 받아먹으라는 건데, 그걸 받아먹으면 야당이라고 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원하는 것을 다 하고나서 어떻게 돼 있는지 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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