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쓰레기’의 정의다. 하지만 우리가 ‘쓰레기’로 낙인찍어 내다 버리는 것들 중에는 ‘쓸모가 여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실제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새로운 자원이 되거나 에너지로 재탄생해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쓰레기의 역설’인 셈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환경오염원 감소를 위한 해법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인천시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부평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 / 사진=범찬희 기자
인천시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부평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 / 사진=범찬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빈곤 계층인 ‘폐지 줍는 어르신’ 문제를 논하는데 있어 최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친환경과 노인 문제 해결을 표방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러블리페이퍼’. 지난달 고용노동부로부터 정식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곳이다.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는 애지중지 키운 회사가 ‘망하는 게 목표’라는 다소 도발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2020년이 절반을 넘긴 7월의 첫 날, 그를 만나 발언의 진의와 함께 폐지 수집 어르신이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짚어봤다.

◇ 폐지 웃돈 매입하고 일자리 창출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부평역에서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진 주택가 상가 건물에 위치한 러블리페이퍼 사무실은 흡사 화방을 연상케 했다. 붓, 접착제, 팔토시 등 미술 도구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이 곳은 창작 활동이 이뤄지는 아틀리에의 풍경을 쏙 빼닮았다. 해매는 통에 다급한 걸음으로 현장에 도착한 기자는 사무실 한 편에 수북이 쌓여있는 골판지 박스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 왔다’는 안도감에 사로잡혔다.

흔히 ‘라면 박스’라고 불리는 골판지 박스는 러블리페이퍼의 핵심 원자재다.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로부터 수급 받은 골판지 박스(원료)를 캔버스 아트(재화)로 재탄생 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사회적기업인 러블리페이퍼의 전매특허 비즈니스 모델이다. 인류 공통의 숙제인 ‘친환경’과 ‘노인 문제’가 결합된 ‘신박한’ 사회적 경제 활동을 이어온 러블리페이퍼는 지역에서는 물론, 언론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으며 올해로 법인 설립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절단 돼 여러겹 포개진 골판지 박스는 어르신들과 자원봉사들을 거쳐 캔버스가 덧대진 후 재능 기부 봉사자들의 손을 거쳐 캘리그라피와 회화 등으로 탄생한다. / 사진=범찬희 기자
절단 돼 여러겹 포개진 골판지 박스는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거쳐 캔버스가 덧대진 후 재능 기부 작가들에 의해 캘리그라피와 회화 등으로 재탄생한다. / 사진=범찬희 기자

러블리페이퍼의 활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어르신들로부터 시가(50원)의 6배인 1kg당 300원에 폐지를 매입한다. 모아진 폐지는 급여를 받는 어르신들과 자원봉사자들을 통해 각목천이나 이불천이 덧대어진 캔버스 형태로 만들어진다. 순백의 캔버스는 200여명에 달하는 재능 기부 작가들의 손을 거쳐 캘리그라피와 회화가 그려진 작품으로 탄생한다. 러블리페이퍼 고혜빈 매니저는 “재능 기부를 해주시는 분 중에는 청각 장애인도 계시는데, 어미님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또 고등학생도 재능 기부에 동참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폐지에서 예술로 환골탈태한 작품은 뜻을 함께하고 싶은 정기구독자나 인터넷을 통해 개별 판매된다. 현재 약 350명이 러블리페이퍼 정기구독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점은 러블리페이퍼가 단순히 웃돈을 주고 폐지를 매입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주업과 연계된 새로운 일자리(캔버스 작업)를 창출해 어르신 고용에 앞장서고 있는 대목에도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취재가 진행된 당일, 때마침 현장에서 만난 정엽분 할머니(84세)는 “(러블리페이퍼가)주변에서 인기다”라며 “놀면 뭐하나. 돈 벌어서 나라에 세금도 내고 맛있는 거도 사먹어야지”라고 소감을 밝혔다. 75세 어르신이 가장 막내인 평균 연령 80세를 자랑하는 할머니 여섯 분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각각 3시간, 2시간씩 이곳에서 자원봉사자용 캔버스 키트 등을 제작하고 있다. 마스크와 작업용 앞치마는 물론 팔토시와 장갑을 착용하는 할머니들은 명찰까지 부착하고 엄연한 ‘직원’으로 대우받는다.   

◇ “폐지 어르신,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정해 줘야”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들이 캔버스 작업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교육용 키트'를 제작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자원봉사자들이 캔버스 작업을 간편하게 할 수 있는 '교육용 키트'를 제작하는 일에 어르신들이 몰두하고 있다. / 사진=범찬희 기자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다 분리수거 자원 활용에 관심을 갖고 2017년 5월 러블리페이퍼를 설립한 기우진 대표는 다소 파격적인 목표를 품고 있다. 궁극에는 ‘회사가 망하는 게’ 그가 지향하는 종착점이다. 풀어 말해 “러블리페이퍼란 곳이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게 기 대표의 진의다. 그는 “사회적기업이란 애당초 태어나선 안 되는 조직”이라며 “사회적 기업이 여럿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빈곤 취약 계층이 많다는 의미”라는 통찰을 내놨다.

기 대표는 자신의 ‘꿈’이 머지않아 실현될 거라고 내다 봤다. 다른 분야의 취약 계층은 차치하더라도, 폐지 수집 어르신 문제는 해결 가능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 대표는 “폐지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수혜적이고 동정 섞인 시각을 바꾸면 (폐지 어르신이)‘사라진다’로 귀결될 수 있다”며 “그들을 ‘자원재생활동가’로 인정하고 적절한 지원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 어르신들 스스로 떳떳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책 입안자들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복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일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가 인천시 부평구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기 대표는
지난 1일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가 인천시 부평구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기 대표는 "폐지 수집 어르신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닌 '자원재생활동가'로 바라봐주는 사회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사회 구조적으로도 그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도 진단했다. 기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박스 등 자원순환체계에서 어르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다. 그러나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선 민간에서 공공수거체계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노인 연령대에 진입할 베이비붐세대는 부모 세대보다는 교육과 문화 혜택을 받아 퇴직을 해 일이 없더라도 폐지를 줍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공공 중심의 자원순환체계 구축과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 진입으로 요약되는 두 현상이 겹쳐 폐지 시장에 유입되는 어르신들의 수는 필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직인 교사 활동에 언론 접촉 경험이 더해져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기 대표는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다고도 털어놨다.

내년 무렵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선교활동을 떠나려 했던 계획이 코로나19로 인해 차질이 발생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낸 그는 “일을 해보니 ‘창업’과 ‘경영’은 많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창업가로서 러블리페이퍼의 정신과 비즈니스 모델을 안착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면, 회사의 비전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경영 중심의 마인드와 역량을 가진 분이 다음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 하루 빨리 교육자로 돌아가고 싶다고 속내를 밝힌 기 대표는 “욕 먹을 각오를 하고 행정, 사무, 회계, 홍보 등 러블리페이퍼 살림살이 전반을 담당할 만능일꾼을 찾는다는 채용 공고를 최근 SNS에 개재했다”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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