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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항공산업
[위기의 항공산업 ②] 관용헬기 120대 중 수리온 14대… 도 넘은 ‘외산헬기’ 편식
2020. 07. 09 by 정소현 기자 coda0314@sisaweek.com

경남도가 국산 소방헬기를 도입한다. 2015년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에 들려온 낭보라는 점에서 업계의 반가움이 크다. 하지만 두 번째 소방헬기 납품 계약을 맺기까지 무려 5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문제다. 국산헬기에 대한 정부 기관의 홀대가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시장에서의 안정적인 운용실적은 해외수출로도 직결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라면 최첨단 고부가가치 사업이자 일자리창출 효과가 큰 항공산업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정부가 자국 전략산업 육성 차원에서 국산헬기 구매 및 보급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편집자주>

1조3,000억원을 들여 만든 '국산헬기' 수리온(사진)은 최초 국산 기동헬기(KUH-1)로 개발되어 현재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을 비롯해 경찰·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소방본부와 산림청 등 일부 기관들이 관용헬기를 구입하면서 국내 업체는 입찰에 참여조차 할 수 없도록 기준을 만들고 있어 내수시장 판로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 KAI
1조3,000억원을 들여 만든 '국산헬기' 수리온(사진)은 최초 국산 기동헬기(KUH-1)로 개발되어 현재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을 비롯해 경찰·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소방본부와 산림청 등 일부 기관들이 관용헬기를 구입하면서 국내 업체는 입찰에 참여조차 할 수 없도록 기준을 만들고 있어 내수시장 판로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다. / KAI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경남도가 수리온 소방헬기 도입을 결정하면서 현재까지 정부 기관이 구매 계약한 국산헬기는 총 14대가 됐다. 경찰헬기 8대, 해경헬기 3대, 소방헬기 2대, 산림헬기 1대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 운용중인 관용헬기 120대 중 10%가 겨우 넘는 수준이다. 나머지는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 등 외국산헬기다.

외산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지만, 변화를 꾀하기엔 내수시장의 진입 벽이 공고하다. 관용헬기를 운용하는 지자체 소방본부 등이 제각각 입찰기준을 내세우고 외자구매·국제입찰을 강행하고 있어서다. 외산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국민헬기를 개발해놓고도 정작 정부의 외면으로 활용은커녕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는 셈이다.

◇ 국산헬기, 성능·안전성 인정받고도 정부 외면으로 설자리 잃어

우리 정부가 ‘국산헬기’ 개발에 착수한 것은 외산헬기들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다. 부품수급 문제로 인해 몇 달씩 정비를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거나, 가격 폭리인 줄 알면서도 부품을 사들여야 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 헬기’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리온’이다.

수리온은 현재 육군·해병대와 같은 군용을 비롯해 경찰·의무후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우리 군의 전력과 국민 안전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미국의 UH-60P 블랙호크 일색이었던 군의 기동헬기 운용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시장의 문턱이 높은 실정이다. 특히 공공기관용 헬기(관용헬기) 시장 진입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국내 관용헬기는 △경찰청 △해경청 △산림청 △소방청 △국립공원 5개 기관에서 총 120대를 운용 중이다. 전체 기종의 42%가 20년 이상 된 노후기종으로, 운용 효율성이 낮다. 이에 관용헬기 교체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 기관들은 국산헬기 대신 외산헬기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다. 실제 조달청은 내자조달/국내입찰을 권고하고 있지만, 지자체 소방본부 등 일부 기관은 규격 미충족이나 가격 등을 이유로 외자구매/국제입찰을 강행하고 있다.

가장 난관을 겪고 있는 것은 수리온을 기반으로 한 ‘소방헬기’다. 소방헬기를 사용해야하는 각 지자체 소방본부가 국산헬기에 호의적이지 못한 분위기다. 헬기를 발주하면서 과도한 규격을 제시, 국산헬기는 아예 입찰조차 참여할 수 없도록 원천 배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입찰 조건으로 항속거리(연료를 소진할 때까지 갈 수 있는 거리)를 700㎞ 이상(수리온 680㎞)으로 설정하거나, 외산헬기의 특정 기종에만 적용돼 있는 장치를 기본규격으로 요구하는 식이다.

◇ 독소조항으로 국산헬기 입찰 원천 배제… 외산헬기에 혈세 줄줄

이 때문에 소방헬기 입찰 때마다 잡음이 적지 않았다.

최근 신규 소방헬기 도입을 위해 입찰을 준비중인 한 지자체 소방본부도 지난 3월 사전구매규격을 공개하면서 필수부품을 제외시켰다. 소방헬기의 중요 임무인 환자이송과 응급치료를 위한 EMS 장비는 필수 장비여야 하지만, 공고된 규격서에는 이를 설치 할 수 있는 전원 설비 등 만을 갖추도록 했다. 또, 겨울철 결빙을 방지하기 위한 방빙·제빙장치 역시 필수 장비 목록에서 제외했는데, 이를 두고 특정 외산헬기 도입을 위해 입찰단가를 낮춰 편의를 봐주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2018년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납품된 국산 첫 소방헬기 '한라매' / KAI
2018년 제주소방본부에 납품된 국산 첫 소방헬기 '한라매' / KAI

국산헬기 도입을 주저하는 기관들은 수리온이 ‘군용’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소방헬기로서의 임무수행에 적합하지 않고, 안전성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수리온은 민수헬기 인증서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지자체 소방본부는 국토부에서 발급한 ‘형식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군용’으로 기본 설계·제작된 헬기인 수리온은 국토부 형식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대신 방위사업청의 형식인증을 획득한 상태다. 수리온이 민간용인 국토부 인증을 받으려면 설계부터 다시 해야 한다.

이에 국토부도 2018년 6월 항공안전법을 개정해 수리온도 형식증명에 준하는 ‘제한형식증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미 검증된 국산헬기의 도입을 활성화하고 효율적인 인증절차 적용하기 위한 취지다.

그러나 소방본부는 해당 증명서를 ‘입찰 시 제출’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제한형식증명은 설계과정부터 제작, 비행시험까지 항공기술기준 적합여부를 검사한 후 국토교통부가 발행하기 때문에 국산헬기에 대한 제한형식증명 발급까지는 대략 2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국내 제작 생산된 헬기의 경우는 헬기 납품 시 증명서 제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국산헬기 입찰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법 제/개정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요구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 소방헬기 1호 한라매, 화재진압부터 인명구조 활약

문제는 소방본부의 주장대로 국산 소방헬기의 안전성을 우려할 근거가 있느냐다.

국산 소방헬기 ‘1호’인 한라매는 지난 2018년 6월 제주도에 납품돼 도내 각종 재난 현장을 누비며 소방구조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주소방본부에 따르면 한라매 도입 후 1년간 운항실적을 분석한 결과, 출동건수는 193건으로 이틀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날았다. △재난출동(60건) △구급(32건) △수색(21건) △구조 (6건) △화재(1건) 등에 투입됐다. 그 이외 133건은 교육훈련을 위한 운항이었다. 지난 4월에는 처음으로 화재현장에 투입됐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임야 8,250㎡를 태운 대형 화재사고 당시 한라매는 1만4,000L의 소화수를 7차례에 걸쳐 방수해 화재 진압에 크게 기여했다.

지난 5월 1일 제주대학병원에서 50대 여성 환자를 태우고 약 293㎞를 날아 1시간30분 만에 부산 동아대병원까지 이송하는 등 한 해 동안 3차례에 걸쳐 서울 등 도외병원으로 환자 이송을 도왔다.

제주소방헬기 ‘한라매’는 수리온을 기반으로 제작된 국내 첫 소방헬기로, 270억원이 투입됐다. 비행시간 500시간에 따른 헬기 정밀검사를 무사히 마쳐 안정성을 최종 확인받고 본격적으로 소방현장에 투입됐다. 최대 항속거리는 719㎞로 수도권 종합병원까지 중증응급환자를 논스톱으로 이송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육군(무사고 1만5,000시간)과 경찰(5,000시간) 역시 사고 없이 국산헬기인 수리온을 쓰고 있다.

항공전문가들은 “‘국산’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수용 기준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것은 물론, 성능이 이미 검증된 헬기임에도 제각각 조건을 내걸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것은 역차별이자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국산헬기와 외산헬기의 대당 가격은 220억~250억원 수준으로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외산헬기의 연간 운용유지비는 국산헬기의 3배 이상이다. 헬기 수명이 통상 25년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부품 공급과 유지보수면에서 수리온의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다.

실제 최근 소방헬기 신규 구입을 결정한 충남도에 따르면, 2015년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입한 중형급 다목적 소방헬기(이탈리아산 AW139)의 경우 지난 2018년 한 해에만 정비를 이유로 출동할 수 없었던 기간은 94일에 달한다. 최근 3년간 운항일수 증가로 검사와 정비시간도 늘면서 가동률이 83%에서 76%로 감소한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