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오는 8일 국민개헌발안제 표결을 위한 국회 본회의 개의에 합의했지만, 미래통합당의 입장 번복으로 개의가 불투명해졌다. 국민발안제 개헌안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소집한 본회의에서 '투표 불성립'으로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이날 국회 모습. /뉴시스
7월 17일은 제헌절이다.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다. 72년간 헌법은 총 9차례 개정됐고, 현행 헌법은 1987년 공포됐다. 헌법은 국가질서의 기본구조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사진은 국회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올해 7월 17일은 제72주년 제헌절이다. 72년 전인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의 ‘헌법’이 공포된 날을 기념하기 위한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제헌 헌법이 제정된 것은 1948년 7월 12일이었으나, 당시 정부는 조선왕조 건국일에 맞춰 공포 시기를 늦췄다. 과거 조선의 영광을 계승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의미에서다.

이후 72년간 헌법은 총 9차례 개정됐고, 현재의 헌법은 1987년 10월 29일 공포됐다. 헌법이란 일상생활에서 피부에 다가오지 않는 개념이지만, ‘국가질서의 기본구조’라고 불릴 만큼 중요하다. 

◇  헌법, 수난의 역사

헌법이란 국가의 통치조직과 기본 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국민의 권리와 의무, 권력의 기본구조,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 지방자치, 경제 등 한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 이념을 담고 있는 것이다.

다만 헌법은 형법, 민법 등 국민의 생활을 직접 제어하는 법이 아니라, 통치 이념에 관한 것이므로 사람들에게 다소 ‘먼’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헌법은 국민의 인식과 행동에 담겨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법 앞에 평등하고,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인식이다. 이는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장 1조의 구절은 구태여 힘들여 배우지 않아도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혀 있다.

하지만 헌법은 권력에 의해 사유화되면서 수난을 겪기도 했다. 최근 국민투표를 통과한 러시아의 헌법 개정안이 논란이 됐는데, 개정안에는 ‘현재 대통령직을 수행하거나 이미 수행한 사람의 임기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규정이 추가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2년 간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이런 어두운 역사를 거쳐왔다.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차 개헌(1952년)은 초대 대통령(이승만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기 위한 포석이었으며, ‘사사오입 개헌’(2차 개헌·1954년)은 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 3선 연임 제한을 철폐하기 위함이었다.

이외에도 3선으로 박정희 정권 연장을 노린 ‘3선 개헌’(6차 개헌·1969년), 대통령 6년 연임과 연임 제한을 없애고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뽑게 한 ‘유신 개헌’(7차 개헌·1972년) 등 72년의 헌정사는 수난의 연속으로 점철됐다.

야권에서  ‘개헌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당초 야권은 지난 5월 부결된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에 반발했다. 이후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29일, 연내 개헌을 언급하며 개헌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되는 모습. 당시 야당은 본회의에 불참했다. <뉴시스>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됐다. 그러나 33년이 지나면서 87년 헌법이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개헌 논의가 종종 이뤄졌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5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되는 모습. 당시 야당은 본회의에 불참했다.

◇ 제헌절에 촉발된 개헌논의

현재의 헌법은 1987년 개정됐으며,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을 직접 선거한다. 87년 헌법은 같은해 일어났던 6·10 민주화운동의 결과물로서, 최장 기간동안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헌법이 33년 후 2020년의 대한민국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잊을만하면 개헌이 화두로 떠오른다.

올해 제헌절도 마찬가지였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헌절 경축식 축사에서 “대전환의 파도 앞에서 우리 국민을 지키고 미래를 열기 위해 우리 헌법의 개정이 불가피한 때”라며 개헌 의제를 공식적으로 띄웠다.

박 의장은 “앞으로 있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내년까지가 개헌의 적기”라며 “코로나 위기를 넘기는 대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하자”고 구체적인 시기까지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 세대가 지난 현행 헌법으로는 오늘의 시대정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알려져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도 “우리의 헌법정신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라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이때, 지난 4년 동안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헌법을 다시금 꺼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국회와 정부에서 개헌론을 꺼내든 만큼 야권에서도 동의한다면 개헌이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2018년의 사례처럼 개헌에 대한 각 당의 각론이 갈리고 있어 논의만 하다가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지난 2018년 국회는 개헌특위를 연장하면서까지 개헌을 추진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개헌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정부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연임제, 5·18 민주화운동, 부마항쟁, 6·10 민주화운동, 결선투표제’ 등이 포함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흡사한 내용의 개헌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야당인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은 분권형 대통령제(대통령은 국가원수의 역할, 국회가 선출하는 책임총리로 분권)를 내세우며 여야가 치열하게 다퉜다. 당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도 각각 다른 개헌안을 당론으로 추진했다.

결국 6·13 지방선거 동시 국민투표도 무산됐고, 국회에 계류돼 있던 대통령이 발의한 정부 개헌안도 투표수 미달로 투표불성립이 선언되면서 개헌은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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