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인을 보면 혐오하면서도 선망하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 높은 세계에 있는 별개의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늘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여러 가지 덫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권력의 맛은 달콤하기 때문이다. <시사위크>는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수많은 덫과 향후 정치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로 지사직을 유지하게 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 17일 오전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최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다. 2011년 서울시장 당선으로 정계 입문해 내리 3선에 성공, 집권여당 대권주자로 거론되며 정치 꽃길을 걸었던 박 전 시장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면서 한 순간에 몰락했다.

특정 사건에 휘말려 정치인생 벼랑 끝에 서는 위기를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사회생에 성공해 재도약을 꿈꾸는 여야 유력 정치인들의 사례도 관심을 끈다.

◇ ‘친형 강제입원’ 혐의 벗은 이재명 

이 지사는 지난 16일 정치인생 최대 위기에서 벗어났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한 TV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지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하면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을 받은 이 지사 상고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원심 파기 7 대 원심 유지 5의 결과로 드라마틱한 회생이었다.

법조계는 파기환송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무죄로 결론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약 이 지사가 이날 2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면 정계은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됐다. 100만 원 이상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5년 간 제한돼 대선 출마도 불가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관련 혐의에서 일단 벗어난 만큼, 향후 대선 레이스에 가세해 이낙연 민주당 의원과 양강구도를 형성할 전망이다.

이 지사는 이번 판결 전 과거에도 숱한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2018 지방선거 당내 경선 도중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한 트위터 계정의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아내 김혜경씨라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당시 이 지사는 친문 진영에서 큰 비판을 받았지만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선거를 완주했다. 검찰수사 결과 트위터 계정주가 이 지사인지 여부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형수와의 불화, 배우 김부선 씨와의 스캔들 등 개인사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 지사의 몸값은 일단 수직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대권 경쟁자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이 이탈한 가운데, 이낙연 의원에 이은 대권주자로서 앞으로의 행보에 이전과 다른 무게감이 붙을 전망이다.

불안 요소도 상존한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 경선 과정에서 친문 진영과 대립하면서 지지층과 반대층이 대조를 이룬다. 국회의원 경력 및 뚜렷한 계파가 없어 당내 조직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지난 2017년 2월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성완종 리스트'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가 지난 2017년 2월 1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홍준표, 낭떠러지서 생환

홍준표 무소속 의원에게도 최대 위기가 있었다. 지난 2015년 경남지사 재직 시절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되면서다. 자원개발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홍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8명에게 돈을 건넸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남겼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대표 경선을 앞둔 2011년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 윤모 씨를 통해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16년 9월 재판부는 홍 당시 지사에게 징역 1년 6개월 실형과 추징금 1억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017년 2월 항소심 재판부는 홍 대표가 평소 친분이 없던 성 전 회장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할 동기가 뚜렷하지 않고 윤 씨의 진술에 대해서도 허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해 12월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후보로 출마한 19대 대선에서는 홍 의원이 과거 자서전에 쓴 ‘돼지 흥분제 이야기’가 발목을 잡았다. 홍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해당 논란이 불거지면서 역풍을 맞았다.

홍 의원은 당시 페이스북에 “책 내용과 다소 다른 점은 있지만 그걸 알고도 말리지 않고 묵과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기에 당시 크게 반성했다”며 “그만 용서해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이 일로 2018년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2018년 말에는 유튜브 채널 ‘TV 홍카콜라’를 개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았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면서 소통 폭을 넓히고 있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 지역구에서 당선돼 8년 만에 국회에 복귀했다. 당시 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지도부와 대립하며 출마 지역구만 세 차례 변경한 끝에 탈당했다. 무소속 당선 직후 “마지막 꿈”이라며 대선출마 의지를 공식화했다.

통합당 복당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적 대권 행보 준비를 위한 취지로 보인다. 다만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불편한 관계인 점, 당 내부 사정도 여의치 않아 복당 시기는 불투명한 상태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6년 6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지난 2016년 6월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 박지원, 대북송금·저축은행 사건 돌파

4선 국회의원·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지낸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과거 불법 대북송금·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 등에 휘말려 수 차례 정치적 기로에 놓인 바 있다.

2002년 국정감사를 통해 의혹이 제기됐던 대북송금 사건은 특검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면서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사건 직접 관련자인 박 후보자가 법정에 섰다.

그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현대그룹 150억 원 뇌물수수 혐의는 벗어났지만, 타 대기업 1억 원 수수 혐의는 유죄(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외국환거래법 위반 등)로 인정돼 징역 3년·추징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2007년 특별사면·2008년 특별복권됐다.

이후 박 후보자는 2012년 9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등으로부터 청탁 대가로 2008년~2010년 당시 3차례에 걸쳐 8,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1심 재판부는 무죄, 2심 재판부는 징역 1년·추징금 3,000만 원을 선고하면서 정계은퇴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임 전 회장 등의 진술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대법원이 2016년 최종 무죄를 선고하면서 기사회생했다. 2017년에는 국민의당 대표직에 올랐다.

민생당 소속으로 출마한 21대 총선에서는 낙선(전남 목포)했다. 의원 배지를 내려놓은 뒤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6월 단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됐고, 여러 방송사에 고정 출연하며 입담과 정보력을 과시했다. 지난 3일 차기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27일 국정원장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가운데, 통합당은 박 후보자가 과거 사면된 대북송금 사건을 비롯해 대북관, 병역 문제 등을 지렛대로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다. 박 후보자가 살얼음판 청문회를 뚫고 35대 국정원장에 오르면서 재도약할지 주목된다.

권성동 의원이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강원랜드 채용청탁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권성동 의원이 지난 2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강원랜드 채용청탁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 권성동, ‘강원랜드 사건’ 딛고 4선 성공

권성동 통합당 의원은 지난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강원랜드 측에 압력을 넣어 교육생 선발과정에 개입했다는 채용비리 혐의로 2018년 7월 불구속 기소돼 홍역을 치렀다.

권 의원은 강원랜드 교육생 공채 과정에서 의원실 인턴 비서·지인·지지자 자녀 등 11명을 채용하게 한 혐의(업무방해)를 받았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자신의 비서관을 경력직으로 채용하게 한 혐의(제3자 뇌물수수 등), 고교 동창이 강원랜드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에게 압력 행사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도 구속영장에 포함됐다.

부장검사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20대 국회 전반기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낸 권 의원의 정치경력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소추위원장 활동 경력을 감안하면 불명예 퇴출은 기정사실이었다.

검찰이 2019년 5월 결심공판에서 징역 3년을 구형한 가운데 권 의원은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해 6월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020년 2월 열린 2심에서도 권 의원은 무죄를 받았다. 검사가 법관의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혐의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다. 현재 대법원 판결을 남겨둔 상황이다.

21대 총선에서는 당 공관위가 자신의 지역구인 강원강릉에 홍윤식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단수추천하면서 컷오프되는 수모를 겪었다.

권 의원은 공천 재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 4만9,618표(40.84%)를 얻어 당선됐다. 2위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4만7,088표(38.76%)를 얻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접전이었다.

갖가지 악재를 딛고 4선을 달성한 권 의원은 즉각 통합당에 복당을 신청했다. 다만 홍준표 의원 등과 마찬가지로 당내 사정으로 복당 논의는 후순위로 밀린 모습이다. 21대 국회 개원식도 마무리된 만큼 대선 국면 전에는 복당이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권 의원은 원내대표 도전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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