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인을 보면 혐오하면서도 선망하는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 정치인들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한편으로 높은 세계에 있는 별개의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시선에 늘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여러 가지 덫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권력의 맛은 달콤하기 때문이다. <시사위크>는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수많은 덫과 향후 정치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덫′에 걸려 비극적 결말을 맞은 정치인의 공과(功過)는 정치권의 논란이 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정치가는 역사의 법정에 선 피고다.’ 일본의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이 말이 정치권에서 종종 회자되고 있다. 정치인의 삶은 두고두고 역사의 평가를 받는다는 의미로 권력을 쥔 상태에서 행보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의 행적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나온다. 특히 ′덫′에 걸려 비극적 결말을 맞은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더욱 복잡해진다. 혹자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비극적 결말을 야기한 ‘원인’에 집중하곤 한다.

◇ 박정희 둘러싼 40년 공방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과(功過) 논란에 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가 권력의 덫에 빠져 장기 독재를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진보 진영에서 ‘독재자’라는 인식이 다분하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과’가 아닌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5대부터 9대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햇수로만 18년간 집권이다. 그 과정에서 3선 개헌과 1972년 10월 유신 개헌을 강행하며 장기 집권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신체제에서 박 전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신설하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도록 해 국회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전환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리는가 하면, 연임제한을 폐지해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의 뒤에 ‘독재자’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이유다.

이와 상반되는 평가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의 ′성장 신화′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끈 장본인이었다는 점이다. 수출주도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이 시기다. 보수 진영에서 박 전 대통령의 성공 신화를 강조하는 까닭이다.

이런 점에서 운동권 출신에서 보수 인사가 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평가한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김 전 지사는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도지사 시절 경기 북부 지역에 고속도로를 놔 달라고 중앙 정부에 요구했다”며 “생각해 보니 난 박정희의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향하기 전에는 박정희의 공과를 0:10으로 봤지만, 지금은 8:2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권력’이라는 덫에 빠진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에 목숨을 잃었다. 그가 서거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과(功過) 논란은 정치권에 숨쉬고 있다. 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문재인 독재자”를 외치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정희 독재자”라고 맞섰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가 코로나 극복이 ‘박 전 대통령의 의료체계 덕’이라고 발언해 정치권 공방의 구실이 되기도 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 공방은 최근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불이 붙고 있다. /뉴시스

◇ 보수진영, 노회찬·박원순의 과오 공격

박 전 대통령이 보수를 공격하는 진보 진영의 실탄이었다면, 최근 이 같은 공세가 진보 진영을 향해서도 일어나고 있다.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이 그 경우다. 2018년 7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에 대한 특검수사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드루킹 일당이 노 전 의원에게 5,000만원 가량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노 전 의원은 비극적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 차례 걸쳐 경제적 공진화 모임으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다만 그는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댓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 있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 전 의원의 죽음을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갈라졌다. 홍준표 당시 한국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경우라도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며 “잘못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책임회피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정의당은 곧장 홍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무능하다’라며 반발했다.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 역시 이러한 세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권변호사로서 그의 업적을 강조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성추행 의혹’을 받는 그의 과오를 더 크게 보는 이들도 있다.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 또한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곤 한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본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주변인의 잘못을 책임지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럼에도 권력을 쥔 정치인에게는 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덫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인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는 ′인물 중심′의 정치 풍토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뉴시스

◇ ‘인물 중심’ 정치 풍토가 문제
 
이처럼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정치인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기저에 인물 중심 정치 풍토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저서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에는 ‘지도자 추종주의’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정치인을 신격화’하는 상황을 언급하며 그 이유를 4가지로 제시한다. 첫번째는 고난과 시련의 역사로 인한 ‘영웅 대망론’이고 두번째는 이념과 같은 추상보다 사람에 더 잘 빠지는 한국의 정(情) 문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번째는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모든 걸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는 ‘빨리빨리’ 문화이고, 마지막 네번째는 조직·집단의 기득권 구조에 대한 강한 불신과 저항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비극을 맞은 정치인을 이해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대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정치 풍토가 이념과 진영이라는 큰 틀보다는 이를 상징하는 인물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2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일명 ‘정치 인격화 현상’으로 정치를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분명히 있다”며 “사람을 중심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이성적이어야 할 정치적 프로세스가 상당히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과오를 줄이고 공을 더 치켜세우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신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공과(功過)가 있을 수 있다”며 “진영에 얽매여 (인물을) 좋아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렇다 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마저 주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서 촉발된 정치구조도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에서 증폭된 강대강 진영논리는 가장 최근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도 재차 벌어졌다. 진영 간 틈이 더욱 벌어지면서 이념이 아닌 감정에 휩쓸리는 분위기가 자리잡게 됐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현재의 진영이라는 것이 얼핏 보면 이념적 상황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적 차원의 문제가 됐다”며 “현 정권 들어 ‘적폐청산’이라고 하면서 갈라치기 정책이 이러한 감정을 더욱 강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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