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3 17:04
[기자수첩] ‘트로트 열풍’이 예능에 낳은 부작용
[기자수첩] ‘트로트 열풍’이 예능에 낳은 부작용
  • 이민지 기자
  • 승인 2020.07.27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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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새롭게 하는 프로그램들은 일반인 혹은 연예인들끼리 트로트 대결을 하든지 아님 트로트 인재를 찾는 프로그램이고, 기존 예능들은 트로트 가수들이 무조건 몇 명씩 패널로 나와 있고... 초반엔 신선하고 트로트가 호감으로 다가왔는데 이젠 진짜 질린다.”(네티즌 xp09***)

2020년 상반기가 훌쩍 지나갈 동안 트로트는 예능 시장을 삼켰다. ‘트로트 열풍’에 걸맞게 너도나도 트로트를 예능의 소재로 삼았고, 이미 다른 콘셉트로 방영 중이던 예능들은 대세 트로트 가수들을 한두 명씩 초대 손님으로 끼워 방송했다. 그렇게 신선했던 트로트가 진부함으로 다가오기까지 걸린 시간 단 5개월이다. 

TV조선 ‘미스트롯’에 이은 ‘미스터트롯’의 대흥행은 국내 문화에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중장년층 전용 B급 음악 취급을 받던 트로트는 몇 개월 사이에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진정한 ‘대중음악’으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엔 ‘유산슬’의 활약도 적지 않다.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분한 유재석은 ‘사랑의 재개발’ ‘합정역 5번 출구’ 등의 히트곡을 발매해 트로트 열풍에 힘을 더하는 동시에 ‘부캐’(부캐릭터)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생산해내며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가요 역사에서 오랜 기간 한 부분을 차지했던 트로트의 부활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로 작용했다. 다만 예능 시장에서의 ‘트로트 열풍’은 반가움과 우려감을 동시에 자아냈다. 하나의 소재 혹은 콘셉트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면 이를 모방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모습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예상처럼 ‘미스터트롯’의 흥행에 각 방송사에서는 트로트를 콘셉트로 한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현재 SBS ‘트롯신이 떴다’를 비롯해 △SBS플러스 ‘내게 ON 트롯’ △TV조선 ‘뽕숭아학당’ △MBN ‘보이스트롯’ △MBC ‘최애 엔터테인먼트’ 등 여럿 ‘트롯 예능’들이 콘셉트만 조금씩 수정된 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육아 예능, 부부 예능 등 엄연히 다른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을 게스트로 초대, 트로트 열풍에 숟가락 얻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부부 예능 프로그램 TV조선 ‘아내의 맛’은 지난 1월부터 ‘미스터트롯’ 출신 홍잠언, 임도형 등 꼬마 트롯맨들의 에피소드를 다루기 시작, 이젠 버젓이 ‘트롯의 맛’ 이름을 내걸고 작은 코너처럼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을 출연시키고 있다. 

트로트는 육아 예능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침범하는 추세다. 지난 26일 방영된 KBS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트롯소년단 특집’이라는 부제로, 축구선수 출신 이천수·개그맨 김인석과 권재관·배우 오대환의 아이들이 트로트 멘토 박현빈·홍잠언·김수찬·노지훈에게 트로트를 배우는 과정을 방영했다. 엄마 없이 아빠 혼자 아이들을 본다는 콘셉트로 현실적 공감을 자아내며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던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 없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는 ‘미스트롯’ 출신 송가인의 조카 조한서, 조은호가 참가자로 출연, 송가인이 직접 조카들을 레슨하는가 하면 함께 피자를 먹으며 약 10분 동안 갑작스런 ‘송가인 특집’을 진행해 시청자들을 당황케 만들었다. 본 취지와는 상관없이 화제성에만 초점을 맞춘 캐스팅.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영탁의 노래 제목이 절로 떠오르는, 프로그램 콘셉트와 관련 없는 트로트 가수들의 출연은 시청자들의 피곤함만 부추기고 있다.

트로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제2의 미스터트롯’을 꿈꾸는 방송사들. TV조선이 ‘미스터트롯’의 열기를 이을 ‘미스트롯’ 시즌 2를 기획할 동안 각 방송사들은 ‘트로트 열풍’에만 사로잡혀 점차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 유튜브만 봐도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같은 예능 시장의 흐름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트로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없을 때 ‘미스트톳’과 ‘미스터트롯’을 내놓으며 TV조선은 자신들의 가치를 높였다. 수 십 개의 모방프로그램 대신 한 개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이 지니는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트렌드에 발을 맞추는 것도 프로그램이 해야 할 일이지만, 현재 트로트를 다루는 예능프로그램이 과부하 상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 더 시급한 것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기존 프로그램의 개성을 잃게 만드는 개연성 없는 트롯맨들의 출연을 멈춰주길, 최근 시청자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전하는 작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