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사상전향. 2020년 국회에 울려 퍼진 단어다. 근 20년간 듣기 힘들었던 단어기도 하다. 사상전향이라는 용어는 사상전향제도에서 파생됐다.

사상전향제도란 일제 후반기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범들이나 해방 후엔 권위주의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집시법·계엄령·공안 관련 법률 등을 위반한 공안사범들을 가석방 시켜주는 조건으로 사상전향서를 쓰고 석방시켜주는 제도였다. 1933년부터 시행됐던 이 제도는 1998년 폐지됐다. 이 제도는 헌법 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2020년을 살아가는 시민의 입장에서 ‘사상전향’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유물로 여겨질 터다. 그러나 2020년 7월 이인영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사상전향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 장관의 운동권 전력을 거론하며 사상전향 여부를 물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질의는 정치권에 색깔론 공방을 불러왔다.

기자는 이 시대에 사상검증, 전향, 색깔론이라는 단어가 정치권에 난무하는 모습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20세기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태 의원의 거듭된 질의에 이 장관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북에서는 이른바 사상전향이란 것들이 명시적으로 강요되는지 모르지만, 남쪽은 사상과 양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상전향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사상검증은 민주주의 사회와는 동떨어진 행위라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장관 후보자에게 사상검증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상검증은 문제가 있다. 헌법 19조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사상검증은 개인의 양심을 강제로 드러내도록 하는 폭력이다.

앞으로는 ‘구시대의 유물’을 국회에서 볼 일이 없었으면 한다. 사상검증은 체제경쟁 시절의 용어다. 체제경쟁에서 패배한 쪽의 행태를 반복하는 것은 2020년 대한민국 사회상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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