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범 사장이 부친의 지분을 모두 건네받았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 양상에 휩싸이고 있다. /뉴시스
조현범 사장이 부친의 지분을 모두 건네받았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 양상에 휩싸이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의 경영권 분쟁 양상이 결국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현범 사장이 부친 조양래 회장의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것에 대해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조양래 회장이 이례적으로 공식입장을 내놓는 등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3세 경영권 승계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빚어질지, 무엇보다 경영권 분쟁이 조현범 사장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 성년후견 신청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장녀

재계에 따르면, 조희경 이사장은 지난 30일 부친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을 서울가정법원에 신청했다. 성년후견은 나이가 많거나 장애 또는 병이 있어 스스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재계에서는 주로 경영권 분쟁 국면에 등장하는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역시 그 뒤를 잇게 됐다.

조희경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 배경은 승계문제와 직결된다. 조양래 회장은 지난달 자신이 보유 중이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전량을 차남 조현범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형 조현식 부회장을 비롯한 형제들을 모두 제치고 3세 경영승계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조희경 이사장은 조양래 회장의 이 같은 결정이 평소 신념이나 생각과 너무 다르고 갑작스럽게 이뤄졌다며,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것인지 객관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자 조양래 회장이 직접 나섰다. 31일 전격적으로 입장문을 낸 것이다. 그는 “첫째 딸의 행동이 많이 당황스럽다. 어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관계가 조금 소원해졌다는 건 느꼈지만, 정말 사랑하는 첫째 딸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고 저야말로 괜찮은 건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조현범 사장에게 약 15년간 실질적으로 경영을 맡겨왔다. 그동안 좋은 성과를 만들며 회사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고, 충분한 검증을 거쳤다고 판단해 이미 전부터 최대주주로 점찍어 두었다”고 덧붙였다.

조양래 회장은 조희경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조양래 회장은 조희경 이사장의 성년후견 신청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입장을 내고 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또한 자신이 건강하다고 강조한 조양래 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욕심이 있는 거라면, 딸에게 경영권을 주겠다는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해 본적이 없다. 돈에 관한 문제라면, 첫째 딸을 포함해 모든 자식들에게 이미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증여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재단에 뜻이 있다면 이미 증여 받은 본인 돈으로 하면 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개인 재산을 공익활동 등 사회에 환원하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고, 향후 그렇게 할 방법을 찾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제가 고민해서 앞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식들이 의견을 낼 수는 있으나, 결정하고 관여할 바는 아니라는 게 제 소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끝으로 조양래 회장은 “딸이 예전의 사랑스러운 딸로 돌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가족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더욱 발전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저도 힘 닫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지분경쟁… 조현범 재판에도 영향 가능

장녀와 부친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경영권 분쟁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긴 이후, 재계에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일가 내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측은 사실무근이며 형제경영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조희경 이사장과 조양래 회장의 행보는 갈등이 실재했음을 사실상 입증하는 꼴이 됐다.

수면 위로 본격 떠오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경영권 분쟁이 한진그룹처럼 치열한 지분경쟁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은 현재로서 낮다. 단,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부친의 지분을 모두 넘겨받은 조현범 사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42.90%를 확보한 상태다.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 등 나머지 형제들은 지분을 모두 합쳐도 30%가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7.74%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존재다. 국민연금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기까지 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현범 사장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지분 차이는 5%내로 좁혀지게 된다.

또한 이 같은 경영권 분쟁은 조현범 사장의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현범 사장은 납품을 대가로 협력업체로부터 10년에 걸쳐 수억원의 뒷돈을 받아 챙기고, 계열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됐다. 철저하게 ‘반성전략’을 내세운 그는 지난 4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실형을 면했다. 조현범 사장은 2심에서도 1심과 마찬가지로 혐의 일체를 인정하며 반성전략을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현범 사장이 반성의 의지로 강조하는 핵심 중 하나는 투명경영과 정도경영을 지키며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벌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 상황은 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실제 조희경 이사장은 이번 성견후견 신청과 함께 “대기업의 승계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회사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이뤄져야 할 것이며 기업 총수의 노령과 판단능력 부족을 이용해 밀실에서 몰래 이뤄지는 관행이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또 다른 비리가 드러나는 등의 상황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각종 비리 등이 폭로되거나 드러나는 일이 적지 않다”며 “그동안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인 만큼, 경영권 분쟁의 후폭풍이 예상보다 크게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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