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조현범 사장(왼쪽)과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양상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조현범 사장(왼쪽)과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 양상에 휩싸이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테크놀로지그룹(구 한국타이어그룹)의 경영권 분쟁 양상이 본격화한 가운데, 지난 3월 조현식 부회장이 주주들에게 전했던 메시지가 다시금 주목을 끌고 있다. 통렬한 반성과 대대적인 개선 의지가 담긴 메시지였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진정성이 담긴 반성문이라기 보단 동생에 대한 공세에 불과했다는 해석에 더 큰 무게가 실린다. 이례적인 반성문의 실체는 그저 ‘경영권 분쟁’이었던 셈이다.

◇ ‘통렬한 반성’ 말했던 조현식 부회장

주주들에 대한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는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나왔다. 구구절절한 반성과 개선 의지를 담은 메시지의 내용은 무척 이례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먼저, 조현식 부회장은 경영악화는 물론 오너일가가 일으킨 논란에 대해 반성의 뜻을 밝혔다. 경영악화에 대해서는 “과거의 성과에 도취돼 현실에 안주하고 타이어 산업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며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너일가가 기소된 상황에 대해서도 “주주 여러분들의 우려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며 “심려를 끼쳐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선 의지는 세 가지 측면에서 꽤나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적극적인 경영혁신을 통해 실적을 개선하겠다며 포트폴리오 및 가격 정책 점검,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투자 및 비용 절감 등을 다짐했다. 지배구조 및 주주가치 제고와 관련해서는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지주회사에 대한 로열티 지급 축소 등이 제시됐다. 

마지막으로는 정도경영체계 강화를 약속했다. 구체적인 실행 중심의 행동강령 마련, 반부패경영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신뢰를 회복하고, 그룹 전반에 정도경영문화가 빠르게 안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조현범 사장은 이후 부친으로부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넘겨받았다. /뉴시스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조현범 사장은 이후 부친으로부터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을 넘겨받았다. /뉴시스

◇ 3세 후계 주도권 쥔 조현범 사장… 결국 터진 경영권 분쟁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에도 남겨있듯, 당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오너일가는 재판을 받고 있었다. 조현식 부회장은 친누나가 미국법인에 근무하는 것처럼 꾸며 1억여원의 인건비를 지급한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동생인 조현범 사장은 10년에 걸쳐 협력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계열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1심 재판과정에서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며 적극적으로 반성의 뜻을 밝혔다. 조현식 부회장의 이례적인 메시지도 반성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됐다. 주주들에 대한 메시지가 나온 지 한 달 뒤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이들은 나란히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실형을 면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테크놀로지그룹에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먼저, 조현범 사장은 지난 6월 23일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구 한국타이어) 대표이사 자리에서 전격 물러났다. 대표이사로 올라선지 2년여 만이었다. 항소심을 앞두고 반성의 의지를 한층 더 강력하게 표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 한국테크놀로그룹은 최대주주 변동을 전격 발표했다. 조양래 회장이 자신의 지분 모두를 조현범 사장에게 블록딜 방식으로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조현범 사장은 형 조현식 부회장을 제치고 3세 경영승계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고, 기존의 ‘형제경영’ 구도는 완전히 깨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여러 설이 제기됐다. 조현범 사장의 구속을 기점으로 경영권 갈등이 불거졌으며, 특히 지난해 말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가족모임을 소집해 조현범 사장의 퇴임 및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주장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조현식 부회장의 주주에 대한 메시지 역시 이러한 갈등이 반영된 것이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런데 최근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경영권 분쟁 양상이 수면 위로 본격 떠올랐다. 조희경 이사장이 부친에 대해 성년후견을 신청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조양래 회장은 이례적으로 이에 반박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특히 “최근 몇 달 동안 가족 간에 최대주주 지위를 두고 벌이는 여러 가지 움직임에 대해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자 미리 생각해 두었던 대로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 전량을 매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영권 분쟁이 실재했음을 입증하는 언급이었다.

◇ 실현 가능성 낮아진 조현식 부회장의 반성문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경영권 분쟁설이 결국 현실로 나타나면서 조현식 부회장의 반성문 또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반성문의 실체가 경영권 분쟁의 일환에 더 가까웠다는 지적과 함께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는 당시에도 그 배경과 진정성에 물음표가 붙은 바 있고, 재판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데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동생 조현범 사장을 향한 공세에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엔 오너일가의 범죄행위에 대한 반성과 정도경영 구축 의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혐의가 훨씬 무거웠던 조현범 사장의 입지 위축을 예상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조현범 사장이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를 전후로 위기감을 느끼고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설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조현식 부회장의 메시지 발표 이후에도 갈등을 빚고 있는 계열사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를 무시로 일관했다. 이는 주주가치 제고와 함께 소액주주와의 소통 강화를 약속했던 것에 부합하지 않는 행보였다. 조현식 부회장의 반성문이 주주를 향한 것이 아닌, 동생을 향한 것이었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또 다른 측면에서 조현식 부회장의 구구절절한 반성문은 실현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3세 경영의 주도권을 조현범 사장에게 뺴앗겼기 때문이다. 조현범 사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42.9%를 확보하고 부친에 의해 정식 후계자로 공표된 가운데, 조현식 부회장이 대대적인 혁신을 주도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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