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23 11:02
‘2인자’ 황각규의 공허한 뒷모습
‘2인자’ 황각규의 공허한 뒷모습
  • 권정두 기자
  • 승인 2020.08.14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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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각규 롯데그룹 회장이 전격 물러났다. /뉴시스
황각규 롯데그룹 회장이 전격 물러났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롯데그룹의 ‘2인자’로 존재감을 빛냈던 황각규 부회장이 물러났다. 예상치 못한 전격적인 세대교체 인사가 단행됐다. 미래를 향한 ‘뉴 롯데’ 행보가 더욱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더이상 황각규 부회장은 없다. ‘신동빈의 남자’라 불렸던, 또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중심을 잡았던 ‘40년 롯데맨’치고는 다소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는 마지막 모습이다.

◇ 물러난 황각규, 후임은 이동우

롯데그룹은 지난 13일 오후 이사회를 열고 황각규 부회장의 사임과 후임 인선 등을 처리했다. 그동안 롯데그룹의 2인자로 자리매김해온 황각규 부회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를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사장이 채운다. 이로써 롯데지주는 신동빈 회장, 송용덕 부회장 이동우 사장이 3인 대표이사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와 함께 롯데지주의 기존 경영전략실은 경영혁신실로 개편돼 신사업 발굴 및 계열사 시너지 창출 전략 등에 집중할 예정이다. 경영혁신실장은 이훈기 롯데렌탈 대표이사 전무가 맡는다. 기존 경영전략실장이었던 윤종민 사장은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이동해 그룹 인재육성에 전념하게 됐다.

이밖에도 연쇄 인사이동이 이뤄졌다. 김현수 롯데물산 대표이사 사장이 롯데렌탈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기고, 류제돈 롯데지주 비서팀장이 롯데물산 대표이사를 맡는다. 롯데인재개발원 전영민 원장은 롯데엑설레이터 대표이사로 이동하고, 롯데하이마트 대표이사는 황영근 영업본부장이 새로 선임됐다.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에 대해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등 어려운 경영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그룹의 생존과 미래 성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혁신과 변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 인사의 핵심이자 가장 주목을 끈 황각규 부회장의 퇴진에 대해서는 “황각규 부회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비즈니스 환경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서는 젊고 새로운 리더와 함께 그룹의 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황각규 부회장은 2017년 롯데지주 출범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아온 바 있다. /뉴시스
황각규 부회장은 2017년 롯데지주 출범과 함께 대표이사를 맡아온 바 있다. /뉴시스

◇ 위기 때마다 존재감 키운 황각규

이번에 물러난 황각규 부회장이 ‘롯데맨’ 생활을 시작한 것은 무려 40여년 전인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이 롯데에 인수되던 1979년 입사했다. 신동빈 회장이 1990년 경영수업의 일환으로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 또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황각규 부회장은 그룹 내 요직을 꿰차고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5년 롯데그룹 본부로 자리를 옮겨 국제팀장·실장, 운영실장, 경영혁신실장 등을 역임했다. 신사업과 M&A를 주도하며 롯데그룹의 성장을 이끌었고, 본인의 입지 또한 키워나갔다.

황각규 부회장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롯데그룹에 시련이 찾아오면서다. 롯데그룹은 2015년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불붙으면서 격랑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롯데그룹은 각종 비리 혐의로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2인자’ 이인원 부회장이 2016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때 황각규 부회장은 고(故) 이인원 부회장의 빈자리를 채우며 새로운 ‘2인자’로 본격 도약했다. 이듬해인 2017년 롯데지주 출범과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2018년 부회장으로 승진한 점 등은 그의 존재감 확대를 상징한다.

이후에도 롯데그룹의 시련은 계속됐고, 황각규 부회장의 무게감 또한 더욱 커져갔다. 2018년 2월, 신동빈 회장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것이다. 황각규 부회장은 이때도 최악의 위기상황 속에 신동빈 회장의 부재를 대신하며 그룹의 중심을 잡았다.

◇ ‘화려한’ 2인자의 ‘화려하지 못한’ 마지막

이처럼 존재감이 상당했던 황각규 부회장의 전격적인 퇴진은 여러모로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황각규 부회장이 롯데지주 대표이사로 재선임된 것은 불과 지난 3월이다. 이를 통해 임기는 2022년 3월까지 연장된 바 있다. 그런데 새로운 임기를 반년도 채 채우지 못하고 돌연 물러났다.

8월에 중대 인사가 단행된 점도 무척 이례적이다. 롯데그룹 역사에선 찾아볼 수 없고, 재계에서도 흔치 않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매년 연말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해 왔으나, 미래를 대비해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고, 그룹의 미래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기 위해 임원인사 및 롯데지주 조직개편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황각규 부회장 본인이 용퇴를 결심했고, 이에 따라 인사를 단행했다고 공식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아닌, 실적 악화 및 위기 상황에 책임을 지고 밀려나듯 물러나는 모양새가 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도 여러 말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 등의 악재를 사실상 털어낸 신동빈 회장이 황각규 부회장을 견제한 것이라거나, 심지어 신동빈 회장 장남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설까지 제기된다.

‘신동빈의 남자’ ‘40년 롯데맨’ ‘2인자’ 황각규 부회장이 누구보다 화려한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뒷모습을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