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14 17:07
[정숭호의 늦은수다] 신용산 복집과 ‘모스크바의 신사’
[정숭호의 늦은수다] 신용산 복집과 ‘모스크바의 신사’
  • 정숭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8.20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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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내 글을 좋아하는 두 분이 점심을 산다며 서울 신용산역 부근 복집에 나를 데려갔습니다. 그날 복(鰒)을 복(腹) 터지도록 맛나게 먹었습니다. 복 튀김-복 수육-복국으로 이어지는, 오랜만의 복(福) 받은 코스였습니다. 복회까지 먹었으면 완벽했으련만 더 들어갈 복(腹)이 없었지요. 흰 접시에 정갈히 담겨 있던 복 껍질 무침과 낙지젓 같은 밑반찬은 맛만 보고 말았습니다. 다른 복집에서는 몇 번씩 더 시켜 먹던 것들인데 말입니다. 밥에는 젓가락도 대지 못했고요. 윤기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밥이었는데도 ….

그날 그 복집에서 채신머리없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복을 입에 넣으면서도, 초대해준 분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눈은 벽에 걸린 액자에 자주 가 있었습니다.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아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액자였습니다. 

사실, 복집 입구 맞은편에 걸려 있던 이 글귀는 입구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내 눈에 들어박혀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또 오랜만에 내 몸에 감동이 찌르르 흘러지나간 순간이었습니다. ‘지지 않기 위해, 속지 않기 위해’ 저주와 경멸과 조롱과 억지와 덮어씌우기와 욕설과 거짓으로 대화의 대부분을 채우는 사람들이 하루하루 늘어나서였을 겁니다. “다시는 지지 않겠습니다”라는 그들의 전투적 구호에 지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질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알아라”라는 글귀는 그 복집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내 눈에 들어박혀 있었습니다. / 정숭호
“질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알아라”라는 글귀는 그 복집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내 눈에 들어박혀 있었습니다. / 정숭호

복을 복되게 먹은 후, “질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알아라”라는, 이 소박하고 순수한 타이름에 감동할 만큼 아직은 영혼이 그렇게 되바라지지 않은 것에 만족해하면서 지하철역에 내려간 나를 이번에는 윤동주의 시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나!/이 겨울에도/눈이 가득 왔습니다//흰 봉투 안에/눈을 한줌 넣고/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부치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누나 가신 나라엔/눈이 아니온다기에>

스크린도어 옆에 붙여놓은 이 시를 전화기에 사진으로 담아온 것 역시, 복과 함께 마신 소주 때문만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에어컨 바람 시원한 지하철역에서 ‘하얀 눈’을 본 때문만도 아닐 겁니다. 그냥 아름답고 착하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것들에서 그동안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집에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대단한 독서가인 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엄청 재미있다고 소개한 ‘모스크바의 신사’입니다.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스크바의 한 호텔에 ‘종신 연금’된 제정 러시아의 한 백작 이야기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아끼며 읽었지요. 교양과 상식과 세련과 유머와 순수와 따뜻함 같은 것들이 촘촘히 어우러진 재미! 다음은 호텔 스위트룸에 투숙한 당대 러시아 최고 미인 여배우와 얼떨결에 사랑을 나누고 여배우 방에서 빠져나온 백작의 마음을 묘사한 장면입니다.

<젊은 남자로서 백작은 평소 한발 앞서 상황을 이끄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적시에 나타나기, 적절한 표현, 필요한 것을 예측하기 …. 백작에게 이 같은 것들은 교양 있게 잘 자란 남자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여성에게) 한발 뒤처지는 것이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백작은 새삼 깨달았다. 그로서는 그게 훨씬 더 편안했다,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부단한 경계심을 요하는 것이었다. 앞서 이끌며 성공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고, 모든 몸놀림을 주의해야 하고, 모든 표정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달리 말하면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발 앞서는 것은 진이 빠지는 일인 것이다. 반대로 한발 뒤처지는 것은? 유혹당하는 것은? 음, 그것은 의자에 기대앉아 와인을 홀짝이며 상대의 질문에 머릿속에 맨 먼저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스크린도어 옆에 붙여놓은 이 시를 전화기에 사진으로 담아온 것 역시, 복과 함께 마신 소주 때문만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에어컨 바람 시원한 지하철역에서 ‘하얀 눈’을 본 때문만도 아닐 겁니다. 그냥 아름답고 착하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것들에서 그동안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 정숭호
스크린도어 옆에 붙여놓은 이 시를 전화기에 사진으로 담아온 것 역시, 복과 함께 마신 소주 때문만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에어컨 바람 시원한 지하철역에서 ‘하얀 눈’을 본 때문만도 아닐 겁니다. 그냥 아름답고 착하고 깨끗하고 순수하고 소박한 것들에서 그동안 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 정숭호

왜 이렇게 남의 소설을 길게 베껴 놓냐고요? 질 줄도 알고 속을 줄도 아는 게 결코 손해나는 장사가 아니란 걸 알려드리려고요. 여배우에게 한발 뒤처진 백작의 마음속 묘사는 다음처럼 계속됩니다. (내가 좀 엉큼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한발 뒤처지는 것이 한발 앞서는 것보다 더 편안하면서 더 자극적이기까지 했다. 한발 뒤처진 사람은 편안한 입장에서 새로이 알게 된 사람과의 저녁 시간이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흘러갈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눈 뒤에 편히 주무시라는 말을 건네며 문 앞에서 헤어질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런데 식사 도중 예기치 못한 칭찬이 있게 된다. 우연히 손가락이 상대의 손을 스치는 일도 생긴다. 부드러운 고백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웃음이 이어진다. 그런 다음 갑작스러운 키스 ….>

‘모스크바의 신사’는 재미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볼셰비키 혁명을 비꼬는 내용입니다. 그중 한 토막 옮기면서 이 글 마칩니다. 이거 읽으면서 ‘적폐청산’된 이 나라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호텔에 연금된) 백작이 알아낸 바로는, 볼셰비키들은 어떻게든 이유를 달아서 어떤 형식으로든 가능한 한 (예전 호텔 무도장에서) 자주 집회를 가졌다. 한 주 사이에 무슨 위원회, 무슨 간부회의, 세미나, 총회, 대의원 대회 따위의 다양한 모임을 열어서 규약을 제정하고 행동 방침을 수립하고 불만 사항을 모아서 제기했다. 대개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제들을 가장 새로운 명칭을 붙여 요란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중략)

백작은 몇몇 집회를 (숨어서) 지켜보고 난 뒤, 더욱더 놀라운 결론에 이르렀다. 그것은 혁명에도 무도회장은 바뀐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예를 들면, 바로 그 순간에 마치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기세등등한 젊은이 둘이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두 젊은이는 다른 어떤 사람과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먼저 벽 옆에 앉은 한 노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무도회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짐작건대 이 노인은 1905년 혁명에 참여했거나, 1880년에 소논문을 썼거나, 아니면 1852년에 카를 마르크스와 식사를 함께한 사람인 듯 싶었다. 노인의 명성이 어디서 비롯됐든 간에 그 늙은 혁명가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여서 두 젊은 볼셰비키의 존경심을 받아들였다. 노인이 줄곧 앉아 있는 의자는 바로 아나포바 대공 부인이 자신의 연례적으로 여는 부활절 무도회에서 대공의 예의 바른 젊은 아들들로부터 인사를 받곤 하던 그 의자였다. (중략)

집회가 끝날 무렵, 니나와 함께 기어서 발코니에서 몰러나 다시 복도로 나온 백작은 매우 흡족한 기분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경의를 표하는 사람,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 뒤늦게 오는 사람 등이 옛 시절의 그런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