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산문집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도서출판 걷는사람)’. 김봄 작가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가로, 문화예술 기획자로도 활동 중이다. / 도서출판 걷는사람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산문집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도서출판 걷는사람)’. / 도서출판 걷는사람

시사위크=이수민 기자  2011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김봄의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도서출판 걷는사람)’가 그것.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책은 70대 엄마와 40대 딸이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과연 ‘좌우’의 시각으로만 판단 내려질 수 있는 것인가 질문하며, 대한민국의 축소판과도 같은 ‘가족사’를 통해 공생(共生)의 전략과 해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한다.

◇ 대한민국의 ‘정치 풍속도’를 친숙하고도 실감있게 그려내다

“좌파들, 정말 무섭네. 이렇게 진실 보도를 안 하니.”

“엄마 무슨 학원 다녀, 그런 말을 다 어디서 배웠어?”

혀를 차며 진심 어이없어하는 손 여사를 보고 있자니, 더 갖다 붙일 말이 없었다.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중에서

이 짧은 대화 한 토막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는 수많은 의견 대립들이 ‘좌파’냐 ‘우퍄’냐 극단의 프레임으로 짜이곤 한다. 그리고 그 극단의 프레임은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가장 첨예한 ‘싸울 거리’로 등장한다.

“가족끼리는 정치 얘기 하는 거 아니”라는 말만 봐도 그렇다. 제아무리 피를 나눈 부모 자식 사이도, 형제간도 ‘표’를 찍을 땐 각자의 지지자와 지지 정당이 존재하므로 정치적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일. 선거를 앞두고 집안에서 정치 이야기로 논란이 불거지다가 고성이 오가고, 결국에는 치고받고 싸우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건 TV 드라마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 가정 속 풍경이다. 하다못해 TV 채널 하나 가지고도 가족 간 알력 다툼이 벌어지고, 진보냐 보수냐가 나눠진다.

김봄 작가는 이 웃기고 슬픈 현실을 직시하며 에세이 쓰기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래 전 기억 속의 이야기, 그리고 사소한 일상 속 대화들을 채집해내어 대한민국의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정치 풍속도’를 친숙하고도 실감 있게 그려낸다.

“엄마! 다 가짜뉴스라니까. 그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있어.
그거 유튜브 같은 거 계속 보고 그러니까 지금 세뇌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손 여사는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들었다 말았다.

“이 빨갱이. 너도 큰일이다.”

손 여사는 개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정치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교야.”

그때 손 여사 왈,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중에서

당연하다는 듯 촌지를 주고받는 학무모와 교사, 출신 지역에 따라 정치적 편향이 정해지는 사람들, “전라도 사위는 안 돼!” 대놓고 외치는 부모,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신념으로 삼는 중산층,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나 성 소수자를 향한 삐딱한 시선들……. 그들은 결국 우리의 가족이자 이웃이며 가장 친밀한 얼굴들이다. 그러하기에 책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작가의 고백은 더 울림 있게 다가온다.

“나는 보수 부모의 돈으로 자랐다. 그 돈으로 학원에 다녔고, 책을 사 읽었다.”

작가는 그 덕에 “진보의 가치를 접했고, 진보적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며 “다르지만 다른 모습 그대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좌충우돌하며 삐걱거리지만 결국 타협하며 한발씩 나아가 공생할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알 것 같으면서 전혀 모르겠는 가족 이야기이자, 대한민국 현대사가 부려놓은 시트콤 같은 장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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