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기후변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에 태풍이 잦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사진은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영향으로 인제군 서화면 대곡리 구 교량이 무너져 있는 모습. /뉴시스<br>
기후변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반도에 태풍이 잦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사진은 제9호 ‘마이삭’의 영향으로 인제군 서화면 대곡리 구 교량이 무너져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사상 최대의 긴 장마, 무더위, 잦은 태풍.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올해는 유독 기후가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경단체들과 기상전문가들은 태풍이 잦은 원인을 ‘지구 온난화’에서 찾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태풍이 많이 발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인류가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면서 지구온난화를 유발한 탓에, 기후변화가 빨라지고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코로나19와 각종 기상이변을 겪으면서 국민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최근 녹색연합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4세~69세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5.8%는 코로나19와 폭염·폭우 등 기상이변을 겪으며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고 답했다. 

◇ 기후위기와 산업재편… 고용구조 변화 불가피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은 노동계에서도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산업구조 재편에서 노동구조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예컨대,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석탄발전소는 사라질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관련 분야의 일자리도 없어지게 된다. 반면, 화석 에너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저탄소 경제구조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정부는 화석에너지 중심 산업을 신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경제구조로 바꿔 고용과 투자를 늘리는 정책인 ‘그린뉴딜’을 발표한 바 있다.

희망연대노조가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LG유플러스 본사 2층에 위치한 한마음지부 사무실에서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은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국장, 서광순 딜라이브지부 사회연대위원회 위원장, 임제헌 LG유플러스 한마음지부 사무국장,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이미정 기자

이에 따라 노동계 일각에서도 기후변화위기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희망연대노동조합이 이와 관련된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희망연대노조는 최근 기후위기 대응 논의를 위한 노조 차원의 실천적 과제 발굴 및 연대 활동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자는 지난 2일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함께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LG유플러스 본사 2층에 위치한 한마음지부 사무실에서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나눔연대국장을 만나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자리엔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딜라이브지부 사회연대위원회 위원장과 임제헌 LG유플러스 한마음지부 사무국장도 함께 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산하 지역일반노조인 희망연대노조는 지역사회운동노조운동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2009년 세워진 곳이다. 임금단체협상 등 기본적인 작업장 투쟁에만 머물지 않고 지역단체들과 연대해 성 평등, 생태환경, 인권, 평화, 사회공공성 등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딜라이브지부,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티브로드지부. LG유플러스 한마음지부, 방송스태프지부, LG헬로비전 비정규직지부, 다산콜센터지부 총 14개 산하 지부를 두고 있으며, 주로 케이블·방송 통신 분야의 조합원들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 희망연대노조 “노조, 기후위기 대응 나서야”… ‘공감대 형성’ 우선과제 

김진억 국장은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대해  “(그린뉴딜은) 큰 방향과 워딩만 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내용이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이미정 기자
김진억 국장은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에 대해  “(그린뉴딜은) 큰 방향과 워딩만 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내용이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이미정 기자

대안적 노동운동을 모색해온 희망연대노조는 그간 생태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다만 기후위기 문제를 주요 의제로까지는 다루진 못해왔다고 김진억 국장은 설명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이 높다고 판단한 희망연대노조는 올해부터 다양한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김진억 국장은 “지난 6월 18일 노동계 인사 및 청년 활동가와 함께 기후변화 위기 문제를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집담회를 처음 개최했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노조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설명했다. 이날 집담회에선 “개인들의 작은 실천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걸맞은 대담한 행동이 필요하다”, “친환경적인 숨겨진 일자리의 노동을 발견하고 노동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힘써보자”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노동계에선 그간 기후위기 의제에 큰 관심을 보내진 않아왔다. 노동계의 주요 투쟁은 임금 및 처우 개선에 집중돼 왔다. ‘기후변화’ 이슈에 따라 고용상황이 변할 수 있는 에너지 분야 쪽을 제외한 다른 노조 일각에선 관심 밖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기후변화 위기감이 고조되고, 정부가 저탄소 경제구조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노동계의 시각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올해 민주노총 내에선 기후위기대응네트워크가 꾸려졌다.

희망연대노조는 각 상급 노동단체 지도부 인사와 환경 및 청년활동가 등과 함께 의견을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며,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서광순 희망연대노조 딜라이브지부 사회연대위원회 위원장은 “우선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후변화가 노동구조와 우리 일상에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노조가 왜 이런 문제를 대응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하고 어떻게 설득할지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 정부 ‘그린뉴딜’에 없는 정의로운 전환 

희망연대노조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재편 변화가 ‘정의로운 전환’의 관점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산업재편 속에서 노동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희생이나 지역사회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및 양질의 대체 일자리를 제공하고 재정적 지원을 보장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일컫는 개념이다. 

김 국장은 정부가 최근 발표한 ‘그린뉴딜’ 정책엔 이 같은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가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드러냈다. 

김 국장은 “(그린뉴딜은) 큰 방향과 워딩만 있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내용이 부실하다고 본다”며 “산업 재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고용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엔 항후 새로운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이 없거나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좋은 편”이라며 “반면 친환경 분야와 관련된 노동자들의 여건은 생각만큼 좋지 못하다. 예를 들어, 태양광 설치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들이다. 친환경 분야의 근로자들의 여건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고용 전환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의 대책만 바라보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희망연대노조의 생각이다. 희망연대노조의 노동조합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실천과제를 발굴하고 사측과의 협의를 통해 녹색사업장 만들기에 앞장서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이를 위해 희망연대노조의 산하 지부의 임단협에 기후변화 의제를 포함시키는 이른바 ‘녹색단협’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김 국장은 전했다. 

김 국장은 “저희 노조는 케이블·통신 분야 지부가 중심”이라며 “케이블·통신 분야는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의 차지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에너지 관련 분야에 비교하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 사업장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비대면 확산으로 통신 분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산업이 확대될 시, 2040년이 되면 통신 분야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3% 차지할 수 있다는 자료도 봤다. 이에 케이블·통신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해야 하는 사업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통신 분야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 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 녹색단협으로 만들어진 녹색사업장을 꿈꾸다 

이에 김 국장은 사측이 녹색사업장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조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봤다. 다만 세부적인 실천 과제들은 사측과의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점쳤다. 김 국장과 서광순 위원장은 설치 기사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하거나 셋톱박스 대기전력을 효율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희망연대노조의 활동을 지지하며 조합원들의 작은 실천도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br>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희망연대노조의 활동을 지지하며 조합원들의 작은 실천도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인식을 제고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조합원들이 작은 실천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케이블 셋톱박스의 전원을 사용하지 않을 때, 꺼놓으면 전력 소비를 많이 줄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며 “설치 기사들이 각 고객 가정에 방문했을 때, 이런 부분을 얘기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합원 스스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전력 소비 감소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희망연대노조는 강의 및 집담회, 간담회 등을 통해 노동계 및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 등 에너지 사업장 현장을 현장 방문하고 생태 투쟁 현장을 찾을 계획도 세웠다. 김 국장은 “우선 녹색단협은 의견 수렴을 통해 연말까지 논의한 뒤, 내년 추진할 계획을 세운 상태”며 “이런 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선 다양한 사례 연구와 학습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의 이 같은 움직임은 향후 노동계의 기후변화의 대응에 있어서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을 전망이다. 오지혁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는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노동계에서 자발적인 대응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오지혁 활동가는 <시사위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산업 재편 및 고용 전환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다르다보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엔 일자리 창출 얘기만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로운 전환을 이룰 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노조와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공론의 장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 일각에선 이런 문제에 대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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