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다가 미국 공상과학소설(SF)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1920~2010)의 단편 ‘안개 고동(The fog horn)’을 생각했다. 인가와 멀리 떨어진 황량한 바닷가 바위 꼭대기에 서 있는 외딴 등대를 바다 저 깊은 곳에서 떠오른,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거대한 괴수(怪獸)가 덮쳐 부수어버린다는 내용이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이 소설이 생각난 것은 코로나로 나가고 만나는 게 차단되고 금지된 이후 여기 드나드는 횟수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부지런히 나를 띄워 보내고, 다른 이들이 보낸 것에 받았다는 신호를 보낸다. 내가 보낸 것에도 받았다는 신호가 온다. 수억의 존재들이 저마다 신호를 주고받는 이 바다에서 나는 일 년 내내 하루 24시간 바람소리 거센 외딴 바위언덕 위, 외로운 안개 고동을 울리고 있는 등대인 것 같기도 하고, 그 고동소리를 듣고 몸을 뒤트는 심연 속 괴수 같기도 하다.

괴수가 덮치지만 공포물은 아니다.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다. 깊은 바다, 그 아득한 심연에 백만 년 이상 묻혀 있던 비애가, 브래드버리의 필명을 떨쳐준 섬세하고 아름다운 서정적 문장을 타고 번져나가는 소설이다.

괴수의 정체는 모른다. 지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인 공룡의 마지막 남은 후손으로 짐작된다. 연중 해무(海霧)가 가장 심한 11월 밤에는 등대에서는 안개 고동이 울린다. 캄캄한 바다 위 홀로 있는 배들을 안내하기 위한 붉은색, 하얀색, 붉은색 불빛이 안개에 막혀 배에 닿지 못할 경우 15초에 한 번씩 안개 고동 소리로 위험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낮고 우렁찬 그 고동소리는 “모든 시간과 존재하던 모든 안개와 같은” 소리다. “밤새 텅 비어 있는 침대 옆자리” 같고, “문을 열었을 때 텅 비어 있는 집과 같은 목소리”다. “가을이 되어 이파리가 전부 떨어져 버린 나무” 같고 “11월의 바람과 차가운 돌투성이 해안에 와서 부딪히는 바다 같은 목소리”다.

괴수는 “너무 외로워서 그 누구도 지나치지 못할 목소리, 듣는 모두가 영혼으로 울게 할 목소리,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영겁의 슬픔과 삶의 덧없음을 깨닫게 되는 목소리”를 듣고 바다의 맨 아래 바닥, 깊이 30킬로미터의 심연에서 올라온다. “온갖 차가움과 어둠과 깊이를 간직한” 그 심연에서, “자신과 같은 모습의 존재가 수천 마리 있는 세계의 바다를 꿈꾸면서 백만 년보다 더 오래도록 잠들고 있던” 괴수는 인간이 세운 등대에서 울리는 안개 고동 소리가 “동족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놈의 목소리”일 것으로 생각하고 바다 위로 몸을 드러낸다.

레이 브래드버리와 ‘안개 고동’ 표지 / 정숭호 제공
레이 브래드버리와 ‘안개 고동’ 표지 / 정숭호 제공

“차가운 바다의 수면을 뚫고 머리가, 짙은 피부색의 커다란 머리가, 커다란 목이 올라왔다. 그 뒤로는 … 몸이 아니라 계속 목이 이어졌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검은색 목에 얹힌 머리는 수면 위로 12미터에 이를 때까지 계속 솟아올랐다.” 괴수는 바다 위로 올라오면서 길게 위로 솟은 등대를 보고 운다. 너무 고통스럽고 고독해서 등대지기의 머리와 몸을 떨리게 하는 소리였다. “안개 고동과 괴수가 서로 운다. 눈동자에 비치는 안개등 불빛으로 괴물의 눈이 불과 얼음, 불과 얼음처럼 빛났다.” 거대한 몸체를 드러낸 괴수는 긴 목이 자기를 닮은 등대를 껴안는다. 큰 눈으로 아래 위를 훑어본다.

괴수는, 그러나, 백만 년 만에 만난 동족이 살아 있지 않은, 숨 쉬지 않는, 뻣뻣하고 딱딱한 등대일 뿐임을 알고 큰 몸으로 등대를 흔든다. 등대는 부서지고 괴물은 다시 심연으로 들어간다. “항상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지.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걸 파괴해 버리고 싶어지지. 더 이상 자신에게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말이야.”

페이스북에서 내 것과 파장이 비슷한 신호를 포착하고는 껴안으려다가 가까이 다가온 파장의 주인공의 모양과 온도와 숨소리와 냄새가 내 것과 너무나 달라 몸을 움츠리고 다시 나의 동굴, 나의 심연으로 돌아간다. 나의 안테나, 더듬이, 나의 돌기를 바짝 세워 새로운 신호를 보내고 새로운 신호를 수색한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처소에서 웅크린 채 신호를 보내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백만 년까지는 안 기다려도 되겠지.
 

*인용한 브래드버리의 글은 조근호 씨가 번역한 ‘레이 브래드버리’(현대문학사)에서 옮겨왔습니다.
 

**브래드버리와 동시대에 활약한 영국 SF작가 아더 클라크(1917~2008)의 ‘오디세이 2010’에도 심연에서 깊이 잠자던 거대한 괴수를 모르고 깨운 인간이 파멸하는 모습이 있더군요. 목성으로 향하던 중국 우주선 첸호가 물을 구하려고 목성의 위성으로 얼음에 뒤덮인 에우로파에 기착합니다. 작업을 위해 첸호가 작은 전등을 켜자 수억 년 동안 어둠이 지배해온 에우로파의 얼음 덮인 심연에서 거대한 괴수가 그 불빛을 향해 순식간에 돌진해옵니다. 그 괴수는 에우로파의 어둠 속에서 억겁의 시간 동안 밝고 따뜻한 불빛을 기다려왔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부서진 우주선에서 누구든 들으라고 자신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아 우주로 쏘아 보내는 중국 우주인의 절박한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페이스북을 바다가 아니라 ‘냇물’에 비유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동요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에 나오는 냇물 말입니다.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리는 건 안개 고동을 울리는 게 아니라, 작고 예쁜 돌을 던지고, 돌이 만드는 동심원이 건너편에 닿도록 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바다 속 괴물의 화를 돋우는 것보다는 작은 물결이 누나의 손목을 간지르도록 하는 게 더 좋지요.
 

****즐거운 하루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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