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권에서 보름달은 행복과 행운, 풍요의 상징이다. 하지만 서양과 북미권에서는 보름달이  ‘공포’와 ‘광기’를 상징하는 불길한 존재로 해석된다. 어째서일까/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리나라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름달에 토끼가 산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듯하다. 옥색빛을 띤 예쁜 토끼가 보름달에서 절구에 찰떡을 찧는 이야기말이다. 어린 시절 기자도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은 뒤엔 보름달의 토끼와 만나 함께 노는 상상을 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보름달은 행복한 동심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또한 보름달은 어른들에게 있어서는 가정의 화목과 풍요, 행운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가 추석이 되면 보름달을 보며 온가족이 남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며 소원을 빌곤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우리에겐 행복과 안녕의 상징인 보름달이 서양에서는 ‘공포’와 ‘광기’를 상징하는 불길한 존재였다는 것이다. 왜 과거 서양에선 아름다운 보름달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을까.

서양인들의 보름달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문화콘텐츠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늑대인간으로 보름달이 떠오르면 멀쩡하던 사람이 늑대인간으로 변신한다는 전설이다./ 픽사베이

◇ “늑대인간부터 할로윈까지”… 어두운 기운 상징한 ‘보름달’

사실 과거 동·서양 문화권에서는 공통적으로 보름달이 ‘신기(神奇)’어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보름달의 신비한 힘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믿던 동양문화권과 달리 서양 문화권에서는 보름달의 에너지가 사악하다고 믿었다. 때문에 서양의 마녀(우리나라로 치면 무당)들은 태양은 ‘밝은 기운’, 달은 ‘어두운 기운’이라 여겨 어두운 기운이 가장 강한 보름달에 저주와 흑마술을 행했다는 전설이 있다.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는 보름달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문화콘텐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영미권의 공포영화를 보거나 공포문학작품을 읽다보면 보름달을 배경으로 희생자를 찾아 헤매는 뱀파이어(흡혈귀), 늑대인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평소엔 멀쩡한 사람이 보름달이 떠오르면 변신한다는 늑대인간의 설정은 현재도 영화와 문학에서 아주 자주 등장한다. 1981년 미국의 존 랜디스 감독이 제작한 공포영화 ‘런던의 늑대인간’에서 이 같은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보름달은 서양에서 어두운 기운을 불어넣는 존재로 여겨졌다.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500년경 고대 켈트족이 죽음과 유령을 환영하며 벌이던 축제로 잘 알려진 '할로윈' 축제가 보름달이 뜨는 10월 31일인 것이 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픽사베이

보름달의 기운을 받아 구천을 떠도는 죽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미신이나 악령, 마녀들이 활개치며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전설도 있다. 우리에게 유령과 함께 보내는 해외 명절로 잘 알려진 ‘할로윈’이 대표적인 예다. 

할로윈은 기원전 500년경 고대 켈트족이 죽음과 유령을 환영하며 벌이던 축제 ‘삼하인(Samhain)’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날짜가 보름달이 환하게 뜨는 양력 10월 31일이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켈트족이 달의 기운이 가장 강력해지는 보름달이 뜨는 때에 맞춰 삼하인 축제를 벌인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로윈과 보름달의 관계는 그로테스크의 황제로 불리는 팀 버튼 감독이 제작한 스톱모션에니메이션 ‘크리스마스악몽’에서도 등장한다.

영화의 유명한 OST ‘This is Halloween’에서는 ‘우기부기’라는 악령이 ‘나는 달빛에 비춰지는 그림자, 너의 꿈을 공포로 가득 채운다’는 가사를 부른다.

아울러 지구에서 보는 보름달이 평소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슈퍼문(Super moon)’ 현상이 발생하면 쓰나미, 지진, 화산 등 천재지변이 발생한다는 도시전설도 존재한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 조석을 일으키는 힘인 ‘기조력’이 강해지면서 쓰나미와 지진 발생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하지만 전문가들은 “슈퍼문이 발생한다 해도 평소보다 해수면 높이가 살짝 높아지는 정도에 그칠 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 보름달, ‘광기’를 부른다는 의미도… 다만 ‘과학적’ 근거는 부족

보름달의 사악한 기운은 악한 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광기(狂氣)’를 불러일으킨다는 미신도 존재했다. 이는 ‘달’을 뜻하는 라틴어인 ‘루나(Lunar)’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루나라는 단어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뜻하기도 해 아름다운 여성의 이름으로 자주 이용돼 긍정적인 것 같지만, 사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루나에서 파생된 대표 단어인 ‘Lunatic’은 ‘미치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유명 판타지 소설인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몽롱하고 특이한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로 ‘루나 러브굿’이 등장하기도 한다. 영미권에선 루나가 욕설로도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보름달이 떠오를 때 간질이나 이유 불명의 발작, 광견병에 걸린 개들의 공격성이 강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달의 인력이 인간이나 동물의 뇌파에 영향을 줘 정신분열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범죄율도 보름달이 떴을 때 더 많이 나타난다는 소문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연구진이 1988~2009년 사이 사자가 사람을 공격한 사건을 분석한 결과, 보름달이 이울기 시작한 다음날부터 5일간 공격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보름달이 뜰때 광기나 발작,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대  마론 도시관리연구소 베타고브팀의 연구에 따르면  범죄나 사고 발생과 보름달 사이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름달과 광기나 발작과 연관됐다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4년 미국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교의 신경외과 부교수 셀림 R. 벤바디스 박사는 “3년간 발작 증세가 있는 환자 770명을 대상으로 달의 모양이 변하는 주기를 관찰했으나, 보름달에 간진환자들의 발작이 특별히 증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벤바디스 박사는 “정확한 상관관계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간질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작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보름달이 뜨면 증세가 현저히 증가했다”며 보름달이 완전히 발작과 무관하진 않은 것으로 봤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속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뉴욕대  마론 도시관리연구소 베타고브팀은 지난해 10월 31일 미국, 멕시코, 호주 3개국을 대상으로 ‘달 효과’(lunar effect)를 분석한 결과, 범죄나 사고 발생과 보름달 사이에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보름달이 뜬 날 응급구조나 범죄신고 전화는 547건이었고, 보름달이 뜨지 않은날은 524건이라 거의 차이가 없어 통계적으로 무의미하다”며 “오히려 캘리포니아 발레이오시에서는 보름달이 뜬 날에 범죄율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 ‘레드문’ 등 보름달과 관련된 현상, 신화 등 종교적 이유로 불길한 존재로 낙인

그렇다면 서양과 북미권에서 보름달이 부정적인 존재로 각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유래가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블루문’‘레드문’ 등 보름달의 특이한 현상이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에 대해선 종교적 이유와 관련된 몇가지 가설들이 존재한다.

먼저 서양에서 대표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깊은 ‘블루문(Blue moon)’은 ‘파란색 달’을 뜻하는 것이 아닌 보름달이 한 달에 두 번 뜨는 현상을 일컫는 말인데, 블루문이라는 이름은 ‘배신’을 뜻하는 고어(苦語: 과거에 사용된 언어)인 ‘Belewe’에서 유래됐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블루문은 정상적이라면 한 달에 한 번 떠야할 보름달이 두 번을 뜬 현상이므로 신, 혹은 자연의 질서를 배신한다는 의미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블루문과 마찬가지로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는 ‘레드문(Red moon: 붉은 달)’은 정말 ‘붉은 색’의 달을 의미한다. 레드문은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는 개기 월식 때 붉게 보이는 달을 의미하는데, 지구 대기에 의해 파장이 짧은 푸른 달빛이 산란이 일어나고, 파장이 긴 붉은 빛만 달에 반사돼 보인다.

블러드문(Blood moon: 핏빛 달)이라고도 불리는 '레드문(붉은 달)'은 서양문화권에서 가장 불길한 보름달로 여겨졌다. 이는 고대 그리스신화부터 성경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배경에 의한 것으로 풀이된다./ 픽사베이

특히 레드문은 블러드문(Blood moon: 핏빛 달)이라고도 불리며 ‘가장 불길한 보름달’이라고 여겨졌다. 실제로 서양에서는 레드문이 떴을 때 늑대인간에 물리면 물린 사람도 늑대인간으로 변하고 치료약도 없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2011년 개봉한 판타지 스릴러 ‘레드라이딩후드’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레드문의 부정적 인식은 고대 신화와 성경 등에서 유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마법과 주술의 여신인 ‘헤카테(Hecate)’가 붉은 달이 뜨면 저승의 개들을 이끌고 나타나 지상에 저주를 퍼뜨리고, 지옥으로 사람들을 끌고간다고 믿었다.

서양 문화권이 가톨릭과 기독교를 중심으로 발전한 것도 레드문을 흉조로 여긴 이유 중 하나로 예상된다. 요한복음서 다음에 나오는 성서인 ‘사도행전’의 2장 19절과 20절을 살펴보면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해 어두워지고 달이 변해 피가 되리라’라며 세상의 종말을 묘사한 구절이 있다.

이밖에도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던 동로마제국이 붉은 달이 떠오른지 5일 후 오스만 터키군대에 함락당하기까지 하면서 레드문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이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보름달을 바라볼때는 역사적 배경, 신화 등의 차이로 각 나라마다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겠지만, 모두가 행복해야 할 추석엔 밝게 빛나는 보름달을 불길한 흉조로 보는 서양의 시각보단 ‘길조’로 여겼던 우리나라의 관점으로 보고싶은 건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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