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락사 논쟁도 불거졌다./게티이미지뱅크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안락사 논쟁도 불거졌다./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온갖 불평등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운명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이 세상에 살아있는 생명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최근 ‘웰다잉(Well Dying)’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을 의미하는 웰다잉은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웰다잉법’ 혹은 ‘존엄사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도 지난 2016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시행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며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됐다.

최근 ‘웰다잉’과 ‘존엄사’가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안락사 허용 논쟁도 함께 불거졌다. 존엄사란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가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는 것을 의미한다.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그 방식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 적극적인 수단이 사용되고,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연장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 존엄사를 분류하자면 소극적 안락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존엄사법으로 불리우는 연명의료결정법 도입 논의 과정에서 종교계는 사실상의 안락사라며 강하게 반대했었다.

◇ 금기시돼왔던 안락사 수면 위로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는 물론이고 안락사는 오랫동안 금기시 돼왔다. 죽음을 논하는 것 자체에 보수적이었다. 이는 뿌리 깊은 유교의 효 정신과 인간의 생명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종교계의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안락사 문제는 자살을 부추긴다거나 생명을 경시한다는 비판도 불러왔다.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한 환자의 가족이 담당 의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퇴원시켰다가 사망한 경우나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살인죄로 기소된 사건을 언론의 사회면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또 오랫동안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간병해오던 가족 중 한 사람이 환자와 함께 ‘동반 자살’을 선택하거나 ‘간병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도 수없이 접해왔다.

지난 2004년 제작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미국 영화가 개봉됐을 때 국내에서도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영화가 안락사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을 불태우던 주인공 매기는 권투 경기에서 상대편 선수의 반칙으로 일격을 당해 경추뼈가 골절 되면서 목 아래가 모두 마비돼 숨만 쉴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매기의 부탁으로 코치인 프랭키는 주사 바늘을 준비해 병원으로 가고 매기가 서서히 숨을 거두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안락사 논쟁을 불러왔고 온 몸이 마비된 상황에서 평생 침상에서 누워 생명을 지탱해 가는 삶이 죽음 보다 의미가 있는 삶인가에 대한 고민을 모두에게 던져줬다.

최근에는 한국인이 스위스에서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락사 합법화 논쟁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졌다. 의사가 약물을 투여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가 적극적 안락사다. 일종의 안락사인 조력자살은 의료진이 제공한 약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의미한다.

지난해 3월 일부 언론에는 한국인이 2016년과 2018년 각 1명씩 모두 2명이 안락사를 돕는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조력자살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주와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서는 합법화돼 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 캐나다, 콜롬비아, 포르투갈 등 7개 국가에서 허용되고 있다.

지난 2009년 7월 8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천주교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가 질의응답시간을 가지고 있다.당시 존엄사법 제정 문제는 종교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뉴시스
지난 2009년 7월 8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가운데 천주교생명윤리위원회 총무 이동익 신부가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당시 존엄사법 제정 문제는 종교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뉴시스

◇ ‘안락사 허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우리나라에서 현재 안락사나 조력자살은 불법이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가능하다.

우리는 안락사 허용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우리 국민의 80%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신문과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리서치 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2월 13~14일 실시한 여론조사(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는 ±3.1% 포인트) 결과, 80.7%가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 허용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반대는 11.4%, 잘 모름은 7.9%였다.

안락사 허용을 찬성하는 이유로는 ‘죽음 선택도 인간의 권리’(52.0%), ‘병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기 때문’(34.9%) 등으로 답했다.

안락사를 허용할 환자의 상태로는 진통제로 고통을 막을 수 없을 때 '48.5%', 식물인간 상태 '22.4%', 의사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 '12.2%', 스스로 거동이 불가능할 때 '11.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안락사 허용 문제는 윤리, 종교, 의학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사안이다. 안락사 남용 소지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 때문에 안락사 논의는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신중론을 견지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지난 2009년 처음으로 존엄사법을 발의했던 의사 출신 신상진 국민의힘 전 의원은 2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과거 존엄사법 제정 문제를 놓고도 몇 년에 걸쳐서 어려웠다”며 “그런데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락사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은 만큼 시간을 갖고 의견이 어떤지 충분히 들어봐야 하는 문제다”고 밝혔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존엄사법이라고 하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환경도 아직 안 갖춰진 상태에서 안락사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사회적으로 환자 중심의 연명의료 결정 환경이 갖춰지고, 남용의 소지가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될 때쯤 안락사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중론과 함께 불치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과 가족의 불치병을 간병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간병자살, 동반자살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고려, 이를 개인의 문제로 떠맡길 것이 아니라 전 사회가 적극적으로 안락사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장선일 전주대학교 교수는 지난달 14일 한 언론에 ‘적극적 안락사 논의가 필요할 때’라는 제목의 기고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지속으로 약물이나 자가 호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기계에 의존되어 연명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부터 우리는 말기암과 불치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당사자나 가족 및 친지들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상황에 이르기까지 심각하게 고려하여 진정으로 선하고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하여 심층적 논의가 필요할 때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