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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와 독서
[코로나 시대와 독서③] 20세기 ‘페스트’와 21세기 '코로나'가 전하는 이야기
2020. 09. 30 by 서예진 기자 syj.0210@sisaweek.com

해가 짧아지고 계절이 바뀌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문구가 어울리는 날씨가 다가왔다. 문화체육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들도 9월은 ‘독서의 달’로 지정하고 관련 행사를 통해 책읽기를 장려해왔다. 그러나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인해 ‘독서의 계절’도 다른 모습을 맞은 듯하다. 코로나 속에서 비대면 독서 행사가 생겨났고, 도서출판업계는 격변을 앞두고 있다. 또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책읽기에 집중하게 된 사람들도 존재했다. <시사위크>는 감염병 시대의 독서문화와 그 여파에 대해 알아보았다. [편집자주]

2020년, 발표된 지 70여년이 지난 소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카뮈가 70여년 후를 내다본 것은 아닐텐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이 소설은 의사 리유가 도시 곳곳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게티이미지뱅크
2020년, 발표된 지 70여년이 지난 소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카뮈가 70여년 후를 내다본 것은 아닐텐데,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이 소설은 의사 리유가 도시 곳곳에서 죽은 쥐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에 확산되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타임(TIME)지가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선정됐을 때 소개글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페스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1947년에 발표된 소설이지만 2020년 현 상황과 너무나도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독서의 달을 맞아 현 코로나 시국을 돌아볼 수 있는 ‘페스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 페스트, 2020년 코로나 시대 모습과 유사

카뮈는 1947년 이 소설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출간 한 달 만에 초판 2만부가 매진되면서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동시대인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이 소설은 1940년대의 어느 해 4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프랑스령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페스트가 창궐하는 상황을 그렸다. 전염병으로 인한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의 인간 군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의사 리유는 자신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이후 도시 곳곳에서 피를 토하며 죽은 쥐들이 목격되고, 페스트에 걸려 사망하는 사람들도 속출하기 시작했다. 화자인 리유는 의사들과 함께 예방조치를 신속히 취해야 한다고 도청에 건의했지만, 지사가 머뭇거리면서 전염병이 도시에 급속히 퍼진다. 결국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가 폐쇄된다. 들어오는 것은 가능해도 도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오랑이라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 되면서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식량 보급 제한과 휘발유 배급제가 실시되고 물가가 폭등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벌어졌고, 여기서도 ‘가짜뉴스’에 휘둘려 알코올이 페스트균을 죽인다는 말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생긴다. 

환자가 늘어나 일손이 부족해지자 리유는 몇몇 사람들과 방역을 위한 민간자원 보건대를 조직한다. 파늘루 신부는 이 모든 게 신의 심판이라고 설교한다. 혼돈스런 세상이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여기며 생기를 되찾는 코타르 같은 인물도 보인다. 사람들은 ‘숫자’에 집착하고, 무더위에도 마스크를 써야한다. 영화산업은 위험해졌다. 무언가 익숙한 풍경이지 않은가. 

보수단체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열린 8·15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마친후 경찰 저지선을 뚫고 사직로에서 청와대로 가는길로 몰려와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뉴시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과 '페스트'가 그리는 1940년대에도 종교의 모습은 비슷하다. 감염병이 신이 내린 시련이라거나 대면 예배를 드려야만 코로나가 없어진다고 주장하고, 일부는 보수 단체와 함께 정부 규탄 집회를 열어 감염의 한 축이 돼 지탄을 받았다. 사진은 보수단체들이 8월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8·15 대규모 집회에 참가한 가운데 집회를 마친후 경찰 저지선을 뚫고 사직로에서 청와대로 가는 길로 몰려와 경찰들과 대치하는 모습. /뉴시스

◇ 2020년, ‘페스트’는 어째서 화제를 모았나

‘페스트’는 이미 고전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대중이 다시 찾는 책이 됐다. 교보문고는 지난 4월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카뮈를 ‘올해의 아이콘’으로 선정했고, 서점가에서는 ‘페스트’가 올해 2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카뮈가 70여년 뒤를 예견이라도 한 듯, 등장인물의 행동이 지금 우리의 행동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몇 명인지 뉴스로 접한다. 어린아이들도 나갈 때 반드시 마스크를 챙긴다. 정부는 추석 때 이동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있고, 공연예술계는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주저하게 되고, 사람 많은 곳은 피하게 됐다. 의사 리유와 타루 등이 조직한 보건대는 올해 초 대구·경북지역에 자발적으로 의료 봉사를 간 의료진을 떠올리게 한다. 

또 각종 가짜뉴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진단조사를 조작할 수 있다’, ‘면역력이 강하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 ‘알코올 섭취로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 ‘구리함유 버튼은 바이러스를 100% 예방한다’ 등 무지로 인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가짜뉴스가 종종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페스트’에 등장하는 종교의 모습도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파늘루 신부가 ‘모든 것은 신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2020년의 일부 개신교 목사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지옥간다. 신은 전염병을 해결할 수 있다. 예배를 드려야 코로나가 없어진다’라는 주장을 하며 정부의 방역 조치를 따르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도들은 대규모 집회에 참여해 감염의 한 축이 돼 지탄을 받았다.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앞둔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여러 인간군상을 제시했고, 가장 바람직한 유형은 의사 리유와 같이 '묵묵히 반항하는' 유형임을 드러냈다. 의료행위를 한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기력과 도피 대신 반항을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4일 오전 서울 송파구보건소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앞둔 어린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 감염병 시대를 대처하는 바람직한 시민의 모습은?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여러 인간군상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감염병 시대에 시민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첫 번째는 리유처럼 묵묵히 페스트와 싸우는, 반항하는 형태의 인간이다.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정은경 청장을 소개할 때 인용했던 문구가 바로 이것이다. 이 문구야 말로 감염병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보여준다.

두 번째는 파늘루 신부와 같이, 이 사태의 원인을 초월적 존재로 돌리는 유형이다. 카뮈는 그를 통해 종교에 기대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인간상을 비판적으로 제기했다. 마지막으로는 현실 도피를 하는 유형이다. 이 도피형은 오랑이라는 도시에 잠깐 왔다가 발이 묶여버린 신문기자 랑베르를 통해 나타난다. 랑베르는 오랑에 퍼진 페스트와 ‘다른 고장에서 온’ 자신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소설 속에서 카뮈는 리외·타루와 같이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와 싸운 이들이 옳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리외가 보건대 조직을 결심한 것은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이 생각이 가능하려면 페스트와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귀결된 것이다.

다만 감염병과 맞서 싸우는 방법이 병원 및 선별진료소에서 하는 의료행위 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민들의 자체 생활 방역, 성금 및 구호의 손길, 그리고 비상 시국에 처리해야 할 행정 업무가 늘어난 일선 공무원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의 모습은 어떨까. 사람들이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밖으로 나가 마음껏 어울릴 수 있을까. 코로나 사태 속에서 발생한 많은 부조리와 모순은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는 이런 감염병이 창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안심할 수 있을까. 많은 질문이 생각났지만, ‘페스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