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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남북관계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남북관계서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 승인 2020.09.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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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비상 방역‘이란 터널로 들어온 지 벌써 반년을 넘겼다. 사람과의 관계는 멈췄고, 대면 접촉은 피해야 할 금기 사항 중 첫 번째로 꼽히는 힘겨운 상황이 진행 중이다.

개인은 물론 공동체 모두의 피로감과 우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민족 최대의 명절로 꼽히는 추석도 코로나를 피해 가지 못했다. 풍요로움과 넉넉함 속에 가족·친지와 만나고 정을 나누는 예전 모습은 찾기 어렵다. 가요 ‘불효자는 웁니다’를 패러디한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자식과 손주들의 추석 귀향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쩔 도리가 없는 부모님의 아린 마음을 응축한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터진 북한군에 의한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은 가뜩이나 어수선했던 우리 국민의 마음을 헝클어 놓았다. 경위야 어찌 됐던 북측 해역으로 수십 시간 표류 끝에 흘러간 한국민을 구조하기는커녕 총격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상황 전개를 대북 감청과 첩보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던 우리 군과 정부 당국의 대처도 미덥지 못하다. 귀하디귀한 사람 목숨 먼저 구해놓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면 이런 비극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 아프다.

사태가 확산되고 국민의 비난 여론이 들끓자 북한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와 군·정부 당국도 희생된 공무원이 ’월북하려 했다‘거나 북한도 구조하려 했던 정황이 있다는 식의 얘기를 흘리며 뒤늦게 수습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는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고인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생명의 존중이란 절대가치를 우선시하는 생각은 엿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번 사태의 파장을 이런저런 변명이나 거짓으로 모면하려는 속내만 드러난다.

곰곰이 되짚어 보면 우리가 남북관계나 통일 이슈, 대북 정책 등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얼마나 ’사람‘을 앞세우고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는가 하는 성찰을 던지게 된다. 

6.25 전쟁이야 한반도 분단과 냉전 시기 북한 김일성의 맹동주의와 국제 정세의 흐름 등이 결합해 터져버린 동족상잔의 비극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사변이나 도발 사건 등은 사람을 우선시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 인간을 ’공산혁명의 도구‘로 삼는 북한의 만행이야 차치하고라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정부와 군의 조치 과정에서도 적잖은 불미스러움이 자리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조명 받았던 ’실미도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람 경시의 인식과 행동은 최근까지도 우리의 대북정책이나 남북관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차례나 더 만나는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면 못해낼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런 호시절 남북 정상이 우선 관심을 돌리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풀어야 했던 건 대북 투자나 인프라 건설, 한반도 평화 체제나 종전선언 등의 이슈가 아니었다. 바로 사람의 문제였다.

북한에 억류돼 몇 년째 고통 받고 있는 김정욱 선교사를 비롯한 우리 국민 6명의 송환 문제를 제기해 ’통 큰‘ 결단을 얻어냈어야 한다. 판문점에서 평양냉면을 함께 먹으며 남북관계의 청사진을 그리던 시점에 ”억류자를 이번 기회에 풀어주시면 남쪽 국민이 크게 환영하고 남북 정상의 합의에 대한 믿음과 지지도 더욱 굳어질 겁니다“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북한과 비슷한 시기 급진전한 상황을 맞았던 미국의 접근법과 비교해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더욱 또렷해진다.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2018년 5월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에 억류됐던 3명의 미국인의 석방을 요구해 항공편으로 함께 귀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내에까지 들어가 이들을 맞이한 상황을 목도하며 우리 국민은 “우리는 왜 저렇게 하지 못하나”하는 아쉬움과 자괴감을 가져야 했다. 

더욱이 김동철 씨를 비롯한 그 3명의 미국인이 모두 한국계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 씨는 석방 뒤 “미국은 영어도 하지 못하는 날 위해 대통령과 장관이 나섰다”며 한국 정부의 미온적 대처를 비판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추석이나 설 명절이 돼도 남북 이산가족 상봉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한때 ’대북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정부가 공언했던 이산상봉이 실종 상태에 빠진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2018년 8월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이산상봉이 남북 각 100명씩 이뤄졌다. 2015년 10월 제20차 상봉행사 이후 2년 10개월 만의 만남이라 실향민들의 기대는 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 됐다. 지난해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북한은 한국 정부에 화풀이를 해댔다. 미사일 도발이 이어졌고, 급기야 지난 6월에는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백주에 폭파시키는 도발을 벌였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우리를 향해 ”적(敵)은 적일 뿐“이라며 대남관계의 적대정책 전환을 공언했다.  

두고 온 북녘의 가족·친지를 애타게 그리는 실향민들의 마음은 명절 때가 되면 더욱 타들어 간다. 통계수치를 살펴봐도 그 절박성이 드러난다. 올해 들어서만 이산상봉 신청자 가운데 1,300여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숨졌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북녘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올해 사망한 신청자는 1,379명으로 나타났다.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이들은 모두 13만3,386명인데, 이 가운데 생존자는 38.5%(5만1,367명)에 그친다. 나머지 61.5%(8만2,019명)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생존자들도 대부분 고령이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90세 이상이 25.8%, 80대가 39.6%란 통계를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북한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정책을 펼쳐나가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등을 잘 대처 및 관리해 안보위기를 완화해나가고, 우리 사회와 경제의 번영을 꾀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사람보다 앞설 수 없다.  

북한에서 오랜 시간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지금 이 시각도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민의 구원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억류 인사들. 이산의 아픔을 달래며 죽기 전에 두고 온 아들·딸, 배우자와 가족·친지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실향민들. 차가운 바닷물에서 북한군의 총탄 세례를 받으며 생을 마감해야 했던 대한민국의 공무원. 

이들 모두가 ’사람‘보다 이념과 정책의 남북관계를 앞세우려 했던 상황 논리 속에서 버려지거나 잊힌 이들이다. ‘사람이 우선’이란 말로 국민의 선택을 받고, 정책에서 이를 최우선시 하겠다고 공언했던 대통령과 정부에서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움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