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동아시아신경제이니셔티브 이사장)
최민식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동아시아신경제이니셔티브 이사장)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곳곳에서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어졌지만, 병원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파업이 아니라 국가시책인 의사수 증원에 반대해 파업을 일으킨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인력까지 자리를 비운 파업은 유례가 드물다.

환자단체들이 지난 8월부터 주장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발생한 180여건의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단체의 책임있는 행동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디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소위 ‘의권’에만 매달리는 의사집단의 이러한 행동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국민의 생명보다 의사들의 집단이익을 우선했다고 쓸 것이다.

다행히 의정협의체를 합의하고 다소 진정되는 모양이나, 이번 사태의 근본 문제인 의료개혁과제는 더더욱 멈출 수 없는 의제가 되었다. 의료개혁은 국민이 건강한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니 만큼, 국민적 합의로 추진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체계는 건강보험으로 대표된다. 1977년 공적 의료보험의 시작과 1989년 전국민의료보험제도로의 확대, 그리고 2000년 모든 국민이 공정하고 평등한 의료보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통합의료보험 곧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통합의료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출범은 그 자체가 개혁이었다. 통합 이전에는 소득차이가 있는 조합별로 나누어져 형평성 있는 부과와 적정 수준의 급여가 불가능했으나, 통합 일원화를 통해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보장성 강화의 토대를 놓았다. 

나아가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으로 변경한 것은 질병 치료를 넘어 예방 및 건강증진도 중시하는 건강보험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했다. 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의료전달체계의 혁신이 다음 차례의 의료개혁이었다. 대형 종합병원에 편중된 의료전달체계를 국민의 일상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건강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차보건의료체계를 강화하는 새로운 체제로 개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단체의 관행적 반대로 인해 일차보건의료 개혁은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기관과 보건기관(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진료소)은 전체 의료기관의 5.6%에 불과하다. 공공의료 재정 또한 사회보험과 의료보험을 제외하고 중앙정부 예산 중 1.0%에 불과하다. 공공병상이 OECD 국가와 비교하여 10분의 1 수준이다.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은 의료접근성을 약화시키고 의료이용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른바 ‘빅5’ 병원으로 쏠림이 심각하며, 이들 소수 대형 병원과 압도적 다수 병원간의 양극화는 나날이 심화되어왔다. 따라서 공공의료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군・구 ‘지역거점(혁신)형 국립병원’ 확충이나 인구 5만명당 1개소 도시보건지소 건립, 전국민 주치의제도 도입 등이 대안이다. 당연히 보건의료 인력의 대폭 확충이 주어진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심각한 고령화와 국민들의 건강관리 요구의 증대로 인해 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인력 1천명당 의사수는 2.24명 간호인력은 5.94명으로 OECD 평균인 의사수 3.3명 간호인력 9.5명에 비하여 크게 낮은 수준이다. 인구 1만명당 의사수는 OECD 국가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하위 3위에 머물러 있다. 병원서비스(간병인, 간호사, 물리치료사, 운동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등) 고용규모도 OECD 국가의 3분의 1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많은 수의 환자를 돌봄으로 인해, 의료인은 높은 강도의 노동에 시달리며, 그만큼 환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의료전달체계의 개혁이나 의료서비스 개혁을 위한 해법은, 국민건강시대를 향한 보건의료 인력의 확충이 그 시작이다. 의사와 간호사, 병원 서비스 인력의 대폭 확충이 답이고, 나아가 감염의학을 비롯한 기초의과학 연구인력의 확충, 바이오헬스 산업인력의 대폭 확충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국가적인 과제다. 
 
위기의 해일이 다가오고 있다. 1980년대 선진국의 경우처럼, 의료 재정의 문제나 의료서비스 공급의 문제, 의료 자원 배분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대한민국에서도 터져 나올 것이다. 지금 의료개혁에 임하지 않으면, 결국 의료인들이 설 자리도 사라진다. 소위 ‘의권’은 의료인의 올바른 권위로 재탄생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존중받을 의료인의 권위란, 굳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신성한 권위’가 아니고서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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