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이 관객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 ‘국제화 시대’였던 90년대, 삼진그룹은 ‘능력 중심’의 기치 하에 ‘통기 600점을 넘기면 고졸도 대리가 될 수 있다’는 약속과 함께 고졸 사원들을 대상으로 새벽 토익반 강좌를 연다.

실무 능력은 완벽하지만, 주요 업무는 커피 타기와 담배 심부름, 가짜 영수증을 메꾸기 등 잡일만 해오던 입사 8년차 동기 이자영(고아성 분)과 정유나(이솜 분), 심보람(박혜수 분)은 대리가 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인다.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해오던 어느 날, 자영은 잔심부름을 하러 간 공장에서 검은 폐수가 유출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유나, 보람과 함께 회사가 무엇을 감추고자 하는지, 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 세 친구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1995년 입사 8년차, 업무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말단, 회사 토익반을 같이 듣는 세 친구가 힘을 합쳐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영화 ‘도리화가’(2015)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롯데엔터테인먼트
여성들의 연대를 그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90년대 기업들이 토익점수를 내걸고 고졸 사원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사실과 90년대 초 실제 일어났던 페놀 방류사건까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

실화를 그대로 재현한 영화는 아니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을 베이스로 한 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말단 여직원들의 회사 생활과 페놀 방류 사건, 내부 고발까지 여러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돼 몰입도를 높인다.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경쾌하다. 충분한 보상과 주목도 받을 수 없고, 때로는 억울한 상황에 놓이기도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고졸 말단 사원들의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 웃음과 감동을 안긴다.

영화는 비록 작은 존재였던 이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한다는 ‘권선징악’의 결말을 맞는다. 예측 가능한 뻔한 엔딩에도 뭉클하고, 알면서도 통쾌한 이유는 지금보다 더 사회적으로 차별에 노출됐던 90년대 여성들이 ‘유리천장’을 깨고 연대하며 나아가는 모습을 어떠한 비장함도, 허세도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덕이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극을 풍성하게 채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배우들. /롯데엔터테인먼트
각기 다른 매력으로 극을 풍성하게 채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배우들. /롯데엔터테인먼트

멋과 자유를 구가했던, 90년대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점도 색다른 볼거리다. 90년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유니폼과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등 레트로 감성으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내, 다채로운 볼거리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신나는 디스코 음악까지 더해져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고아성은 겉으론 평범해 보이지만, 모두가 말리는 싸움을 용감하게 시작하고 완주하는 자영을 누구보다 매력적으로 완성해냈다. 이솜도 겉으론 까칠하지만, 속은 따뜻한 유나로 완전히 분해 당당한 매력을 뽐내고, 회계부 사원 보람을 연기한 박보람도 제 몫을 다한다.

주인공 외에도, 실력파 배우들이 각기 다른 개성으로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생산관리3부 과장 홍수철 역의 이성욱부터 생산관리3부 대리 최동수로 분한 조현철, 마케팅부 부장 반은경을 연기한 배해선, 전략기획실 사원 송소라 역의 이주영, 오태영 상무로 분한 백현진까지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다. 토익반 미국인 강사 제리 역으로 깜짝 등장한 타일러 라쉬의 활약도 반갑다.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빛나는 건 회계부 부장 봉현철 역의 김종수다. 직장 후배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상사의 모습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참된 어른의 얼굴까지 따뜻하게 표현해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그의 마지막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러닝타임 110분, 10월 중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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