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바가지·폭언 등 ‘갑질’ 난무에 등돌린 소비자들
RTX 3080 대란으로 치명타 입었지만 "자업자득" 반응만

20년전만해도 용산전자상가는 우리나라 IT산업의 중심이었다.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IT직종 종사자들은 용산전자상가에 방문에 다양한 소프트웨어, 컴퓨터 부품, 전자제품 등을 구매했다. 하지만 용산전자는 현재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어째서일까./ 뉴시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용산전자상가는 우리나라 IT산업의 ‘메카’였다. 최신형 컴퓨터와 전자기기, 전자부품, 게임CD 등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으며, 당시 구하기 어려웠던 해외 제품들도 암암리에 거래가 되곤 했다. 때문에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IT직종 종사자들까지도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해 항상 문전성시를 이루곤 했다.

안타깝게도 이제 용산전자상가는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손님들의 발길은 크게 줄었고, 문을 닫는 매장들도 부지기수다. 20년전이라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모습이다. 용산전자상가는 어째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 누리꾼들 “용산전자는 믿고 거르는 곳”… 몇몇 악덕 판매업자들에 신뢰도 '바닥'

용산전자상가의 몰락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유통구조의 변화가 있다. 과거엔 전자기기나 컴퓨터 용품을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으나, 이젠 온라인 주문을 통해 최신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용산전자상가에서만 찾을 수 있던 희귀 제품도 아마존 등 해외 쇼핑사이트를 통한 해외직구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단순히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유통과정의 변화 때문이라고 보기엔 일반 대형마트 등 유통매장은 여전히 영업에 큰 문제가 없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온라인 홈쇼핑과의 시장 조화를 이루고 있어 상업자체가 무너질 위기는 결코 아니다.

한때 용산전자상가를 이용했던 많은 고객들은 이들의 몰락을 악덕 판매 방식에 따른 ‘자업자득’이라고 보고 있다. 몇몇 악질 판매업자들의 ‘갑질’ 행태가 고조되는 가운데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고객들의 대부분이 떠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스마트폰 구매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IT커뮤니티를 방문하면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안 좋은 상황이다. 커뮤니티에선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을 ‘용팔이(용산+팔이의 합성어, 용산전자상가 상인을 멸시할 때 사용하는 비속어)’라 부르며 비난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리꾼들이 용산전자상가에서 악덕 판매업장을 방문해 피해를 입은 사례는 매우 다양했다. 판매업자들이 제품의 원 가격에 1.5~2배가 넘게 가격을 높여 부르거나, 중고제품을 다시 포장해 새 제품인 척 속이고, 환불 및 교환을 거부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원래 포함돼 있어야 할 이어폰 등의 무료 부속품들은 빼서 따로 가격을 받거나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시엔 협박·폭언 등을 가해 위협한다는 이야기도 찾을 수 있었다. 실제로 용산전자상가의 한 판매업자가 고객에게 폭언을 가한 것은 2007년 KBS뉴스의 보도에도 등장한 바 있다. 당시 판매업자는 손님으로 위장하고 들어간 KBS 취재기자에게 “손님 맞을래요?”라고 하는 희대의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누리꾼들은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해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구매할 경우, 사전정보가 없으면 100% 바가지를 쓸 수 있다”며 “인터넷 사이트나 온라인쇼핑몰 등에서 가격을 알아본 뒤, 전자제품에 대해 잘 아는 지인과 함께 가는 것을 추전한다”고 말할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용산전자상가의 몰락 이유로 '악덕 판매업자'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이들은 제품의 원 가격에 1.5~2배가 넘게 가격을 높여 부르고, 중고제품을 다시 포장해 새 제품인 척 속이거나 환불 및 교환을 거부하기도 해 소비자들의 비난이 들끓고 있다. 사진은 한 용산전자상가 판매업자가 중고 게임기를 새박스에 포장하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미꾸라지 한 마리가 연못 흐려”… ‘IT산업 메카 용산’, 쇠퇴의 길로 

용산전자상가가 ‘악덕 판매업자들의 메카’로 변질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1968년 개장한 ‘세운상가’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최초 주상복합타운인 세운상가는 80년대 초 오락실 사업의 성황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전자제품유통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비디오게임과 컴퓨터 게임의 인기가 급증하자 ‘해적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복제·판매되는 서적·테이프·소프트웨어)’ 게임의 판매가 급증하면서 많은 업자들이 불법으로 소프트웨어를 들여왔다. 이 과정에서 몇몇 판매업자들은 조직폭력배들과 연계된 사업을 벌이며 강매, 위협 등의 불법 행위까지 동반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용팔이’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이후 1988년 용산전자랜드가 문을 열면서 세운상가에서 용산전자상가로 국내 IT제품의 메카가 이동하게 됐다. 초기엔 정직한 판매업자들이 많아 이용자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세운상가에서 불법 영업을 하던 판매업자들 역시 용산전자상가로 이동했고, 그들의 불법 영업 방식도 고스란히 따라오게 됐다. 

여기에 당시엔 구하기 힘든 컴퓨터나 전자제품, 소프트웨어를 유통하는 곳이 사실상 용산전자상가뿐이었기에 ‘독점효과’까지 발생, 판매업자들의 갑질은 점점 더 심해졌다. 또한 악덕 판매업자들끼리 담합해 정가에 물건을 판매하고자 했던 선량한 판매업자들을 위협하고 상권에서 몰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IT제품의 판매 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위주로 바뀌면서 이용자들의 선택권은 달라졌다. 더 싸고 쉬운 방식으로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데 괜한 위험과 불쾌함을 무릅쓰고 용산전자상가를 방문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결국 오랜 세월 황금기를 보냈던 용산전자상가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실제로 올해 3월 수익형부동산 연구개발기업 상가정보연구소가 한국감정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9년 4분기 용산전자상가의 공실률(업무용 빌딩에서 임대되지 않고 비어있는 채로 있는 사무실이 차지하는 비율)은 11.4%로 서울평균 공실률 8% 보다 3.4%p 높게 조사됐다. 이는 전분기 공실률 9.1% 대비 2.9%p 증가한 수치다. 2018년대 들어 고사양 게임시장이 발전해 그래픽카드와 CPU의 소비가 증가했음에도 상가 10곳 중 1곳은 비어있는 현실이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원은 “과거 용산전자상가 상권은 많은 사람이 찾았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수요자 유입이 감소했다”며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쇼핑몰과의 가격 경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었다”고 용산전자상가 상권을 분석했다.

악덕 판매업자들의 행태에 불만이 높아진 소비자들은 결국 용산전자상가를 떠났고, 이는 용산전자상가의 몰락을 가져왔다.  현재 용산전자상가의 수많은 판매점들이 폐업, 휴업을 하는 상황이다./ 뉴시스

◇ RTX 3080 치명타에도 “자업자득” 등 싸늘한 반응만… 신뢰 되찾을 수 있을까

용산전자상가가 몰락 단계에 접어들자 판매업자들은 2010년대 들어 온라인쇼핑몰로 진출해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 세운상가에서 용산전자상가로 악덕 판매업자들이 이주한 것과 마찬가지로 용산전자상가에 남아있던 일부 악덕 판매업자들도 인터넷 판매 시장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나와’ 등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그래픽 카드, CPU, 메인보드 등의 가격 담합, 가격 조작 등을 일삼고 있다. 양심적으로 판매를 진행하던 판매업자조차 악덕 판매업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2019년 7월 1일 일본정부가 우리나라에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는 ‘한일 무역 분쟁’이 발생했을 당시 악덕판매업자들은 ‘D램 물량이 부족하다’며 직전 주문을 강제로 취소한 뒤, 가격을 훨씬 높여 다시 재판매하는 행위까지 저질렀다. 

이에 삼성전자는 당시 “D램은 국내에 공급할 물량은 충분하며 일본 규제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며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악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온라인에서까지 악덕판매업자들의 악행이 지속되면서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심은 완전히 바닥을 치게 됐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 전체를 흐린 셈이다.

그러던 중 출시된 미국 IT기업 엔디비아의 신제품 그래픽카드 ‘RTX 3080’는 기존의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을 거쳐야했던 유통구조에 큰 균열을 발생시켰다. 지난 9월 17일 엔디비아의 그래픽 카드를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ASUS의 국내 공식유통사 인텍앤컴퍼니가 RTX 3080을 용산전자상가의 도소매업자들에게 넘기지 않고 바로 쿠팡 등 온라인 판매업자들을 통해 직접 판매하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IT신제품이 발매되면 용산전자상가를 통해 다수의 물량이 유통됐다. 이 과정에서 유통이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수십만원 상당의 가격이 오르게 되는 ‘용산 프리미엄’이 붙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통구조가 엔디비아→ASUS→인택앤컴퍼니→온라인쇼핑으로 단순화되면서 RTX 3080은 기존 용산전자상가에서 측정한 가격대인 147만원이 아닌, 99만원대에 판매가 가능해졌다. 심지어 용산전자상가에서 확보할 RTX 3080물량도 없어 싸게 판매하기도 힘들어진 상황.

용산전자상가 판매업자들은 “소매상인들을 전부 죽이는 조치다. 용산전자상가가 완전히 몰락하면 오히려 제품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누리꾼들은 “그동안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로 부당한 이득을 챙겨왔고 고객들을 속이는 행위까지 해온 대가”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직 용산전자상가 판매업자였던 컴퓨터 수리업체 운영자도 “이젠 소비자들도 해외직구로 고급 부품들을 구매하는 시대라 용산전자상가도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며 “특히 잃어버린 소비자들의 신뢰를 되찾는게 가장 중요할거라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온라인으로 새 사업 터전을 옮겼음에도 여전한 악성 장삿속으로 인해 또다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용산전자상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악덕판매업자들은 눈 앞의 욕심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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