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일 창신그룹 회장이 해외생산법인을 동원해 자녀 회사를 부당지원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창신INC 홈페이지
정환일 창신그룹 회장이 해외생산법인을 동원해 자녀 회사를 부당지원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창신INC 홈페이지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자신의 자녀가 최대주주로 있는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이를 승계에 활용하려 했던 정환일 창신그룹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철퇴를 맞게 됐다. 중견기업에 대한 감시 강화를 천명했던 공정위가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자, 부정행위에 동원된 해외계열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남긴다.

◇ 해외생산법인 동원한 자녀 회사 지원사격

창신그룹은 유명 신발 브랜드 나이키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으로, 국내 신발제조업계 2위의 입지를 자랑한다. 지난해에는 무려 1조5,488억원의 매출액과 72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창신그룹은 불미스런 내용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공정위로부터 계열사 부당지원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여기엔 자녀를 향한 승계작업도 얽혀있었다.

공정위가 밝힌 전말은 이렇다. 우선, 부당한 방식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것은 서흥이었다. 서흥은 정환일 회장의 자녀가 2004년 5,000만원의 자본금을 들여 설립한 회사다. 

창신그룹은 나이키로부터 위탁받은 제품을 3곳의 해외공장에서 제조한다. 서흥은 이때 신발 제조에 필요한 자재를 국내에서 구매해 해외공장에 공급하는 ‘구매대행’ 역할을 맡았다. 당초 사업부문은 금형제조업이었으나, 2008년부터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는 해외에 제조거점을 둔 국내 주요 신발 OEM 기업들이 자재 구매대행을 본사에서 직접 수행한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창신그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서흥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자, 해외공장 생산법인들이 서흥에 지급하는 자재 구매대행 수수료를 대폭 올리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2013년 6월부터 3년간 서흥에 건네진 과도한 대가는 약 305억원, 정상가격 대비 2.3배에 달했다. 또한 이는 서흥이 이 기간 거둔 영업이익의 44%를 차지했다.

덕분에 유동성에 여유가 생긴 서흥은 2015년 4월 창신그룹의 본사인 창신INC 지분을 대거 매입했고, 2대주주 자리를 꿰찼다. 정환일 회장 자녀 입장에선 서흥을 통해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게 된 셈이었다. 

나아가 창신INC와 서흥이 합병할 경우, 직접적인 지배력 확보도 가능했다. 5,000만원으로 설립한 회사를 통해 별다른 추가자금 없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중견기업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반면, 서흥 지원에 동원된 해외 생산법인들은 이미 완전자본잠식, 영업적자 등 경영상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창신INC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었다.

◇ 해외계열사에도 과징금 부과… “규모와 관계없이 법 집행”

공정위는 이 같은 부당지원으로 서흥의 시장 내 지위가 비정상적으로 강화되고, 잠재적 경쟁사업자의 시장진입이 봉쇄되는 등 공정한 거래질서가 저해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총 385억1,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으며, 창신INC를 고발 조치했다. 특히 부당지원에 동원된 3곳의 해외생산법인에도 총 137억6,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본사의 부당지원 기획·지시에 동원된 해외계열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공정위가 중견기업에 대한 감시 강화를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의 경우 학계, 시민사회 등에서 관심도가 높고 대외 공시내용 등을 통해 기업집단 내·외부의 감시 및 견제가 가능하나, 중견기업집단의 경우 상대적으로 내·외부 감시 및 자정기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그러나 중견기업집단이 높은 지배력을 보이는 시장에서 중견기업집단의 부당지원 등 불공정행위의 공정거래저해성이 대기업집단의 부당지원이 낳는 폐해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기업집단 규모와 관계없는 공정위의 엄정한 법 집행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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