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보증기금의 한 남성 직원이 세 차례나 여성 직원을 성희롱하고도 정직 6개월 처분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기술보증기금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기술보증기금(이하 기보)의 한 남성 직원이 세 차례나 여성 직원을 성희롱하고도 정직 6개월 처분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기보는 해당 남성 직원에 면직 처분을 내렸지만, 내부 성희롱 징계 규정에 발목이 잡혀 징계 수위를 조정하게 됐다.

◇ 성희롱 가해 직원, ‘면직’서 ‘정직 6개월’로… ‘왜’

기보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기술을 평가해 이를 보증해 주는 준정부기관이다. 기보는 국민권익위원회가 주관하는 ‘부패방지 시책평가’에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6년 연속 우수등급을 받았다. 이에 기보는 강력한 윤리경영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최근 기보가 성희롱 사건 처벌과 관련해, 허술한 절차로 규정을 적용했다가 징계 수위를 낮추는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돼 빈축을 사고 있다.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동주 의원이 기보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보는 2018년 3월 직원 A씨가 여성 직원들을 성희롱한 사실을 확인하고 면직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00년과 2013년, 2015년에 여직원을 성희롱한 의혹을 받았다. 기보는 내부 감사를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지난 7월 A씨에 대한 징계 처분이 뒤집혔다. 기보는 A씨에 대한 처분을 ‘정직 6개월’로 재의결했다. 징계 수위가 바뀐 데는 ‘내부 성희롱 징계 규정’이 주요 배경이 됐다. 

면직 처분을 받은 가해 직원 A씨는 2018년 9월 기보의 성희롱 징계 규정 최고 수위가 ‘정직’으로 돼 있다며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내부 규정을 확인하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기보는 지난 3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시 성희롱 징계 규정에 발목 잡혀 패소했다. 결국 기보는 지난 7월 재징계를 의결하게 된 것이다. 이에 A씨는 내년 1월 다시 회사로 복직할 예정이다. 

특히 기보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성희롱 징계 수위를 높이지 않았다가 제 발등을 찍은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6년 12월 기보에 성범죄·음주운전 징계 실효성을 공무원 징계수준으로 신설하거나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성희롱 행위에 대해선 징계 최고 수위를 ‘파면’으로 높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기보는 징계 양형 기준을 보완하지 않았고 결국 이번에 징계 재조정을 벌이는 결과를 마주하게 됐다.

◇ 권익위 “징계 양형 기준 보완 권고” 무시… 제 발등 찍은 기보 

또 기보의 해고 통지 과정에서도 절차상 문제점이 드러났다.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기보는 A씨를 해고할 당시, 구체적인 해고 사유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았고 인사권을 가진 대표이사나 직무대행이 아닌 인사부장의 명의로 ‘징계사유 및 위반규정’ 발송했다. 이에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이 같은 절차상의 미비점을 이유로 해고통지의 효력이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향후 성희롱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 의지에도 물음표를 남겼다. 기보는 지난해 10월 중소벤처기업부 감사가 이뤄진 뒤에야 성희롱 시 최고 징계를 면직으로 개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이동주 의원은 “기술보증기금의 안일한 판단과 규정 미비가 결국 내부 성 비위가 용인되는 조직 분위기를 만든 것”이라며 “피해자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내부 성희롱 재발방지를 위한 엄중한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기보 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징계 규정은 포괄적인 상위 기준과 하위 기준으로 나눠져 있다”며 “하위 기준상 성희롱 관련 내용은 정직이 최고 처분이었지만, 포괄적인 상위 기준상 기관의 명예를 실추시킨 경우에는 면직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해당 사건의 경우, (기관의 명예를 해친) 심각한 문제인 만큼 상위 기준을 적용해 면직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익위의 보완 권고를 따르지 않는 것도 해당 상위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기보의 면직 징계 처벌은 결국 무위로 돌아가게 됐다. 상위 규정을 적용해 면직 처벌을 적용했다는 기보의 주장은 행정소송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기보 측은 “향후 문제의 남성 직원이 복직하더라도 피해 직원과 같이 근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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