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의 이사회 회원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에서는 박정호 사장이 GSMA 이사회 회원자리를 내려놓은 배경을 SK텔레콤의 ‘탈통신’ 기조에서 찾고 있다./ SK텔레콤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이사회 회원 자리를 내려놓기로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1일 SK텔레콤과 통신업계에 따르면 박정호 사장은 GSMA 이사회 회원을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GSMA는 세계 이동통신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글로벌 단체로, 전 세계 750여 개사의 이동통신 관련 사업자, 350여개사의 모바일 관련 업체가 참여하고 있어 통신업계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특히 GSMA 이사회는 글로벌 통신사 최고경영자급 임원을 선임해 구성되는 만큼, 이번 박정호 사장의 연임 거부 배경에 대한 업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꽉 찬’ 통신시장에 새로운 동력 찾는 SK텔레콤

통신업계에서는 박정호 사장이 GSMA이사회 회원자리를 내려놓은 배경을 SK텔레콤의 ‘탈통신’기조에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SK텔레콤의 탈통신 기조는 지금처럼 이동통신사라는 타이틀에 국한되지 않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반을 다루는 ‘뉴 ICT’ 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SK텔레콤과 업계에 따르면 박정호 사장도 GSMA에 “신사업 등에 당분간 주력할 필요가 있어 GSMA 이사회 회원을 연임하지 않겠다. 다만 가급적 우리나라 기업이 자리를 이어받았으면 좋겠다”는 서신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이 이동통신분야에서 더 넓은 ICT 전반을 포괄하려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시장은 사실상 포화상태인 것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대비 이동통신 보급률은 122%를 넘었다. 4G(LTE)의 경우도 가입률이 80%에 이르렀다. 이 같은 시장포화로 통신 신규 가입자들의 증가세는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무선통신분야 1위를 달성한 SK텔레콤 입장에선 이동통신분야에서 더욱 큰 사업 확장과 성장을 도모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것이 SK텔레콤이 5G통신뿐만 아니라 AR·VR(증강현실·가상현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콘텐츠 등 ‘신ICT’ 사업 확장을 가속화하는 이유다.

SK텔레콤의 탈통신 기조 배경에는 우리나라의 이동통신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인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2009년부터 통신사를 넘어 새로운 ICT 기업으로 나아간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뉴시스

물론 SK텔레콤의 이 같은 탈통신 목표는 최근 추진되는 사업 방향이 아니다. SK텔레콤은 지난 2009년 ‘IPE(산업 생산성 증대) 전략’을 발표하며 통신사를 넘어 새로운 ICT 기업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IPE 전략은 SK텔레콤이 보유한 ICT기술과 네트워크를 다른 산업과 결합시켜 신산업 분야를 발굴하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확대한다는 전략이었다. 

이후 SK텔레콤은 여기서 더 나아가 2013년에는 IPE 전략에서 해외 사업 목표치 및 융합사업 전략을 강화한 ‘행복동행’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으며, 2015년엔 △생활가치 플랫폼 △통합미디어 플랫폼 △IoT 서비스 플랫폼을 통해 미래성장을 도모한다는 목표의 ‘플랫폼 비즈니스 기업 전환’ 전략을 선언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박정호 사장이 새로운 CEO로 취임하면서 현재 SK텔레콤이 추진하고 있는 ‘뉴 ICT’ 생태계 전략으로 탈통신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뉴ICT 생태계 전략은 AI와 빅데이터, IoT등 다양한 ICT기술과 서비스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치 생태계를 창출해낸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삼성전자, 엔디비아 등 국내외 IT대기업부터 벤처,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회사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SK텔레콤은 탈통신 기조를 맞추기 위해 사명까지 변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콤(Telecom)’이라는 이름자체에 내포된 통신사의 이미지를 벗고 ICT종합기업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이름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박정호 사장은 지난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IT‧가전 전시회 ‘CES 2020’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SK텔레콤의 매출 중 40%가 AI 등 ICT 신사업 나오고 있으며 앞으로 매출의 50%를 넘볼 것으로 보인다”며 “SK텔레콤이 이제 단순한 통신기업이 아닌 ‘ICT 복합기업’으로 재평가 받기 위해 정체성에 걸맞는 사명으로 변경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SK텔레콤의 미래 신사업 대표분야는  △미디어 △보안 △커머스(상거래) 3가지 부문이다. 특히 미디어의 경우, 5G를 중심으로 VR,AR 등의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어 기대가 큰 사업 분야다. / SK텔레콤

◇ SK텔레콤, 미디어·보안 등 ‘신사업’으로 미래 동력 확보… 의료 분야까지 사업 확장

SK텔레콤이 현재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비무선 신사업은 ‘New Biz’로 △미디어 △보안 △커머스(상거래) 3가지 부문으로 나뉜다. OTT(온라인 동영상) 등 미디어콘텐츠 부문은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웨이브가, 보안 분야는 ADT캡스와 SK인포섹이, 커머스 부문은 11번가와 SK스토아가 책임지고 있다. 

SK텔레콤의 New biz 사업추진은 단순한 통신 매출 감소에 대한 대응책이 아닌, 신사업 부문의 전략적 육성으로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한 방침이다. 지속적인 사업 확장과 마케팅 등에 힘입어 New Biz의 3가지 사업 분야의 실적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발표된 SK텔레콤의 올해 2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New biz 핵심사업인 미디어, 보안, 커머스의 총 매출액은 전년동기 대비 13.4% 증가한 1조4,340억원이다. 전체 영업이익에서 자회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2분기 15% 수준에서 올해 약 25%로 대폭 확대됐다.

사업별로는 SK브로드밴드가 이끄는 미디어 사업이 전년 대비 16.2% 증가한 9,18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ADT캡스와 SK인포섹으로 이뤄진 보안 사업 매출은 3,2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했다. 
 
커머스 사업도 11번가 거래 규모 확대와 SK스토아의 약진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8.5% 증가한 1,926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은 자사의 네비게이션 앱 ‘T맵’을 기반으로 모빌리티 사업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SK텔레콤은  내년 상반기 미국 ‘우버’와 합작법인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연내 T맵 기반의 모빌리티 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SK텔레콤

SK텔레콤은 내년 상반기 미국 '우버'와 합작법인 설립을 목표로 현재의 모빌리티 사업을 물적분할하는 등 모빌리티 사업 진출에도 힘쓰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SK텔레콤은 T맵 플랫폼, T맵 택시 사업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연내 자회사를 설립한다는 목표다. 차량 공유, 대리운전, 주차 등의 통합 구독형 서비스 출시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까지 확장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SK텔레콤은 AI 등의 ICT기술을 기반으로 의료 및 노약자 돌봄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자사의 AI ‘누구(NUGU)’를 기반으로 전국에서 노인 돌봄서비스를 진행했던 SK텔레콤은 22일에는 부산대학교 병원과 손잡고 ‘5G 기반 VR 노인 돌봄 시범서비스’도 선보인다. 이번 협력으로 SK텔레콤과 부산대학교는 5G·VR·AI 등 최신 ICT를 접목해 부산시 치매안심센터 를 이용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인지장애 조기발견 프로그램을 내달부터 제공할 계획이다.

아울러 SK텔레콤은 이스라엘의 의료장비기업 ‘나노엑스’와 차세대 영상의료장비 시장 진출에도 나서고 있다. 나노엑스의 2대 주주가 된 SK텔레콤은 나노엑스가 보유한 반도체 기반 디지털 엑스레이 기술의 국내외 독점 사업권을 확보했으며, 한국 내에 생산공장도 설립할 계획이다.

박정호 사장은 “ICT 및 첨단 기술로 더 나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자는 양사 철학이 맞닿아 있다”며 “차세대 의료 기술과 5G, AI를 융합한 결과물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표적인 혁신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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