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삼성전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 삼성전자

시사위크=최민석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5월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쓰러진 지 6년 5개월 만이다. 한때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에 힘쓰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 회장은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한 기업의 역사를 넘어 한국 경제에 굵직한 이정표를 남긴 거목(巨木)의 영면 소식에 그가 걸어온 발자취에도 관심이 커진다.

◇ 1987년 취임 대비 영업익 2,000억원→72조원 359배 증가

이 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8남매(3남 5녀) 가운데 일곱째, 아들 셋 중에는 막내였다.

그는 출생 후 부친의 고향인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는 대구에서 ‘삼성상회’ 운영에 전념하느라 자녀를 돌볼 여력이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섯 살 무렵인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고, 5학년이던 1953년에는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이 회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고,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이 무렵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자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두 형을 제치고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 45세였다. /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자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두 형을 제치고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 45세였다. / 삼성전자

삼성그룹 지휘봉을 잡은 것은 1987년. 장남 맹희 씨와 차남 창희 씨가 삼성가 ‘왕자의 난’을 벌이는 사이 새 후계자로 떠올랐고,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자 선대회장의 유언에 따라 두 형을 제치고 삼성그룹 총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 45세였다.

이 회장의 경영성과는 ‘숫자’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었던 매출액은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000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10만명 수준이던 임직원 수는 현재 40만명으로 늘었다. 취임 당시 17개였던 계열사는 신세계 등 분리된 기업을 제외하고도 62개로 늘었다. 87년 당시 국내 재계 3위에 그쳤던 삼성은 전세계 5위의 브랜드로 성장해 한국 경제의 상징이 됐다. 1987년 취임 이후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실제 25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영국 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도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긴급 뉴스로 타전하면서 “삼성전자를 글로벌 전자제국으로 만든 인물”로 그를 소개했다.

NYT는 “삼성전자를 글로벌 전자제국으로 만든 이건희 회장이 숨졌다”고 전하면서 “이 회장이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을 때만해도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삼성전자를 값싼 텔레비전과 전자레인지 제조업체로만 알고 있었다”며 “이 회장은 끊임없는 기술 사다리를 밀어올려 일본과 미국의 라이벌 회사들을 제치고 메모리 칩 분야의 선두주자가 됐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조그만 TV 제조사를 전 세계 가전제품 업계의 거물로 변모시킨 이건희 회장이 78세로 별세했다”며 “지난 30여년 간 삼성은 스마트폰·텔레비전·메모리 칩을 만드는 세계 최대 브랜드가 됐다”고 보도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유명한 ‘신(新) 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삼성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며, 우리 기업사에 굵직굵직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사진은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유명한 ‘신(新) 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삼성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며, 우리 기업사에 굵직굵직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사진은 신경영 선언 당시 모습 /삼성전자

◇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삼성,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되다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이었다. 특히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말로 유명한 ‘신(新) 경영’ 선언을 기점으로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며, 우리 기업사에 굵직굵직한 이정표를 만들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경영 전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혁신을 추진했다. 특히 이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을 ‘인간’으로 보고 ‘나부터 변하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인간미와 도덕성, 예의범절과 에티켓을 삼성의 전 임직원이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가치로 보고, 양을 중시하던 기존의 경영관행에서 벗어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경영의 방향을 선회했다.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987년 취임 초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회장은 여성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해 어린이집 사업을 현실화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그룹의 체질은 대폭 바뀌었다. 이 기간 반도체와 스마트폰, TV 등 수많은 삼성 브랜드가 세계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2020년 브랜드 가치는 623억 불로 글로벌 5위를 차지했고 스마트폰, TV, 메모리반도체 등 20개 품목에서 월드베스트 상품을 기록하는 등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도 매진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꾸준히 스포츠 외교 활동을 펼쳐,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평창이 아시아 최초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아픔도 적잖았다. 1982년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고, 1999년에는 폐 부근 림프절에서 암세포가 발견돼 미국에서 수술을 받기도 했다. 2008년 경영권 불법 승계와 비자금 조성 의혹이 폭로되면서 삼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시련도 맞았다. 삼성가 장남인 이맹희 회장과 상속 문제로 법정 다툼까지 겪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 회장은 선두에 안주하지 않는 위기의식을 토대로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애플과 소송까지 불사하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한계돌파’ ‘마하경영’ 등 변화와 혁신의 경영론을 펼치며 마지막까지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꿨다.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도 매진했다. / 삼성전자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스포츠를 국제교류와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인식하고, 1997년부터 올림픽 TOP 스폰서로 활동하는 등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도 매진했다. / 삼성전자

한편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시킨 이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오후 자택에서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나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았고, 이후 계속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삼성 측은 고인의 별세 소식을 알리면서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고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명실상부 ‘경제대통령’이었던 그다.

발인은 오는 28일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내 삼성가 선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와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이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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