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상징하는 신조어다.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있다는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헌법엔 계급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겨있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수저계급론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서도 ‘주식금수저’는 꼼수 승계와 같은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세상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식금수저’ 실태를 <시사위크>가 낱낱이 파헤친다.

한일철강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올해 들어 4명의 미성년자가 등장했다.
한일철강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올해 들어 4명의 미성년자가 등장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957년 설립돼 한국 철강산업사를 함께해온 한일철강은 올해 들어 3세 시대를 본격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린나이에 상당한 규모의 주식 자산을 거머쥔 ‘주식 금수저’도 탄생했다.

◇ 오너일가 3세는 최대주주, 4세는 주식금수저 등극

한일철강은 현재 최대주주 특수관계인 명단에 4명의 미성년자 친인척이 포함돼있다. 2015년생 A양과 2018년생 B양, 2017년생 C양과 2020년생 D군 등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A양이 6살이고, 가장 어린 D군은 태어난 지 딱 5개월 됐다. A양과 B양, C양과 D군이 각각 자매 및 남매 관계로 추정된다.

A양은 한일철강 주식 82만1,104주, B양은 81만5,329주, 그리고 C양과 D군은 나란히 80만329주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주가 기준으로 각각 13억원대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의 한일철강 주식 보유는 올해부터 시작됐다. 먼저, A양과 B양은 지난 4월 장내매수를 통해 각각 2만775주와 1만5,000주를 신규 취득했다. 여기엔 각각 3,000여만원과 2,200여만원이 투입됐으며, 자금 조성경위 및 원천은 ‘배당소득’으로 명시됐다. 

이어 네 아이는 지난 5월 엄정헌 회장과 엄정근 부회장으로부터 각각 65만269주의 주식을 증여받았다. 당시 주가 기준으로 약 10억원에 이르는 규모였다.

네 아이의 보유 주식 확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엄정헌 회장은 지난 3~4월 세 차례에 걸쳐 전환사채권을 인수했으며, 지난 9월 이 중 일부를 네 아이에게 증여했다. 이어 지난 12일 전환사채 권리행사에 나섰고, 나란히 1만5,060주를 추가 확보하게 됐다. 네 아이가 보유한 80여만 주의 주식이 형성된 과정이다.

◇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돼 주식부호 된 갓난아기

이러한 한일철강 주식금수저는 3세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탄생했다. 한일철강은 지난 5월 오너일가 3세 엄신영 부사장이 새로운 최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다. 네 아이들이 대규모 주식을 증여받은 바로 그 시점이다.

물론 이 같은 주식보유가 법적으로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오너일가의 주식보유는 책임경영 의지 표명의 일환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10억원대 주식을 보유 중인 모습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반 서민 및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안겨주기 충분하다. D군의 경우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10억원대 주식을 증여받았다.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우리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한 미성년자 오너일가의 조기 주식보유는 각종 승계 비용 절감 및 자산 증식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일찌감치 확보한 주식을 배당금 지급 통로로 삼거나, 분할·합병을 통한 지분 확보의 기반으로 삼은 사례들이 실제 존재한다.

더욱이 한일철강은 지난 수년간 주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주가 부양을 위한 이렇다 할 노력도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주주가치 증대 및 실현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갓난아이를 비롯한 아이들의 주식 보유가 더욱 씁쓸함을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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