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의 끝을 아십니까 ④면도기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인간 역시 이 같은 진리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숨이 다한 인간은 이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건들은 어떨까.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물건들이지만, 우리는 그 끝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아주 잠깐, 너무나 쉽게 사용한 물건들 중 상당수가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머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인간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무수히 많은 물건들, 그것들의 끝을 따라가 본다. [편집자주]

현대인의 필수품인 면도기는 일반쓰레기로 배출된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현대인의 필수품인 면도기는 일반쓰레기로 배출된다. /그래픽=권정두 기자,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대다수의 성인 남성은 거의 매일 ‘이것’을 들고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칼질’을 한다. 바로 ‘면도기’다.

인간의 ‘면도 역사’는 무척 길다. 누가, 언제, 어떻게 처음 털을 깎아 손질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 및 문화적으로 면도의 오랜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역과 시대, 문화 등에 따라 차이는 존재하지만, 고대 때부터 인간의 면도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덥수룩하게 제멋대로 자란 수염은 위생적으로 좋지 않고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다. 반면 수염이 가져다주는 보온과 보호의 효과는 야생을 벗어난 인간에게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다. 또한 면도한 얼굴이 훨씬 깔끔하고 보기 좋게 여겨진다. 

◇ 문명사회 인간의 필수 요건 ‘면도’

때문에 면도는 야생의 원시 인간과 문명사회의 인간을 구분하는 무척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는 면도가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규범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면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인으로서 정상적인 생활은 쉽지 않다.

면도가 아주 일상적인 행위이자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규범이 된 데는 면도기의 눈부신 발전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과거엔 투박한 칼로 수염을 자르다보니 상처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정교한 면도 기술을 지닌 이발사들이 대우를 받았다. 면도를 위해 날카로운 면도칼과 거울 등이 필요하다보니 면도 자체가 사회적 신분을 상징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니다. 각종 기술의 발달과 함께 면도기 역시 점점 발전해왔다. 최첨단 소재 및 기술이 적용된 날면도기는 물론 전기면도기도 널리 사용된다. 특별하게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면도를 하다 다치는 일은 드물다. 굳이 이발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간편하게 면도를 할 수 있다. 또한 급할 땐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일회용 면도기를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면도를 간편하게 해줌으로써 인간다움의 실현 또한 간편하게 해주는 면도기의 끝은 어떨까.

◇ 훨씬 간편해진 면도, 재활용은 불가능

다 쓴 면도기를 버릴 때, 재활용으로 분리 배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부분이 플라스틱으로 이뤄져있고, 면도날 역시 철 소재이기 때문이다. 면도날은 철에 크롬과 니켈을 첨가해 만든 강철 합금 스테인리스강 소재로 만들어진다. 가공이 쉽고 녹이 슬지 않는 장점이 면도날 소재로 적합하다.

하지만 면도기는 재활용되지 않는다. 현재 쓰레기 배출 규정상 면도기는 일반 쓰레기로 분류돼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활용이 되기 위해선 손잡이를 비롯한 플라스틱과 면도날인 스테인리스강을 분리해야 한다. 그런데 분리하는 과정은 물론 배출 및 수거 과정 모두 까다롭고 위험이 크다. 또한 피부 보호를 위한 윤활밴드와 면도기를 움직이도록 하는 장치 등도 포함돼있어 분리가 더욱 복잡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일반 쓰레기로 배출되는 면도기는 소각 또는 매립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면도날 부분만 교체하며 손잡이 부분은 비교적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면도기는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로 목욕탕이나 숙박업소 등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면도기다. 사용 횟수 및 시간에 비해 쓰레기로 버려져 지구에 끼치는 악영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인간다움을 위한 편리한 면도가 지구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에 대한 해결책이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일회용품 줄이기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엔 2022년부터 50실 이상의 숙박업소에서 일회용 면도기를 무상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고, 2024년부터 모든 숙박업소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아울러 지금의 면도기에 비해 환경문제가 덜한 제품들도 등장하고 있다. 손잡이 부분을 생분해성 소재로 만든 면도기가 대표적이다. 날 부분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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