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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의 그늘
[베이비박스의 그늘②] 다시 불거진 찬반 논란
2020. 11. 18 by 김희원 기자 bkh1121@sisaweek.com

전쟁터라고 해도 무방한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척박한 세상에서 태어나자마자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홀로 서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매년 수백명의 아기들이 친부모에 의해 세상 속에 홀로 유기되고 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베이비박스 아기들의 슬픈 사연을 종종 듣는다.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기들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은 없을까. <시사위크>는 베이비박스 설치 11년의 실태를 점검해보고 유기 아동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난 2009년 국내에 베이비박스가 처음 설치된 이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 주사랑공동체교회
지난 2009년 국내에 베이비박스가 처음 설치된 이후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사진 주사랑공동체교회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최근 베이비박스 인근에 유기된 아기가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지난 3일 오전 5시30분께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 아래에서 남자 아기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아기는 발견 당시 탯줄과 태반이 붙어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CCTV를 통해 지난 2일 오후 10시10분께 한 여성이 영아를 드럼통 위에 놓고 가는 것을 확인했고 지난 4일 아기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 친모인 20대 여성을 검거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2009년 베이비박스가 처음 설치됐을 때부터 불거졌던 찬반 논란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해외의 경우는 독일, 체코, 폴란드, 일본, 중국 등 20여개 국가의 민간 또는 정부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두 곳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지난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교회 담벼락에 설치했다. 이후 2014년 5월 경기도 군포시 새가나안교회가 두 번째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지난 2013년 정부는 베이비박스 설치는 형법 및 아동복지법 위반죄의 방조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베이비박스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고 영아 유기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운영을 중단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제공한 지난 10년 동안의 영아 살해와 영아 유기 사건 발생 건수/그래픽=이현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제공한 지난 10년 동안의 영아 살해와 영아 유기 사건 발생 건수. /그래픽=이현주 기자

◇ 끊이지 않는 영아 유기와 살해

아기 유기 범죄는 베이비박스 이외의 장소에서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18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10년~2019년) 동안 영아 살해는 110건, 영아 유기는 1,272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혜련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으며 영아 유기·살해 유형도 다양했다. 주택가 골목길에 아기가 탯줄이 달린 채 버려진 경우도 있었고 서울의 야산에서 비닐에 싸여 유기된 영아 시신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 태어난 지 10분 만에 여행용 가방에 방치된 아기가 사망한 경우 등도 있었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2018년 하반기 ‘한부모 가구 형성의 특성 분석’ 연구보고서를 통해 “2014년 이후로 베이비박스 아기는 영아 유기 범죄 건수로 집계하지 않기로 하면서 경찰청 통계상 해당 범죄 건수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백혜련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영아 유기 사건은 2014년 이후로 100건 미만으로 잠시 줄었지만 2016년부터 다시 100건 이상으로 늘었다. 영아 유기 사건은 2014년 76건, 2015년 41건, 2016년 109건, 2017년 168건, 2018년 183건, 2019년 135건으로 집계됐다. 거기다 영아 살해 사건도 지난 10년 동안 총 110건, 매년 10건 안팎으로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 어떻게 봐야 할까

베이비박스 옹호론자들은 이처럼 영아 유기와 영아 살해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베이비박스가 있어서 그나마 아기들의 생명이 지켜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1,800명이 넘는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는데 그 가운데 80% 가까운 아기들이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며 “태반을 달고 들어온다거나 산모가 금방 화장실이나 빈집에서 출산해서 옷에 싸여져서 들어온 아기도 있었다. 그런 아기들이 베이비박스가 없었으면 어디로 갔겠느냐”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아기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져서 죽어가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고 안전하게 베이비박스에 넣으면 보호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베이비박스가 아기 유기를 조장한다거나 유기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베이비박스는 합법을 가장한 유기 수단이다”며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베이비박스를 폐쇄할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도 운영자측에서는 계속 아기의 생명을 살려낸다고 얘기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실제로는 아기의 생명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아기를 버릴 사람들은 어디든 버리고 있고 아기를 죽일 사람들은 계속 죽이고 있다”며 “전국에 버려지던 것에서 베이비박스가 생기면서 그곳에 유기 아기가 모아지는 양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아기의 생명을 살리는 기능을 하면서도 동시에 유기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면 민간이 아닌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도경 대표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베이비박스가 아기 유기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고, 아기의 생명을 살리는 기능도 있다”며 “그렇다면 국가에서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한지 따져서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면 민간이 아닌 공적 기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박스 인근에 영아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 여성 김모씨가 지난 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베이비박스 인근에 영아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 여성 김모씨가 지난 6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끝난 뒤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 근본적 대책 마련 시급

이와 함께 소모적인 베이비박스 찬반 논란보다는 아기 유기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2018년 하반기 ‘한부모 가구 형성의 특성 분석’ 연구보고서에서 “베이비박스 운영과 관련해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베이비박스가 필요 없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 체계와 관계망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 그룹에서는 아기 유기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중 하나로 산모가 익명으로 아기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제도인 ‘비밀출산제’ 도입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아이를 입양 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양 전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 노출을 우려한 산모가 입양 대신 유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꾸준하게 늘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 많이 이야기 되고 있는 비밀출산제가 유기를 줄일 수 있는 해결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