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가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으로 돌아왔다. /리틀빅픽처스
배우 정우가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으로 돌아왔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매 작품, 진심을 다한 열연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배우 정우가 영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모든 걸 쏟아부었다. 특유의 생생함이 살아있는 생활연기는 물론, 웃음과 감동을 오가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돼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2013년 개봉해 1,230만 관객을 사로잡았던 ‘7번방의 선물’ 이환경 감독이 7년 만에 선보이는 휴먼 코미디다.

‘이웃사촌’에서 정우는 홀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자 좌천 위기의 도청 팀장 대권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극 중 대권은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인물. 정우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딱 알맞은 온도로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대권은 도청 대장이면서 직업도 생각도 다른 이웃집 아빠 의식을 만나 겪는 내적 갈등을 겪는데, 정우를 만나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됐다는 평이다.

정우는 2001년 영화 ‘7인의 새벽’으로 데뷔한 뒤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품행 제로’(2002),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바람난 가족’(2003), ‘그 놈은 멋있었다’(2004), ‘사생결단’(2006), ‘숙명’(2008) 등에서 조‧단역으로 활약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작품은 영화 ‘바람’(2009)이다. 

정우의 고교 시절 경험담을 토대로 제작된 ‘바람’은 독립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0만 관객을 돌파했고, 후에도 입소문을 타면서 서울과 부산에서 재개봉하기도 했다. 정우는 이 영화로 제47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tvN ‘응답하라 1994’(2013)에서 쓰레기 역으로 선풍적 인기를 끈 그는 영화 ‘쎄시봉’(2015),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2018) 등 시대를 오가는 열연은 물론, ‘히말라야’(2015), ‘재심’(2017) 등 굵직한 작품에서 울림 있는 연기로 묵직한 감동을 전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과시했다. 

‘이웃사촌’에서 대권을 연기한 정우. /리틀빅픽처스
‘이웃사촌’에서 대권을 연기한 정우. /리틀빅픽처스

‘이웃사촌’으로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정우는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설레고 기대된다”며 떨리는 마음을 드러냈다. 또 ‘이웃사촌’을 통해 비워내는 방법을 배우게 됐다면서, 달라진 마음가짐을 전하기도 했다.

-촬영은 2년여 전에 끝났는데, 개봉은 이제야 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감사한 마음이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면서 궁금해하고 있는 상태다. 본격적으로 영화 홍보를 시작했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다짐과 각오를 한 상태라 힘내서 영화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휴머니즘이 묻어난 영화였다. 어떤 마음으로 택했나.
“배우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시나리오고 그다음이 감독과 제작진, 출연하는 배우들인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이환경 감독님과 너무 하고 싶었다. (이환경 감독과) 알고 지낸지 15년 이상 됐다. 한 번 보라고 시나리오를 줬는데, 보기도 전에 감독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캐릭터일지 잘 몰랐지만,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애정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시나리오를 만났는데 너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재밌었다. 그래서 선택하게 됐다.”

-천만 감독은 다르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천만 감독님의 기운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는데, 외적인 부분보다 내적으로 연출자로서 큰 성장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태도나 노하우가 궁금했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만족스러운 현장이었다.(이환경 감독이) 내가 알던 것보다 더 섬세해지고 더 집요해졌더라. 디렉션을 줄 때도 디테일하게 설명해 주고 직접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배우의 감정을 120%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준다. 촬영하면서 육체적으론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부담을 가진 상태였지만, 감독님과 소통이 원활하게 잘 되다 보니 신명나게 했던 것 같다.”

-대권이 심리적으로 변화가 큰 인물이었는데, 어떤 고민을 했나.
“항상 작품을 할 때 이 캐릭터에 내가 연민을 느끼는지 생각을 한다. 대권은 겉으론 무뚝뚝하고 거칠고 가족에게도 가부장적이다. 아이에게도 표현하는 방식이 투박하다.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는 그런 캐릭터라서 바뀌게 됐을 때 사람 냄새나는 모습이 확 드러나면서 더 뜨겁게 느껴졌다. 고민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워낙 시나리오에 감정이 애매하지 않게 잘 나와 있었다. 표현돼있는 장면들이 명확해 차곡차곡 잘 쌓여가는 게 느껴졌다.

오히려 내가 중점을 더 두려고 한 건, 도청을 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에서 보이는 것이 반복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평면적이지 않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표현을 과격하게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감정적인 부분을 눈빛, 시선 처리로 대신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옷이나 주변 소품들을 이용하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웃사촌’에서 대권으로 열연한 정우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이웃사촌’에서 대권으로 열연한 정우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실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택구금 사건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시나리오의 소재와 외적인 장치라고 생각을 했다. 정치적인 요소가 있거나 역사적인 고증을 나타내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지점보다 드라마적인 부분과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감정 위주로 생각했다.”

-감정신이 많았다. 특히 대권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김실장에게 잡혀온 동생과 마주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대권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게 나을지, 그래도 자기 동생이 그렇게 다친 모습을 보면서 어떤 감정일지 분석해서 연기를 하는 게 맞을지 고민을 했다. 대권은 본능적으로 움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이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면’이라고 생각했을 때 지금 영화에서 나온 그 감정이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 감정 연기들을 할 때 이환경 감독님과 얼마큼의 에너지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세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연기 중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영화 후반부 동식(김병철 역)과 남산에서 쏟아내던 장면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장면 촬영을 2~3일에 나눠서 해야 했다. 3일 가까이 그 감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고 극한의, 궁지에 몰려있는 감정을 표현해야 하고 터트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정말 힘들더라. 하루라도 빨리 촬영을 마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물리적인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겨울이었는데 해가 짧다 보니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거다. 감정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다. 너무 그 감정에 치우쳐져서 일상생활을 하게 되면 그 감정이 터져 버린다. 터지면 그걸 또 채우기가 쉽지 않다. 현장에서 결국 한 번 터졌다. 그 감정이 닳아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배우로서 신기하면서도 귀한 경험을 한 것은 함께 하는 동료, 감독님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이 또 채워지는구나 싶었다. 그 힘으로 촬영을 했다.”

맡은 모든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정우. /리틀빅픽처스
맡은 모든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정우. /리틀빅픽처스

-대권과 ‘이웃사촌’으로 인해 사람 정우도 변화한 지점이 있을까. 
“영화라는 건 굉장히 예민한 작업이다. 그리고 영화는 예민한 사람들끼리 만나 예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웃사촌’으로 시작해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뜨거운 피’까지 촬영을 하면서 느낀 건 연기라는 게 비우고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전에는 채운 상태에서 뭔가 뿜어내려고 했다면, 지금은 비운 상태에서 채워가면서 촬영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 시발점이 ‘이웃사촌’이라는 작품이었던 것 같다. 그 중심엔 이환경 감독이 있었고. 물론 쉽지 않다. 느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행동하긴 쉽지 않다. 작품을 대하는 자세나 인물을 분석하는 태도, 모든 것들이 다 맞아졌을 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다. 이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는데, 그렇다 보니 작품을 보고 분석하거나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생활 연기가 좋다, 눈빛이 좋다 등 좋은 평가들이 많다. 본인의 어떤 매력이 대중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그냥 정직하게 준비한다. 잘 숨길 줄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하려고 한다. 좋게 표현해서 열심히 한다는 것이지 사실 나는 뒤에서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발악을 한다. 그런데 이런 걸 대외적으로 얘기하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이 얘기를 내뱉는 이후부터 다음부터는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나 부담스럽기도 하다. 조심스럽다. 나는 타고난 사람도 아니고 특출나게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저 친구가 진심을 갖고 작품에 임하는구나’라는 소리를 들으면 나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부끄럽지 않지 않겠나 생각한다. 잘하든 못하든 떠나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고 진심을 다했다는데 귀엽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연기 외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 있다면.
“운동을 열심히 한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는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것 같다. 내 미래에 대해 알 수 없지 않나. 그럴 때 뭔가 해야 하는데, 그때 내 몸을 힘들게 만들거나 피곤하게 만드는 습관을 들였다. 단순히 근육 자랑이 아니라 뭔가 계속 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위해 운동을 해왔다. 습관이 되다 보니 예전엔 어떤 목표를 갖고 운동을 했다면, 지금은 운동 자체를 즐기게 됐다. 걸으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들떠있는 마음도 다잡게 됐다. 운동하는 시간이 값지다. 연기도 그렇게 하고 싶다. 걷듯이 즐기면서 하고 싶은 마음이다.”

-차기작은 카카오TV 웹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다.
“‘이웃사촌’도 그렇고,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뜨거운 피’까지 감정 소모가 굉장히 심한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 드라마가 다른 색의 작품이 될 것 같다. 팬들은 반가워할만 한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밝은 드라마다. 조금은 과격할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다. 그 작품 끝나면 영화로 다시 인사드릴 것 같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