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야. 머지않아 백신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적어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네.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미덕이 되어버린 비대면(untact) 시대에 ‘코로나 블루’없이 비교적 ‘적정한 행복감’을 갖고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 소개하고 싶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인류는 기후위기 때문에 더 이상 무한 욕망을 추구하면서 살 수는 없어. 그래서 누구나 소욕지족하면서도 혼자 행복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하나쯤 갖고 있어야 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일이니 자네도 따라 해보길 바라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오세영 시인의 <들꽃 3>을 함께 읽어보세. 

“젊은 날엔 저 멀리 푸른 하늘이/ 가슴 설레도록 좋았으나/ 지금은 내 사는 곳 흙의 향기가/ 온몸 가득히 황홀케 한다.// 그때 그 눈부신 햇살 아래선/ 보이지 않던 들꽃이여,// 흙 냄새 아련하게 그리워짐은/ 내 육신 흙 되는 날 가까운 탓,/ 들꽃 애틋하게 사랑스럼은

내 영혼 이슬 되기 가까운 탓,”

50대에 접어들 때까지 나도 들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네. 어렸을 적 동네 앞 개울가나 영산강 제방에서 동무들과 함께 뛰놀면서도 그곳에서 하늘거리던 들꽃들에게는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어. 무심했지. 논과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도 벼나 보리가 아니면 뽑아서 버려야 할 잡초이거나 가축들에게 먹이로 주는 풀로만 여겼지. 그래서 동생들에게 토끼풀로 손목시계를 만들어주었던 일을 빼면 꽃과 관련된 어릴 적 추억이 거의 없어.

하지만 하늘의 뜻이었는지 지천명인 오십이 넘으면서 꽃들이 보이더군. 이름도 모르는 들꽃들이 저 멀리서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뒤늦게 자연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 이전에도 들꽃들은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둔한 내가 알아채지 못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들꽃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네. 그때 우연히 접한 시가 김춘수의 <꽃>이었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때서야 깨달았지. 꽃이든 사람이든 이름을 불러줘야 서로에게 ‘무엇’이 된다는 것을.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이런 간단한 상식도 모르고 살았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더군. 그래서 장년의 나이라 쉽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 둘 외우기 시작했지. 고등학교 졸업 이후 다 잊어버린 ‘생물’관련 용어들도 하나 둘 다시 익혔고. 그래야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지난 십여 년 동안 어디에서든 들꽃을 만나면 먼저 ‘안녕!’하고 이름을 부르네. 그러면 들꽃들도 ‘안녕!’하고 응답을 하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들꽃들을 만나면 오고가는 말들이 더 많아.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우니 그럴 수밖에. 들꽃이 사람 말을 알아듣고 반응을 한다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식물들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는 걸 직관으로 알지. 그런 믿음이 없다면 날마다 들꽃들과 함께 놀 수가 없어.

만물이 자기만의 고유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동양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매우 친숙한 가르침이었어. 맹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혜시(惠施)는 ‘범애만물천지일체(凡愛萬物天地一体)’라고 말했지. 천지가 일체이니 만물을 동등하게 사랑하라는 가르침이야. 선문에서 가장 많이 읽는 ‘벽암록’에는 ‘천지여아동근 만물여아일체(天地與我同根 萬物與我一體)’라는 말이 있어.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다’는 뜻이야. 동학의 2개 교주인 해월 최시형도 ‘만물이 시천주 아님이 없다’고 했어. 만물을 하느님처럼 동등하게 모셔야 한다는 의미야. 불교에서는 만물이 생명을 갖고 있고, 만물이 부처라고 가르치지.

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만물 중 하나인 식물이 느낄 수 있는 건 당연하겠지. 그래서 식물과 대화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는 거구. 어디에서 꽃을 만나거든 먼저 ‘안녕~’하고 인사 하면서 이름을 불러주게. 그러면 꽃들도 방긋 웃으면서 ‘안녕~’하고 응답할 거야. 자네와 꽃과의 감응(感應)이 시작되는 걸세. 자네만 꽃을 반기는 게 아니고 꽃들도 자네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그러면 가슴도 따뜻해지고.

내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올라간다고 하는구먼. 사람들과는 불가피하게 멀어져도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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