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연숙.서정숙 의원실 주최로 열린 코로나19 경험과 극복" 정책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최연숙.서정숙 의원실 주최로 열린 코로나19 경험과 극복" 정책토론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20대 국회에서 보수·진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제3세력화에 성공했던 구(舊)국민의당은 4년간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며 붕괴 수순을 밟았다.

중간지대를 열어 거대양당·이념 구도를 타파한다는 제3지대 목표도 지난 4·15 총선에서 완파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24일 기준 21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174석)과 국민의힘(103석) 등 양당 합계 의석은 277석(92.3%)에 달한다.

그렇다면 제3지대는 소멸한 걸까. 아니다. 제3지대는 새 국회에 발맞춰 다른 형태로 싹을 틔웠다. 단 ‘중간지대’가 아닌 ‘반문(反문재인)지대’의 모습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야 균형이 깨지고 정부여당 독주 체제가 굳어진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제3지대에 부지불식간 보수 색채까지 덧씌워진 셈이다.

◇ ‘중간 소멸’에 제3지대 의미도 변화

최근 첫 국정감사를 끝낸 21대 국회에서 ‘절대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위력과 국민의힘의 무력함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국민의힘이 당력을 기울였던 라임·옵티머스 특검 관철은 요원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민주당이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법 개정에 나설 요량이어서 출범 저지도 어렵게 됐다. 민주당이 부동산 관련 법안을 야당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단독 통과시킨 것을 감안하면 공수처 출범도 초읽기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막강한 정부여당 견제에 제1야당이 힘을 쓰지 못하면서 과거 의미의 제3세력은 설 곳을 잃었다. 여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캐스팅보트 자체가 무의미하게 된 까닭이다. 더구나 제3당이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6석)과 열린민주당(3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24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친문·반문 구도가 뚜렷해질수록 기존 제3지대 정당들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며 “대립구도가 거세질수록 중간지대는 없어진다. 중도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20대 국회에서 제3지대는 진보·보수 사이에 중도가 들어간 구도였지만, 지금은 ‘기득권을 버리고 문재인 정권에 대항하자’, ‘반문세력이 뭉쳐야 한다’는 의미가 됐다”며 “과거와 지금의 제3지대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민주당과 같은 3석인 국민의당의 경우 최근 국민의힘과 라임·옵티머스 특검법 등을 공동 발의하는 등 정책 연대와 반문 기치를 공유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실용중도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결국 보수야권으로 분류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정국 주도로 존재감 발휘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간지대 개척은 엄두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한다. 3석을 쥐고 양당 카르텔 속으로 파고들기에는 문턱 자체가 너무 높아진 탓이다. 이에 국민의당은 국민의힘에 ‘범야권 플랫폼’을 거듭 제안하면서 야권연대로 방향을 선회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권연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민주당 출신 시장들의 궐위로 마련된 보궐선거에서 야권 패배는 곧 내후년 대선 패배로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아직 안 대표의 제안에 대해 시큰둥한 모습이나 최종적으로는 반문을 매개로 한 야권 단일후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무소속 보수 의원들이 범야권 제3지대를 형성해 보궐선거에 나선다면 기대해볼 만하다는 취지다.

신 교수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을 합친 이러한 제3지대가 형성되면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연합이 되든 연대가 되든 통합이 되든 셋 중 하나는 해야 한다. 통합이 아닌 단일후보를 내는 연대 정도가 되더라도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봉 민생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민생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생당 제공
이수봉 민생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민생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민생당 제공

◇ ‘중간지대’ 이대로 끝?

구 국민의당 후신으로 원외에서 제3지대 재건을 도모하려는 민생당은 최근 심각한 내홍을 겪으면서 행보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이수봉 비상대책위원장을 위시한 당 지도부가 당헌당규를 무시하고 부당한 인사를 진행했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되면서다.

민생당 노조는 지난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당직자 탄압에 혈안인 사측이 당헌당규를 지키지 않은 인사안을 강행 처리했다”고 밝혔다. 노조 측에 따르면, 해당 인사에서 당내 회계·조직 전문가가 업무 전문성과 전혀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 지도부 당무의 절차적 문제를 제기했던 당직자에 대한 징계성 인사도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수봉 민생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사무총장과 부총장들이 바뀌고 새로 직무평가를 하면서 인사위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노조에서 지적한) 당헌당규상 인사규정은 총선까지 유효한 것으로 현재 의결 사항이 아니다. 노조가 잘못 안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조와의 갈등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노조와) 직접 만나 이야기하면서 풀어갈 것”이라고 했다.

재차 혼란기에 접어든 민생당은 다음 선거에 정상적으로 나설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어렵사리 원내정당이 된 국민의당도 보수야권 재편에 집중하면서 중간지대를 뜻하는 제3지대는 당분간 중앙 정치권에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야권 관계자는 “제3 실용중도 정당으로서 국민이 바라는 제3지대 공간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다 해도, 정작 제3지대를 담아낼 정치세력이 초토화된 상황”이라며 “당분간 중도정당이 국회에 설 자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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