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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각 가정에 송부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매년 연말만 되면 각 세대 우편함에 노란색 용지 한 장이 발송된다. 이는 대한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로 올해도 어김없이 발송됐다. 이 적십자회비에 대한 논란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사안이다. 지난해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박경서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내부에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늦어도 3년 안에 없애기로 했다.

적십자회비는 ‘자발적인 성금’인데도 생긴 형태가 세금고지서와 흡사해 세금으로 오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불만 제기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18일에는 한 고등학생이 정재기 법무법인 에이원 변호사와 함께 ‘적십자사 회비 지로통지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헌법소원은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3월에도 동일한 내용의 헌법소원이 재차 제기됐다.

‘대한적십자사 회비’와 관련된 논란은 크게 5가지다. ‘회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점과 세금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는 ‘지로통지서’ 형태, 다른 나라나 국내 다른 기부단체는 하지 않는 지로통지서를 국민들의 가정으로 발송하는 행위, 그리고 연말에 납부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해 2~3월쯤 독촉하는 듯이 지로통지서를 재차 발송하는 행위다. 또 이러한 지로통지서 발송을 위한 개인정보 수집이 국민들의 동의없이 이뤄지는 점이다.

이러한 세금고지서 같은 지로통지서 형태의 적십자회비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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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 빌딩 1층 우편함. 노란색 지로통지서가 집집마다 꽂혀있다. / 제갈민 기자

◇ ‘회비’는 모임 구성원에게 걷는 것… 적십자사 가입 안 했는데 회비를 왜?

회비란 ‘모임을 만들거나 유지하기 위해 그 모임의 구성원에게 걷는 돈’을 의미한다. 즉, ‘적십자회비’라는 명목으로 성금을 모금하기 위해서는 대한적십자사 구성원들에게만 지로용지를 발송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12월 소득에 상관없이 만 25세 이상 75세 미만 모든 가구주에게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를 보낸다. 그렇다면 모든 국민은 만 25세가 되면 자동적으로 대한적십자사에 가입이 되는 것일까.

대한적십자사조직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거주한 자는 모두 적십자회원에 가입할 수 있으며, 회비를 납부하면 적십자 회원이 된다. 즉 1회라도 적십자회비를 납부했다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 대한적십자사 회원이 되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세대주, 개인사업자, 법인, 단체, 비회원 중 회원가입 희망자를 대상으로 적십자회비 납부요청 지로용지를 발송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 회원가입 희망자를 대상으로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발송한다고 했지만, 현재 대한적십자사는 이러한 지로통지서를 원하지도 않는 국민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발송하고 있어서다.

또한 발송 제외 대상으로는 △만 25세 미만 및 75세 초과 세대주 △만 30세 미만 단독 세대주 △수급자 및 장애인 △기타 제외 요청자는 제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받고 싶지 않은 국민들은 직접 제외요청을 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회비’라는 단어 사용에 대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적십자회비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해왔던 명칭이며 최초로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금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민들이 더욱 친숙하게 적십자회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즉 적십자회비라는 명칭은 최초 시작과 역사성에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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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 / 제갈민 기자

◇ 안내문 형태 후원 독려 가능, 고령자들 세금으로 오인할 수도

지로통지서는 과거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뱅킹이 발달하기 전, 전기나 수도요금을 고지할 때 이용됐다. 최근에는 종이 사용을 줄이고 우편 발송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이 자동이체나 전자고지서 등을 이용하는 추세다. 그나마 아직까지 남아있는 지로통지서는 주정차위반이나 과속·신호위반 시 발송되는 과태료 고지서 정도다.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가 이러한 과태료 고지서나 요금고지서와 형태가 비슷하다보니 처음 받아보는 젊은 청년들이나 고령의 노인들은 세금으로 오인해 ‘납부를 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회비를 납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적십자회비는 세금이 아니며, 기부 명목의 성금으로 납부는 개인의 선택사항이다.

지로통지서 형태를 각 세대에 발송하면서까지 성금을 모금하려는 행위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지로통지서’만 검색하더라도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와 관련된 게시물을 수십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게시물은 수년전 작성된 것부터 올해 11월·12월에 작성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지로통지서 형태가 논란이 일자 박경서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3년 내에 (발송 형태를)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로통지서 형태를 바꾸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왜 필요한지도 선뜻 수긍하기는 힘들다. 박경서 전 회장은 TF를 통해 3년 내에 수정을 하겠다고만 해명했을 뿐, 왜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바꾼다면 당장에라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한적십자사는 유예기간을 둔 셈이다.

지난해 헌법소원을 함께 접수한 정재기 변호사도 지난 2일 전화통화에서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 형태는 당장에라도 바꿔서 각 세대에 발송할 수 있는 것이다”며 “그런데 대한적십자사는 올해도 형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국민들에게 발송했다”고 지적했다.

‘회비’ 명칭 사용에 이어 발송 형태도 당장에는 바꿀 의지가 없는 모습으로 비쳐진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지로용지는 지금도 세금고지서 외 동창회비·신문구독료·핸드폰 요금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리 편리한 제도와 방법도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어 “적십자사는 2023년부터 적십자 회비 모금방식을 다양화 할 예정”이라며 “전화로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ARS 060 기부서비스를 이미 시작했고 지로용지를 대체하기 위해 모바일 전자고지를 도입하려 준비 중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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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 내부. 큐알코드와 각 금융권 계좌번호, 금액, 모금기간(납부기일) 등이 세세하게 작성돼 있다. / 제갈민 기자

◇ 지로용지, 한국 유일… 재차 발송은 독촉으로 보이기까지

적십자사 회원국 중 지로통지서를 국민들의 자택으로 발송해 회비를 모금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십자사 회원국은 전 세계 198개국이 존재한다. 이러한 통지서 표지에는 국민들의 이름과 주소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 이사를 가더라도 이사를 한 집으로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는 꼬박꼬박 날아온다.

국가기관도 아닌 대한적십자사가 국민 개인의 인적사항을 수집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대목이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따라 회비모금 및 기부영수증 발급을 위해서만 개인 정보를 수집·사용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나 국민 누구도 자신의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직접 동의 서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지난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장재기 변호사는 “요즘처럼 개인정보에 민감한 시기에 개인의 동의도 없이 이를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은 위법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 납부를 하지 않으면 다음해 2~3월쯤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재차 발송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위는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성금을 독촉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으며, 국민들로 하여금 부정적인 인식이 싹트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최근 5년간 적십자회비 모금액은 △2016년 507억원 △2017년 472억원 △2018년 446억원 △2019년 414억원 등으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다가 올해 11월말 기준 435억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이는 올해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기부효과로 보이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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