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AI스피커를 통해 집안의 전자기기를 조정하고 무인매장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웹사이트, 금융앱을 통해 거래, 민원문서 발급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처럼 편리한 디지털 전환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받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Getty images, 픽사베이,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우리 생활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말 한마디면 집안의 모든 전자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AI스피커, 가게마다 설치된 키오스크 등은 이제 전혀 어색하거나 신기한 ICT기술이 아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촉진된 ‘언택트 사회’의 도래는 디지털 전환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정부 역시 지난 7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디지털 전환을 촉진 및 확산할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했다. 이에 많은 국민들은 향후 한층 더 편리해질 디지털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하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근심이 깊어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표적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장애인’들이다. ICT기술은 끝없이 진화하고 있지만, 장애인들에 대한 기술적 배려는 제자리걸음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최근 발표한 ‘2019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75.2%으로, 일반인 기준(100%)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편리한 무인매장·키오스크… 장애인들에겐 ‘장벽’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지난 7월 발간한 ‘소외감 커지는 언택트 시대의 장애인’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들의 디지털 전환 시대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벽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두 가지 부문 모두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오프라인의 경우 언택트 시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키오스크 기반의 ‘무인매장’이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큰 불편을 주는 대표적 예다. 시각장애인들이 장애인 안내견을 통해 매장까지 도착한다 해도 매장 내에서 진열된 상품의 위치를 확인하거나 물건을 고르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AI 기반의 영역별 음성 안내시스템을 갖춘다 해도 한정된 안내멘트만 가능할 뿐 다양한 외부 변수에 대한 대응책 마련엔 직원이 자리잡고 있는 일반 매장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인 외 다른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 역시 무인매장을 이용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무인 계산대의 경우, 휠체어에 앉아 물건을 계산하고 키오스크의 디스플레이를 조작하기 힘든 높이에 설치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지털 전환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로봇, AI가 관리하는 무인매장이 대세가 될 듯하다. 하지만 장애인들, 특히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무인매장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진=시사위크DB

법적으로도 무인매장에서 장애인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엔 무리가 있다. 현행법상 장애인을 위한 키오스크 등의 편의시설은 300m² 이상에 해당하는 음식점, 제과점 등과 1,000m² 이상의 마트 등 판매 시설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무인매장은 편의점 크기의 작은 매장이 많아 편의시설 설치가 되지 않은 곳이 대다수다.

또한 2018년 장애인 및 고령자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하는 ‘금융자동화 기기 접근성 지침’이 지정됐지만, 해당 지침이 적용된 무인화 기기들은 국가 및 지자체, 공공기관 등 공공분야에만 적용된 상태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장애유형별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무인매장의 규모나 고려돼야 할 편의시설에 대한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며 “셀프 계산대 설계 및 구입시 장애인을의 편의를 고려해야 할 법적근거가 미비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장애인 및 고령자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하는 ‘금융자동화 기기 접근성 지침’이 지정된 것은 2018년이다. 때문에 2018년 이전 설치된 키오스크, ATM기기들은 장애인들에게 매우 불편할 수 있다./ 뉴시스

◇ “웹사이트, 앱 이용하기 힘들어요” 시각장애인 배려 떨어지는 온라인 서비스 

온라인 역시 오프라인만큼 장애인들에게 ‘웹접근성’이 떨어지는 불편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웹접근성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 모두가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018년 실시한 ‘웹접근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금융 및 보험업,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 등 8개 표준산업분야 1,000개 웹사이트 중 전체 74.3%에 해당하는 743개의 웹사이트가 75점 이하로 웹접근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체 평균 점수는 66.점에 불과했다.

8개 분야의 세부 점수는 각각 △도매 및 소매업(62.9)△숙박 및 음식점업 (64.3) △출판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 (66.5) △금융 및 보험업 (77.9) △부동산업 및 임대업 (62.1) △교육서비스업 (66.4)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64.8) △예술·스포츠 및 여가관련 서비스업 (65.6)으로 집계됐다. 

광고 배너, OTT 등 VOD 서비스에서 자막이나 원고를 제공하지 않은 것이 주된 감점 사유였다. 그나마 ‘금융 및 보험업’의 경우 77.9점으로 평균 이상 점수로 평가받았으나, 장애인들의 생활과 직결된 ‘부동산업 및 임대업’과 ‘보건업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부문의 웹사이트는 각각 62.1점과 64.8점에 불과했다. 

장애인들의 웹사이트 이용 불편에 대한 논란은 올해 10월 12일 진행된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국세청 홈택스의 음성지원 기능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장혜영 의원 측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영상에선 시각장애인이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서 민원증명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해당 영상에서 시각장애인이 스크린리더라는 프로그램으로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해 민원증명 버튼을 누르면 ‘새창링크’라는 엉뚱한 음성이 나와 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혜영 의원은 “장애인의 웹접근성 문제는 2006년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됐는데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국세청장께서 시각장애인 당사자였다면 이 문제가 해결이 안됐을까”라고 꼬집었다. 이어 “새로 구축될 홈택스 2.0에서는 더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애인들의 웹사이트 이용 불편에 대한 논란은 올해 10월 12일 진행된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의 시각장애인 안내 기능은 제대로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혜영 의원 유튜브 캡처

아울러 최근 언택트와 핀테크(모바일, 빅 데이터, SNS 등의 첨단 정보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금융서비스 및 산업)의 활성화로 모든 분야에 도입 ‘간편결제 앱(App)’ 역시 장애인들이 사용하기 매우 불편하다고 지적된다.

웹·앱 평가 및 컨설팅 전문 연구소인 ‘숙명여자대학교 웹발전연구소’에서 지난 4월 발표한 ‘5대 간편결제앱’의 접근성에 대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SSGPAY와 PAYCO는 각각 90점·85점으로 준수한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카키오페이는 62점으로 미흡 판정을 받았으며, SK페이, L페이, 제로페이는 50점대에 그쳐 앱접근성이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형남 웹발전연구소 대표는 “앱접근성 합격 기준이 95점으로 고려했을 때 6개의 앱 모두 장애인들이 사용하기엔 만족스럽지 못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제로페이는 서울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플랫폼이었으나 시각장애인들의 접근이 힘들다는 치명적인 문제도 발생했다.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앱에 내재된 대체 텍스트를 읽어주는 단말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로페이앱에서는 텍스트 일부가 미지원 되거나 텍스트 자체 오류가 발생했다.

문형남 웹발전연구소 대표는 “긴금재난지원금 대상자 중에 시각장애인 분들도 많은데 앱이 받쳐주지 않아 이들에게 무용지물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제로페이를 아예 사용하지 못하거나, 주변에서 도와줘야 그나마 쓸 수 있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제로페이앱 역시 시각장애인을 위한 텍스트 일부가 미지원 되거나 텍스트 자체 오류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더욱이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제로페이로 지급되고 있는 만큼, 해당 앱에 대한 개선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전환 사회로 선진입한 해외 국가들

디지털 전환시대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 대다수 국가에서도 진행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장애인들의 디지털 기술 이용에 대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서는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편의성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이나 미국의 경우, 키오스크의 접근성 디자인에 대한 표준인 장애인법(ADA)을 마련한 상태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설치장소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기기 입력 버튼을 누르는 힘을 최대 5파운드로 제한하고, 1m 높이에서 기기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기능별로 세밀한 표준이 마련돼 있다.

스페인의 스타트업 네뷸런스(Navulens)는 AI로 공간을 감지하는 QR코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용자가 QR코드 근처에서 손을 들면 QR코드와 휴대폰과의 거리를 인식해 음성으로 최대한 QR코드와 접근할 수 있도록 위치를 안내해준다. QR코드 인식 시 효과음이 나서 시각장애인이 알아차릴 수 있다. 스페인은 현재 버스정류장, 버스, 지하철 등에 QR코드를 시범 설치해 장애인 이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네뷸런스의 QR코드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3일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는 국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각 이동통신사업자 및 모바일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장애인의 디지털 포용을 위한 원칙’도 발표했다. 

GSMA이 발표한 3가지 원칙은 △조직의 모든 수준에서 장애인 포함 수용 △장애인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 강화 △장애인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하는 포괄적인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이다. 

GSMA는 “장애인의 디지털 장벽과 요구사항을 해결 및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선 설계 프로세스의 중심에 장애인들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소외된 인구 집단에 도달 할 수있는 사회적 및 상업적 기회를 실현하려면 새로운 조치가 있어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모바일 산업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아무도 뒤처지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고 원칙 발표 배경에 대해 밝혔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우리나라가 디지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우선 해결 과제”라며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는 언택트 시대를 위해 정보접근권을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환경 구축, 비대면 공백 해결 위한 신기술 적극 활용, 멘토를 통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 강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언택트 시대에 장애인에게 필요한 디지털 역량은 디지털 정보통신기기에 접근하고, 무인화를 비롯한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하는 것과 정보 통신기기로 획득한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이라며 “빅데이터 속에서 장애인들이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석하고 가공하는 힘을 길러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경제주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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